집전화로 전화해서 친구를 찾던,
동전을 세며 공중전화로 안부를 묻던 시절부터
삐삐라는 귀여운 기기를 거쳐서
스마트폰으로 AI를 사용하는 시대까지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지만
진심은 느리게 간다.
이제는 아예 사라져 버린 그 시절의 삐삐와 공중전화기.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공중전화기나 삐삐를 보면 과거의 추억이 떠올라서 먹먹한 기분이 든다. 친구와 통화를 하려면 집전화기로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인사를 한 후에 바꿔달라고 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었다. 지금은 연락이 너무나도 쉬운 시대이기에 손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하고 연락을 자주 할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의 감성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공중전화기가 길거리마다 있었고 전화부스 앞에서 길게 줄을 서던 시대였다. 한번 전화할 때 20원이라는 동전이 필요했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었다. 긴 통화를 할 때면 손에 동전을 잔뜩 쥐고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조바심을 내며 동전을 추가로 넣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었을 경우에 잔액이 남더라도 잔돈이 나오지 않았기에 수화기를 올려놓고 가면 다른 사람이 썼던 경우도 흔했다.
개인정보로 민감한 시대에 가끔 거론되는 전 국민 전화번호가 적혀있던 전화번호부도 그 공중전화기 위에 항상 올려져 있었다. 집마다 집전화기가 있던 시절이기에 연락처를 주고받을 때 당연히 집 전화번호를 적었고, 통화를 하려면 집으로 전화를 해야 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외우거나 수첩에 빼곡히 적어 놓는 것이 방법이었다.
부모님이 받으실 경우 누구인지 밝히고 바꿔달라고 했던 시절이기에 친한 친구인 경우 부모님과도 잘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발신자번호표시는 당연히 없기에 걸었다가 그냥 끊어버리는 장난전화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이 없었기에 편지도 많이 썼다. 친구에게 연락처를 물을 때면 전화번호와 함께 집 주소도 적어 놓곤 했다.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가는 경우도 많았어서 친구의 집 주소를 받아서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던 추억도 있다. 집 근처에 우체통이 하나씩은 꼭 있었고, 우체국에 가서 100원을 주고 우표를 사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연말이면 기념우표세트를 팔았던 기억도 난다.
중학교 시절 삐삐를 처음으로 사용해 봤는데 전화기는 아니었기에 삐삐에 남긴 음성을 들으려면 공중전화기에서 확인을 해야 했다. 그때 숫자를 암호처럼 사용해서 문자처럼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획수를 사용해서 ‘사랑해’는 486, 발음을 이용한 ‘빨리빨리’는 8282, ‘천사'는 ‘1004’ 등 삐삐 음성을 남길 때 번호를 남길 수 있었기에 사용한 암호(?)들이다.
음성으로 용건이나 사연들을 남겼기에 삐삐에 남긴 음성을 듣기 위해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게 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그 당시 삐삐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나와서 학생들을 유혹했고, 지금 스마트폰으로 자식들과 실랑이를 하듯이 그 시절에는 삐삐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요소가 됐다. 성적이 떨어지면 삐삐를 뺏기는 것이다.
나만의 사서함은 음악을 설정해 놓을 수도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음성을 남기기 전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선곡에 신중을 기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핸드폰 배경음악, 핸드폰 벨소리 등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음악들을 비용을 내고 선곡했다. 그 후로 배경음악 설정은 싸이월드로도 이어졌던 것 같다. 다양한 배경음악과 미니룸을 꾸미기 위해 도토리를 열심히 샀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늘어났고, 고2가 되었을 때 나도 ‘스카이’라는 하얗고 예쁜 플립 핸드폰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음성이나 문자가 무료이던 시절이 아니기에 학생들은 대부분 문자로 친구들과 소통을 했다.
삐삐가 유행이었을 시절 숫자로 마음을 표현했다면 이제는 기호를 사용해서 다양한 이모티콘을 만들어서 보내는 게 유행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 이런 눈웃음 표시를 하면 웃는 표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격세지감을 느끼는 바이다.
아날로그를 거쳐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기에 편하고 좋은 점들도 많지만 과거의 아날로그적인 요소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락수단이 아닐까 싶다.
연락하기 쉽고 내가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알림까지 뜨는 시대에 살면서 가끔은 집전화로 친구를 찾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손글씨로 꾹꾹 마음을 눌러 담아 쓴 편지를 보낸 후에는, 편지의 답장이 올 때까지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모든 것이 느렸던 시대가 낭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빠르고 편한 것이 좋을 때도 많지만 가끔은 느림의 미학이 그리울 때가 있다. 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길거리에 언제나 있었던 공중전화가 그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대중교통을 타면 누구든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쓸쓸해지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할 때도 손에서는 휴대폰이 떨어질 줄 모른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모습들이지만 가끔은 sns가 아닌 눈을 바라보고 말로 전하는 대화가 절실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