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향기 시방에 퍼져

템플스테이

by서윤재

세탁실과 템플스테이 방사를 왔다갔다하면서 청소와 빨래를 하던 날이었다. 세탁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엄청나게 많은 꽃이 있었다. 누군가 꽃 공양을 위해 가져다놓은 것이었다. 다른 자원봉사자분으로부터 들었는데, 부처님께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 단정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갖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큰 법회가 있을 때, 크고 예쁜 꽃바구니를 가져오시는 분들을 종종 보았다. 그날은 마침 자비도량참법의 마지막 권인 10권을 하는 날이어서, 누군가 꽃 공양을 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처음 자비도량참법에 들어갔을 때, 함께 참석하시는 보살님들은 나에게 자비도량참법에 참가하다니 대단하다며, 참 복받은 일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나중에 궁금해서 찾아보니, 불자들 사이에서는 자비도량참법을 온전히 마치는 것을 업장을 참회하고 마음을 닦는 귀한 수행으로 여긴다고 한다. 지은 죄를 참회하여 털어내고 그 자리에 지혜와 자비를 채워 넣는 일이기에, 이 참회기도에 온전히 동참할 기회를 얻은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큰 복을 받은 셈이었던 것이다.




자비도량참법은 열흘에 걸쳐 진행되는 방대한 수행인 만큼, 사찰에서도 자주 열리는 법회는 아니다. 모든 사찰에서 매년 열리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기도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할 수 있는 것 자체를 귀한 인연이자 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긴 법회를 마련하고 진행하는 일은 사찰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총 10권에 달하는 방대한 경전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 경전의 의미를 정확히 알면서도 긴 시간 동안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스님이 계셔야 하기 때문이다.




자비도량참법을 이끄셨던 혜종스님은 열흘 내내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독송을 이끄셨고, 절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게다가 업무로 바쁜 스님께서 이 법회를 진행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가자로 열흘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는데, 그 긴 시간을 앞에서 이끌어가는 스님의 수고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절의 총무스님이기도 하신 혜종스님은 매일 새벽예불도 진행하셨다. 절에서 지내는 동안 나 혼자 혜종스님보다 먼저 새벽예불에 가보는 미션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늘 스님이 더 먼저 와서 참선을 하고 계셨다. 새벽예불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와 계신 것 같았다. 도대체 잠을 몇 시간이나 주무시는 것인지 궁금했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주무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오전에 절 안을 돌아다니시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열흘이나 함께 법회에 참여하니 매일 오시는 분들이 조금씩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떤 날은 안동 보살님들이 내 자리를 맡아주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영주 보살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법회에 참여하신 분들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말 다양한 지역에서 큰마음을 내어 이곳까지 오신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서로 익숙해지고 정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열흘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어느새 반가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귀한 기회라는 말을 들으며 시작한 자비도량참법은 어느덧 열흘째가 되었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법회 시작 전의 분위기는 약간 들떠 있었다. 서로의 수고를 서로가 알고 있었다. 보살님들은 공양에 올릴 음식도 평소보다 더 많이 가져오신 것 같았다.




모두들 매일 저녁 먼 길을 오가며 열흘을 함께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 생활이나 각자의 삶이 바쁜 상황에서 시간을 내어 열흘 동안 이 방대한 수행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아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직접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나를 보며 복받았다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법회 시작 전에 보탑선원에 가보니 커다란 소쿠리에 꽃에서 떼어낸 꽃잎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낮에 세탁실 지하에서 본 꽃과 같은 색깔인 것을 보니, 그 꽃에서 꽃잎을 하나씩 떼어낸 모양이었다. 두 개나 되는 큰 소쿠리에 꽃잎만 한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니, 또 보살님들이 이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수고를 해주셨구나 싶었다. 꽃잎의 양을 보니 그것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았다.




드디어 마지막 법회가 시작되었고, 마지막 날이라 오늘은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지 말자 싶어 열심히 독송을 이어갔다. 스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늘은 한글자도 놓치지 않고 따라 읽겠다는 자세로 읽는데, 갑자기 스님의 마이크 소리가 멈추고,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뭐지? 싶어서 놀란 눈으로 스님을 바라보는데, 다른 보살님들은 계속 독송을 이어나가신다. 뭐지? 뭐지? 싶어서 어리둥절하는데 스님이 그 꽃잎이 한가득 담긴 소쿠리를 들고 앞에서부터 보살님들 머리위에 한웅큼, 아니 한바가지씩 올려주시며 축원을 해주셨다. 예상치 못한 스님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꽃과 향기 시방에 퍼져, 아름답고 미묘하온 광명대 되고’라는 구절에 이르면 스님이 일어나 모두에게 꽃을 뿌리며 축원하는 의식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이 구절은 ‘향기로운 꽃과 맑은 향이 온 세상 가득 퍼져나가, 어둠을 밝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큰 빛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구절에서 스님이 불자들에게 꽃을 뿌리는 것은 기도의 공덕과 축원을 꽃으로 표현하는 의식이었다. 기도하다가 갑자기 꽃비가 쏟아지니, 너무 드라마틱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에도 스님께서 내 머리 위에 거의 한 바가지나 되는 꽃잎을 수북하게 올려주셨는데, 꽃잎들이 내 머리에 올라오자 수많은 꽃잎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앞서 꽃잎을 머리위에 올려주신 보살님들은 모두 신이나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박수도 치 난리가 났다. 꽃잎이 너무 많아서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좌복이랑 바카라 위에 꽃잎을 털어내면서도 모두들 활짝 웃고 계신다.




그 순간 보살님들이 소녀처럼 보였다. 중년의 보살님들뿐만 아니라 할아버님과 할머님들도 활짝 웃고 계셨다. 열흘동안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모두가 웃으니 나도 기뻐서 같이 웃었다. 꽃잎이 어찌나 많았던지 모두의 좌복과 바닥을 가득 덮었다. 이 꽃잎들을 손으로 쓸어모아 스님의 옷자락에 뿌리기도 했는데, 너무 예쁜 순간이었다.




법회 기간 동안 자비도량참법의 바카라은 보탑선원에 가져다두신 것을 빌려 보았는데, 바카라 사이에 누가 바카라갈피처럼 꽃잎이나 나뭇잎을 꽂아놓은 것을 보았었다. 다 같이 보는 바카라에 누가 이런 것을 넣어놓았을까 싶어 인상을 찌푸린 적이 있다. 누가 낭만을 느낀답시고 꽃잎을 바카라갈피처럼 꽂아놓아 다음 사람이 바카라을 보기 불편하게 해놓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그래서 다음 날에는 일부러 다른 바카라을 골랐는데, 그 바카라에도 똑같이 꽃잎이 한가득 끼워져 있어 누가 이렇게 해놓았나 싶어 짜증이 났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꽃잎은 바로 자비도량참법 마지막 날 뿌려진 꽃잎이었던 것이다.




꽃을 뿌리는 의식이 끝난 뒤에 이어진 자비도량참법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는데, 그 이후로는 모두가 기뻐하며 크고 맑은 목소리로 독송을 따라하고 수백번의 절도 가볍게 해내었다. 이전에는 절 횟수가 많아지면 절의 속도가 느려지고, 땀을 흘리며 힘들어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가볍게 절을 했다. 머리 위에 꽃잎이 얼마나 많았던지 움직일 때마다 꽃잎이 떨어지고, 다른 보살님들의 머리카락에도 꽃잎이 몇개씩 끼워져있는 것을 보고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재밌는 것은 불교에 다 있다더니, 이걸 몰랐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이 들었다.




자비도량참법의 마지막 축원이 끝나자 스님께도 다 같이 절을 하며 스승의 예를 올렸다. 이어 이번 자비도량참법의 봉사활동을 이끌었던 분이 나와 감사의 말을 전했고, 그곳에 계시던 최고령 할머니께도 꽃다발이 전달되었다.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이번이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자비도량참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모든 절을 올리셨다고 한다. 끝까지 참석하신 것이 뿌듯하신 듯 정말 기쁘게 웃고 계셨지만 , 이것이 그분에게 마지막 자비도량참법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보는 내가 먹먹해졌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법회를 나는 운 좋게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열흘을 함께 보내고 나니 어느새 서로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정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만남이 얼마나 귀하고 일회적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란 때가 되어 만나 서로의 시간을 채워준 뒤, 인연의 흐름에 따라 기꺼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귀한 인연이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가볍게 이 자리에 들어와 앉았지만, 어느새 이곳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같이 소중했을 열흘의 시간을 함께 채워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처음 보살님들이 나에게 했던 '복받았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자비도량참법이 전부 끝나자 모두 기쁘게 웃었고, 정말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템플스테이 자원봉사자로 자비도량참법을 편하게 훌렁훌렁 다닌 주제에 울어버리면 너무 오버인 것 같아서 진짜 꾹 참았다.




자비도량참법이 전부 끝나자, 모두 미리 짠 것처럼 바닥에 쭈그려 앉아 웃으며,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이 덮인 꽃잎을 주워 담았다. 한쪽에서는 좌복을 정리하고, 한쪽에서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또 한쪽에서는 음식을 나눠주셨다. 남은 사람들은 수북이 쌓인 꽃잎을 일사천리로 정리해나갔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절에 와서 좋은 경험과 따뜻한 마음을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자비도량참법에 공양으로 올렸던 음식까지 한가득 받아왔다. 진짜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최고의 자비도량참법이었다.







안녕하세요, 서윤재입니다.

매번 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킷과 팔로우로 마음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템플스테이 이야기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템플스테이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에는 귀촌체험을 하며 지낸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제 이야기를 천천히 함께 지켜봐 주세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