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 출퇴근 시간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면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 치인다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나는 매일같이 힘들어했고, 출퇴근 시간의 교통지옥만 벗어날 수 있다면 하루가 훨씬 덜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힘들었던 출퇴근 시간에는 타인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유독 중년 여성이나 할머니들이 마주하기 버거웠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중년 여성이나 할머니들을 만나면 피하고 싶었다. 자리가 나면 빨리 앉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밀치기도 했고, 사람이 많아 붐비는 상황이면 여지없이 나를 밀기도 했다. 늘 다리가 아픈 듯한 모습으로 빈자리를 찾거나, 피곤한 표정으로 자리를 살피는 모습을 보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피로를 가중시키는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내 경험상 유독 나를 곤란하게 하는 요청을 하는 이들은 중년 여성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기차나 시외버스 안에서 더 불편한 자리로 자리를 바꿔달라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내게 무언가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식이었다. 그런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중년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를 경계하고 있었다. 주변에 중년 여성이 있으면 괜히 불편했고, 가능하면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나에게 무엇을 하기 전부터 피하고 싶었다.
중년 여성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짜 결혼 여부를 묻는 이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했어요?”라는 질문도 불쾌했지만, “결혼 안 했죠?”라는 질문은 들을 때마다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특히 결혼 여부를 묻고 나면, “결혼 안 해서 이런 곳도 올 수 있네요” 혹은 “결혼을 안 했으니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겠죠”라는 말을 얹어오곤 했다.
그 말이 싫었던 것은 단순히 결혼 여부를 언급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하고, 주저하면서도 용기를 내고,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노력해 얻은 것들을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로 설명해 버리는 것이 싫었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고민하고 노력해서 내린 결정들이 마치 별다른 어려움 없이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처럼 여겨지는 것 같았다.
상대가 왜 그런 걸 묻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중년 여성들과는 가능하면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나의 미혼이 그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내 대답으로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을 확인시켜 주는 것도 싫었다. 나는 상대방의 결혼 여부가 궁금하지 않은데, 굳이 내 결혼 여부를 묻는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다시는 중년 여성들과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할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면 먼저 앉으려고 주변 사람을 밀치거나, 사람이 많을 때 거리낌 없이 나를 미는 경우가 있었다. 휴대전화 통화 소리가 지나치게 커서 듣고 싶지 않은 남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어야 했던 적도 많았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듯한 그 모습들이 왠지 마주하기 싫었다. 그리고 굽은 허리로 느린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볼 때면, 불편해져서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을 떠나 찾아간 절에는 서울에서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절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50대부터 70대 이하의 중장년 여성들이었고, 그보다 연배가 더 높으신 할머님들도 많이 계셨다. 절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섞이게 되었고, 나는 또다시 결혼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어딜 가도 또 이 질문을 받는구나 싶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더니, 익숙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결혼을 안 했으니 이렇게 절에 오래 머물며 템플스테이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부럽다고 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미혼이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었다는 식으로 여겨지는 것이 불쾌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보이지 않는 듯, 또다시 ‘미혼’이라는 사실만으로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 불쾌함을 오래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템플스테이에서 청소와 빨래 등 할 일이 많았고, 나는 추가로 법회에도 들어가고 있었다. 매일 부처님 가까이에서 예불을 드리고 법문을 들으며, 불교에서 말하는 ‘상(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규정하든, 그 규정에 매달려 마음을 쓰는 것 역시 내가 내려놓아야 할 집착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결혼했느냐고 물을 때마다 불쾌해하고, 그 질문에 대한 마음을 오래 붙들고 있었던 것 역시 나였다. 그 뒤로도 사람들과 지내면서 개인적인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지만, 예전처럼 그 질문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 뒤로는 매일 함께 지내는 중장년 여성들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절의 여러 행사를 뒷받침하는 봉사활동부터 대웅전과 보탑성전을 쓸고 닦는 일, 수백 명의 밥상을 쉼 없이 차려내는 공양까지, 절에서 이루어지는 일 곳곳에 중년 여성들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내가 ‘중년 여성’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뭉뚱그려 보았던 사람들이, 내가 머물렀던 절을 매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템플스테이를 온 할머님들을 보면서 그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예순이 훌쩍 넘고 일흔이 넘으신 분들도 절에 많이 찾아오셨는데, 혼자 혹은 도반과 함께 와서 며칠씩 머물며 지냈다. 돈을 내고 템플스테이를 온 분들이었지만, 가만히 쉬기만 하지는 않았다. 마당의 잡초를 몇 시간씩 뽑기도 하고, 절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 손을 보태기도 했다. 내가 빗자루라도 들고 있으면 빗자루를 달라며 대신 청소를 해주시기도 했다. 혼자 일하는 모습을 보고만 계시지 않았다.
그분들은 내가 혼자 오랫동안 템플스테이를 하는 것을 보고 멋있다고 하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거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울에서 직접 운전해 경북 봉화까지 오신 그 보살님이 더 대단했다. 엄마를 제외하고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실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불편해했다. 그런데 절에 와서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내가 그들을 얼마나 단순한 범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미혼’이라는 프레임으로 내 삶의 수많은 선택을 평가하는 것에 진저리가 났다. 그럼에도 나 또한 그들을 ‘아줌마’나 ‘할머니’라는 메마른 범주 속에 가두어 놓고,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불편한 존재로만 여겼던 것 같다. 나야말로 그들의 삶을 제대로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내가 겪은 몇 가지 경험만으로 그들을 판단했다. 서울에서 피하고 싶었던 아줌마와 할머니는 절에서 모두 보살님이었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었고, 온전한 개인이 있었다. 나 역시 그들을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중년 여성이나 할머니로 살아온 사람은 없다. 그들도 한때는 지금의 나처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내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먼저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10년, 20년, 30년 뒤의 나 역시 언젠가 그 나이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을 향한 마음이 달라졌다. 그들은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삶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삶이 단조롭고 무료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들의 삶은 달랐다.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부터 삶이 정적으로 변하고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각자의 재미와 즐거움이 있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삶이 좁아지는 일로만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래를 떠올릴 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갖고,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의 직급에 오르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정작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나이가 들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고, 언제까지나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향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온라인 게임에 다닌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있었고, 그 일을 통해 경제적 소득과 슬롯적 지위를 얻고 있었으니 내 미래의 삶은 그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나니, 내가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과 나를 다르다고 생각해 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직업이나 슬롯적 지위가 나의 미래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기준으로 그들과 나를 나누고 있었고, 그 기준으로 그들을 낮춰보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부끄러웠다. 돌아보면 서울에서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그 모습 속에, 언젠가 내가 살아갈 삶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