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펼쳐놓을 자리

템플스테이

by서윤재

자비도량참법이 끝난 다음 날, 백중 회향이 이어졌다. 백중이 시작되는 입재 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입재가 진행되는 보탑성전 안에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보탑성전 밖에 천막을 쳐놓고, 그 아래에 의자를 수십 개 가져다 놓았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수에 압도당한 나는 백중 입재 법회에 가는 것을 포기했었다. 나보다 더 간절한 분들이 오셨을 테니, 나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백중은 불교의 큰 명절 중 하나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평안을 빌며 기도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백중을 시작하는 입재는 지금부터 돌아가신 분들을 깊이 생각하고 내 마음을 정성껏 모으겠다는 준비를 하며 첫걸음을 내딛는 날이다. 그리고 회향은 기도를 마친 뒤, 그 따뜻하고 맑아진 마음을 돌아가신 분들께 온전히 전해드리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며 마무리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백중 회향 날에는 입재 때와 같이 대웅전에서 사시 예불을 올리고, 다 같이 보탑성전으로 이동하여 회향법회를 한다. 사시예불은 불교 사찰에서 낮 12시 무렵인 사시에 드리는 예불인데, 사시는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를 말한다. 입재 때는 참석하지 못해, 회향 날에는 사시 예불에 참석하리라 마음먹었던 터라 회향 사시 예불에 참석하였다.




백중 회향의 사시 예불은 지금까지 참석했던 예불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평소 새벽예불에 갔을 때에는 예불을 드리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다. 엄숙하고 진지하였지만, 예불 자체가 목적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백중 회향의 사시 예불에서는 대웅전 안에 가득 찬 슬픔이 느껴졌다. 그 슬픔은 조상님들을 위한 기도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 슬픔이 향하는 대상은 아주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가까운 사람에 대한 애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미리 보탑성전에 자리를 맡기 위해 예불 중간에 자리를 비우기도 했지만, 긴 예불 시간 내내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들에게서는 의연한 슬픔이 느껴졌다. 분명 누군가를 백중 기간 내내 그리워하다 이제 보내주려 하는데, 이미 보냈음에도 또 보내기가 차마 아쉬운 것처럼 보였다. 백중 회향 사시 예불에서 느껴진 슬픔은 세상 온갖 슬픔을 뭉쳐놓은 것 같은 밀도 높은 슬픔이었다.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는 마음과, 그러면서도 끝의 끝까지 조금이라도 더 부여잡고 있으려는 마음이 함께 느껴져 덩달아 슬퍼졌다.




나는 언젠가 겪게 될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이 늘 두려웠다. 그 상실감에 무너져 내리거나, 깊은 슬픔에 갇혀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봐 겪지 않았던 상실을 떠올리며 겁을 내곤 했다. 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감정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감정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픔은 내게 가장 익숙한 감정인데도, 정작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슬픔이 생길 때마다 꺼내어 바라보기보다 꾹꾹 눌러 담아 마음 깊숙한 곳에 밀어 넣어두곤 했다.




그런데 백중 회향 예불에서 느낀 슬픔은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슬픔보다 훨씬 컸다. 마치 슬픔으로 이루어진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듯했다. 그 슬픔 속에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 슬픔 속에 가만히 머물러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비로소 내 슬픔을 펼쳐놓을 자리를 만난 것 같았다. 언젠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만나게 되더라도 이곳에 와서 마음껏 풀어놓으면 될 테니, 아직 오지 않은 상실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시 예불이 끝나자 모두 함께 대웅전을 나와 보탑성전으로 이동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서인지, 아니면 날씨가 좋아서인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탑성전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스님이 분명 사시 예불이 끝나고 보탑성전으로 이동하여 법회를 한다고 알려주셨는데, 예불이 끝나고 가보니 보탑성전에는 미리 온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보탑성전 밖에 깔아놓은 자리에도 빈자리가 한 개도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회향 법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법당 맨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좌복은 이미 다 차있어서 출입문쪽 구석에 앉으니 이미 구석에 자리 잡으신 주변 보살님들이 엉덩이를 조금씩 옮겨주셨다. 덕분에 양 무릎을 팔꿈치로 안은 자세로 앉을 수 있었다. 회향 법회가 시작되고, 보살님들은 흰 봉투에 동참금을 넣기 바빴다. 동참금을 넣는 보살님들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결연해 보였다.




그러다 좀 지나니 사람들이 그 좁은 틈에 줄을 서서 앞으로 나가 동참금을 내고, 절을 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보탑성전 안에서는 금세 아주 긴 줄이 늘어섰다. 밖에까지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동참금을 내기 위한 줄인데, 맨 뒤 출입문 앞에 쭈꾸리고 앉은 나는 눈높이에 걸친 보살님들의 엉덩이를 한 50개쯤 보다가 보살님들이 지나가는 동선이라도 좀 편하게 트여줘야겠다 싶어 결국 밖으로 나왔다. 회향 법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는데, 눈앞의 계속된 엉덩이 행렬에 이번에도 포기하고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밖에 나오니 종무실과 연결된 대청마루에, 큰스님을 모시는 시자스님이 앉아 계셨다. 다른 모든 스님들은 모두 백중 회향 법회에 참석하고 계셨는데 시자스님만 밖에 홀로 앉아계셨다. 템플스테이 자원봉사를 오래 하다 보니 조금은 뻔뻔해져서 시자스님 옆 마루에 걸터앉아 말을 붙여보았다.


- 스님은 왜 법회에 안 들어가셨습니까. 큰스님도 들어가시고, 다른 스님들 모두 다 법회 참여하셨던데요.


- 저는 지금 큰스님의 모자와 지팡이를 모시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시자스님 곁에는 정말 큰스님의 모자와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그렇게 시자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왕 템플스테이를 왔으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나 외워가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시자스님은 곧바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직접 독송해 주셨다.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작업하기 전에 한 번씩 외워보면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하셨다. 이렇게 또 하나 얻어갈 것이 생겼다.




시자스님은 이번에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으로 40대 초반의 잘생긴 스님이 오신다고 알려주셨다. 그 말을 듣고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시자스님께 '스님이 외모가 뭐가 중요합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자스님께서 되물으셨다.


- 화엄사 꽃스님 알아요?


- 네.


- 거 봐요. 내가 유튜브 하면 사람들이 욕만 할 거예요. 못생겼다고.


그것도 잘생겨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구시렁대시는데, 스님들도 농담을 하시는구나 싶었다. 예불 때 엄숙한 모습만 뵈어서 스님들도 농담을 하신다는 것을, 아니 스님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 종무소에 근무하시는 보살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빨리 공양에 가야 한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법회가 끝나고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공양간으로 몰려와 공양을 하기까지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법회가 끝나기 전인 지금 당장 공양을 가야 한다고 했다. 단호하고 결연한 종무소 보살님의 눈빛에 압도되어 시자스님과의 대화를 종료하고 공양간에 따라나섰다. 공양간에 걸어가면서 본 하늘이 참 파랬다. 백중 회향 날이라 그런지 쾌청한 날씨가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날의 공양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공양간에 가니 스테인리스 그릇에 비빔밥 나물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고, 그 그릇들을 담은 쟁반들이 층층이 쌓여 족히 열 층은 되어 보였다. 백중 회향 법회에 오신 수많은 불자님들의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공양간 보살님들이 새벽 일찍부터, 아니 전날부터 애쓰셨을 것이 눈에 선했다. 법회가 끝나면 한꺼번에 몰려들 사람들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두신 것이다. 절에 오래 있다 보니, 절에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애쓰셨을지 이제는 보인다.




절에서 먹는 비빔밥은 언제나 맛있다. 공양도 수행이라 내 몸에 들어오는 음식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며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데, 너무 맛있는 음식은 저절로 빨리 먹게 된다. 공양을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비우고 종무소 보살님과 공양간을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데, 맞은편에서 보살님들이 대군처럼 공양간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회향 법회가 끝난 모양이었다. 하마터면 공양할 때 한참 기다릴 뻔했는데, 종무소 보살님 덕분에 공양 타이밍을 정말 잘 맞췄다. 공양과 관련된 사안은 종무소 보살님이 언제나 옳다. 그렇게 백중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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