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이 공익광고 같은 제목은?"
하고 킥킥 거리며 찾아봤더니 유명한 그룹의 대표곡이다.
찾아서 들어보니 꽤나 많이 들어 본 노래이기도 했다. 제목도 가수도 모르고 '오! 이 노래 좋다.'정도의 노래. 대중을 사로잡은 명곡 정도는 되어야 막귀에게 각인이 된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자각이 지나간다.
음악의 조예가 참새 똥만큼만 있어도 알 만한 상식이 나에게 없었구나 하는 자각 말이다.
그래도 바보로 살면 좋은 것이, 드문드문 발표되어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 온 명곡에 대한 감동을 고농축 비타민 수액 맞듯 한 번에 꿀꺽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니아의 영역에 들어가는 취향에 대한 의견은, 나눌수록 날이 선 논쟁이 될 수 있지만, 범용적 바보에게 그들은 한없이 관용적이다. 그래서 꼬마에게 알려주듯 내 눈높이로 확 내려와 설명해 주기도 한다.
"오아시스는 들어봤어?"
그리고 이 지점에서 두 번째 놀라움이 생긴다.
이번 놀라움은 단순히 불꽃같은 생을 가진 팝이 숯불처럼 오래 뜨겁다는 것이 주는 놀라움과는 다른 결이다.
사막에 있는 물이 솟는 샘. 꽃집에서 꽃이 마르지 않게 물기 머금은 초록 덩어리에 꽂는 그것의 이름..
들리는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 제목까지 찾아서 같이 외우지 않는 막귀에게 오아시스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아는 오아시스 말고도 알고 있었어야 할 카테고리가 또 있었네."
물론 오아시스라는 그룹명도 들어는 봤다.
그리고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오아시스의 노래인 것으로 착각해 온 곡이 'Up Town Girl'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나의 틀려먹은 상식은 비뚤어진 채 오래 덮여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콕 찍어 먹어 본 오아시스는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다른 기억들 밑으로 차곡차곡 밀려 들어간 탓에 더욱 낯선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 글을 쓰면서 'Up Town Girl'도 오아시스의 노래가 아니라 빌리 조엘의 노래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없다고 하기엔 하잖게 존재하는, 뭉개진 상식이여...'
어째 'Don't Look Back in Anger'와 'Up Town Girl'을 나란히 놓고 오아시스의 스펙트럼이 참 넓은 그룹이구나 했다.
'상식'이라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문외한'은 오아시스 형제들이 들으면 기타 두 동강을 낼 망언을 이렇게도 쉽게 한다.
그들의 음악은 잘 몰라도, 그들의 와일드한 성격은 익숙한 가십이라 안다.
한글로 된 이 글을 두 형제가 볼 일이 없으니 옛날 성격 나올 일은 없겠지?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의 제목부터, 가사, 발매된 날짜, 이들의 가십 등등을 귀로 듣고 있는 중에 눈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내가 오아시스의 팬이었다면 휴대용 CDP를 가방에 넣고, CD케이스에 접힌 리스트와 노래 가사를 펼쳐 보며 눈과 귀로 담는 시간을 따로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조예가 없던 나는, 친구가 '구워 준' CD에는 그즈음 그 친구의 취향의 남자들의 음악을 급히 이식받았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듣고 있는 트랙이 누구의 노래인지, 막귀가 알 리 있나?
그저 노래도 잘하는 훈남 1, 혹은 이 노래는 연주도 직접 하는 것 같은 훈남 2. 일뿐.
이번에 영화관에 걸린다는 'Don't Look Back in Anger'은 훈남 2였다. 그리고 이 친구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그룹 퀸의 노래도 영화로 나왔었다. 그때 미처 몰라본 친구의 선구안이 새삼스러워진다. 갤러거 어쩌고 하던 이야기를 들을 때, 시트콤 '프렌즈'의 '로스 갤러'인 줄 알고, 아는 척하면서 끄덕이던 흑역사가 새롭게 떠오른다.
'이래서 여자의 과거는 들추는 게 아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구는 '브리티쉬 록'에 조예가 있던 모양인데, 아무리 들려줘도 귀가 뜨이지 않는 막귀에게 어느 순간부터 복음 전하기를 포기했나 보다. 난 서로 먹고살기 바빠지고, CD가 음원이 되면서부터 구운 CD의 퇴장과 함께 사라진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하긴 '갤러거' 이야기에 '프렌즈'로 답 하는 친구와 무슨 대화가 통했겠나.
'그래도 애는 착해.' 하고 말았겠지.
원래 음악을 알기 위해서는 한눈팔지 않고 그에게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가수가 내는 앨범을 통째로 사서 모든 트랙을 섭렵하는 진짜 팬의 영역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조예를 위해 시간을 쓰는 수고를 하지 못하는 소비자는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궁금하면 간단한 검색만으로 핀셋으로 골라 소비를 할 수 있다.
앨범 하나 내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던 가수들에게는 날벼락이 친 셈이지만, 나 같은 찍먹파 소비자도 부담 없는 참여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음악을 아는 걸까?
다만 내가 지난 시간 내내 옆에 두고 있으면서 떠난 줄도 몰랐던 '오아시스'의 귀환을, 뜬금없이 오늘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