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버리는 세상을 혼자 걷게 된 소년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by오래된 도서관

돌멩이 같은 걱정이 깔린 자갈밭을 걷는 평범한 어른이 되면서 잊고 지냈던 기억이 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볼 때마다 그 기억이 다시 꺼내진다. 막연한 미래에 우울하다가도 단짝 친구와 떠드는 즐거움에 금세 웃음이 터지는, 세상에서 제일 무겁고도 가벼운 사춘기 인생의 무게 말이다.

마블 시리즈 중에서도 스파이더맨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히어로물이지만 이런 하이틴 영화 특유의 풋풋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십 대 끝자락에 선 아이들의 고민은 가끔 어른의 눈으로 봐도 가볍지 않을 때가 있다.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한 피터에게서, 그 한 줌 밖에 안 되는 관계마저...


"마블. 꼭 이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스파이더맨의 '피터'만큼 몸만 큰 애기라는 표현이 딱 맞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스파이더맨은 어벤저스에 견줄만한 엄청난 능력치를 가졌지만, 계속 돌봐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아들을 보는 기분이 든다.

피터는 피지컬 괴물인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낚아챌 근력도 있고, 다 자라면 아이언맨이나 브루스 배너(헐크) 만큼의 지성도 갖추게 될 '사기캐'이다. 하지만 왠지 스파이더맨에게는 영원히 크지 않는 네버랜드의 피터 팬처럼 이 아이의 성년을 볼 일이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든다.

'아.. 그래서 이름이 '피터'인가?'

우주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피터는 [브랜드 뉴 데이]에서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다. 조금 전 성년이 된 피터를 볼 일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영화 설정으로 즉시 답을 주는 것인가?

하지만 피터가 고등학교 소속에서 이탈했다는 것과 성년이 된 것은 다른 문제이다. 물론 의무 교육의 종료와 보호자 없이 혼자 생활을 시작한 것을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한다면, 피터는 어른이다. 빙벽 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렸건, 옆 친구에게 밀려 떨어졌건, 어쨌든 첫 번째로 바다에 들어간 펭귄은 'First Penguin'인 것처럼.

신체 능력과 지적 능력도 최상위급이고, 풍족하지는 않아도 혼자 독립해서 생계도 바카라임질 줄도 알고, 심지어 상당한 시간을 이웃을 돕는 데 쓰고 있는 피터는 대체 뭘 더 해야 어른으로 보일까?

어째 마블보다 내가 더 피터한테 너무 한 것 아닌가 싶네.

피터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있다.

토니 스타크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어벤저스에게 민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했고, 메이 숙모에게 걱정거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했고, 친구들에게 평범한 학생이라는 것도 증명하려 했다.

어른이라면 증명 대신 그냥 내 몫의 바카라임을 질 뿐이다.

그런데 피터는 늘 "저도 할 수 있어요."를 외친다. 결국 우리는 그 아이가 해내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뿌듯한 얼굴로 칭찬을 기다리는 눈빛을 보면, 고개를 끄덕여 주고 싶어진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능력이 커져도 피터는 자꾸만 아이처럼 보인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리던 스물둘에는, 누구에게나 아랫배에 힘을 빡 주고,

"나도 어른이다. 나 혼자 다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을 해야 어른이다, 애를 길러봐야 어른이다. 하는 '으른 퀘스트' 다 깨고 지나왔는데, 오히려 지금은 내가 과연 다 큰 어른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피터가 자꾸 제 몸 보다 큰 옷을 입고 선 소년의 모습으로 보인다. 스파이더맨 슈트는 피터의 얼굴을 가려 어른의 바카라임을 지우지만, 그저 아랫배에 힘주고 꼿꼿이 선, 몸만 큰 아이 말이다.

어른인 척을 할 때는 도우러 오는 손을 뿌리치고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돕는 손에 감사를 건넬 줄 알게 된다. 굳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도, 그 손에 담긴 관심과 선의를 먼저 읽을 여유가 생긴 덕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 보고, 그 손을 놓아 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배워 간다.

특히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한 피터는, 그 도움의 손을 오래 잡아 볼 기회가 적었다.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군. 하지만 우주를 위해 그마저의 관계에서도 싹 지워진 [브랜드 뉴 데이]의 피터는 연습의 기회가 있기는 할는지.

"마블. 꼭 이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