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기차의 꿈 [인 더 그레이]

by오래된 도서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새 차를 싣는 큰 트럭을 만난다.

원래는 새로 출고되어 임시번호판을 단 차들을 싣고 나르는 길쭉한 2층 모양이지만, 혼자 달릴 때는 2층 구조물을 삼각자 모양으로 접고 달리는 트럭 말이다. 이름이 카캐리어였던가?

카케리어 뒤를 따를 때면 속도를 와앙! 하고 올려서 앞서 달리는 트럭을 도약대 삼아 자동차로 비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위험하고도 쓸 데도 없을 상상을 한다.

이 엉뚱한 상상은 면허를 딴 지 한 달 정도 된 초보때 한 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위험의 순간은 현실감각을 쓱쓱 지우는 모양이다.

차선을 바꾸기 위한 여러 예비동작은 생생한 실체가 가늠되는 위험성이라 진땀도 나는데, 내가 탄 차로 로켓처럼 도약할 수 있는 카캐리어는 정신줄 어딘가가 두어 개 정도 끊어져도 하지 않을 짓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액션영화도 비슷하다.

시시각각 죽음의 손을 잡고 걷는 그들에게 죽음은 얼마나 현실적인 위험일까?

우리가 [인 더 그레이]에서 보는 사람들은 사실 '실력과 운이라는 체'에 여러 번 걸러진 생존자들이다.

종이에 베이는 것이 가장 큰 위협인 일상을 사는 나 같은 사람의 하루 생존과 그들의 생존은 질과 양 자체가 다르니 비교도 안 될 것이다.


작고 귀여운 생활반경을 열심히 돌며 사는 꼬마 기차의 눈으로 보는 '탈선 기차'들의 생존기는


"우와~ 또 터진다!"


하는 도파민 축제로만 소비하기에는 현실 감각의 선이 덜커덕 걸린다.

레일을 벗어나지 못하는 꼬마 기차가 '탈선 기차'의 삶을 넘볼 수 없는 세 개의 선 말이다.

첫 번째 선, 인간 병기가 될 만한 실력은 없다.

노력도 재능인데 스쿼트 30개를 넘을 때 알아차렸다. 나에게는 몸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당연히 목숨이 달린 극한 상황이 오면 성실히 키워놓지 못한 나의 근육과 반응 속도는 나를 배신할 것이다.

두 번째 선은, 운이다.

난 어딜 가서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진다. 탈선 기차가 되려 마음먹고 투입된 첫 임무에서 눈먼 총에 쓰러지는 엑스트라 13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믿어도 좋다. 확실하다.

그리고 세 번째 선, 죽음과 오랜 동행을 하는 동안, 솟구치는 예민함을 다스릴 튼튼한 정신줄이다.

죽음과 오래 동행하려면 예민해야 하지만, 그 예민함을 다루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가?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유머는 날카롭고 뾰족하다.

외줄 타기 장인이 균형을 놓치는 척 관객들을 들었다 놓는 식은땀 나는 우롱에 낚이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중독적인 매력 말이다.

너무 선명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잠깐 비틀어서 만들어 내는 여유. 때로는 그 사이에 실수를 숨기기도 하고.


유머는 위험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대신 위험과 나 사이에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갈 틈을 만든다.

옛날 누아르 주인공들이 한껏 '씅이 난' 눈썹을 치켜올리며 총을 쏘았다면, 요즘 액션영화 주인공들은 죽을 자리에서도 툭툭 농담을 던진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관객을 웃기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목숨 내놓고 사는 마당에


"네가 그래봐야 죽이기밖에 더 하겠냐?"


라고 생각하면, 유언이 될지 모를 농담 한마디에 혼을 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반면 나의 유머는 안전한 레일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혼자 운전할 때, 고속도로에서 만난 카캐리어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도약하려면


" 3! 2! 1! 터보!."


라고 외쳐보며, 혼자 신나는 정도의 뭉개진 유머 정도면 된다.


스크린 밖에는 여전히 스테이플러보다 위협적인 물건은 만지지 않고 살 수 있는 단조롭고 안전한 삶이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인 더 그레이]에 사는 인물보다 안전한 곳에 사는 나는, 그들보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일상이 흔하다.

쨍하게 새빨갛고, 시퍼런 삶에서는 유머를 던져 진한 색의 톤을 조금 낮춘다.

그렇다면 목숨 걸 일 없는 범부의 삶에서는 뾰족한 신경질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일까?

평온함에 함몰되기 전에, 내게 걸맞은 사이즈의 파고를 스스로 만드는 방식으로.


그들보다 낙차가 작은 레일이라고 해서, 그 위를 달리는 삶까지 밋밋한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떠한 권태로움에도 레일을 떠나지 않는 것이 꼬마 기차의 재능이다.

작은 레일 위에도 언덕과 웅덩이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레일 위에 각자의 생계를 싣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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