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자비도량참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극한 마음으로 절하고 참회하며 업장을 소멸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의식으로 총 10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축서사에서는 하루에 1권씩 진행했다. 법회를 집전하시는 혜종스님의 독송에 따라 바카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는다.
법회 중에 지극한 마음으로 온 생명을 바쳐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라는 뜻의 ‘지심귀명례’라는 말이 나오면 모두 일어나 절을 하는데, 한번 일어났을 때 연달아 30배 이상씩 할 때도 있다. 총 10권을 읽는 동안 지심귀명례의 횟수는 1,719번이고, 여기에 법회 전후로 올리는 절까지 더해지니 자비도량참법에서는 절을 많이 하게 된다
자비도량참법에은 매번 진심으로 마음을 다 담아서 참여해야 하지만, 1 권당 수백 번의 절을 계속해야 하다 보니 어떤 날은 도대체 왜 이렇게 절이 많이 나오나 싶어 절이 끝나는 부분이 언제 나오는지를 보려고 뒷페이지를 미리 넘겨보기도 했다. 절이 많았던 날은 절을 다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이 들어 법회가 끝나면 뿌듯하기도 했다.
자비도량참법은 한글로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나무상주십방불(南無常住十方佛)’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시공간과 온 우주에 언제나 변함없이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고 예배합니다’라는 뜻이다. 한글로 적혀 있어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스님의 독송을 열심히 따라 하며, 열심히 절을 올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비도량참법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축원을 시작하신다. 법회를 할 때는 ‘이거 왜 이렇게 안 끝나지’ 싶다가도, 끝나고 나면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읽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자비도량참법이 시작되기 전, 스님께서 축원하실 수 있도록 지역과 이름을 적은 목록이 돌기 시작한다. 자비도량참법에 참가하는 보살님들은 최소 30분 전부터 착석해 자신의 이름을 적고 스님이 시작하시기를 기다린다. 법회가 끝나면 스님께서는 이 목록을 보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 번씩이나 축원을 해주신다. 나는 저녁 타종을 하고 가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법회가 시작되기 10분 전쯤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목록에 미처 이름을 적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축원 대상 목록을 담당하시는 보살님께서 내 어깨를 톡톡 치더니 “서울시 서윤재 보살님 맞죠?” 하고 대신 적어주셨다.
또 한 번은 대기하고 있는데 축원 대상 목록 종이가 도무지 내 자리 쪽으로 오지 않았다. 일어나서 이름을 적고 와야 하나 고민하다가 스님께서 곧 시작하실 것 같은 분위기라, 지금은 이름을 적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오늘은 축원을 받지 못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스님께서 축원해 주실 때 명단에서 내 이름을 읽어주셔서 깜짝 놀랐다. 아마 목록 담당 보살님이 내 이름을 대신 적어주셨던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축원을 받게 되어 정말 기뻤다. 예상하지 못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40대인 나는 이번 자비도량참법에서 당당하게 최연소 보살이었다. 자비도량참법에 오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어디 가서 나이로 꿀리지 않는 내가 이곳에서는 최연소가 되었다. 나는 절을 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아 수백 번의 절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살님들은 연세가 있어 절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었고, 무릎이 좋지 않아 절을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법회가 진행되는 동안 뒤쪽에는 의자를 마련해 절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절을 많이 한다고 해서 수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와 있어야 하는지 문득 돌아보게 되었다. 자비도량참법에서 절을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절을 다 해내는 것과 마음을 다해 법회에 참여하는 것은 꼭 같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매일 저녁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편도 한 시간 넘게 차를 직접 운전하여 타고 오면서도 늘 공양할 떡이나 과일, 간식까지 챙겨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주말에는 멀리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오셨다. 나는 자비도량참법이 진행되는 보탑선원에서 1분 거리에 있는 템플스테이 숙소에 머물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처음 참여한 이유도 다른 자원봉사자분이 권유해서 ‘한번 참여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자비도량참법에 진지하게 임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닌가 싶었다. 매일 저녁 늦은 시간에 누군가는 한 시간을 넘게 달려와 이 자리에 앉고, 누군가는 절을 하기 힘든 몸으로도 끝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이 자리에 조금 더 진지한 마음으로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자비도량참법에 참석하다 보니 다른 보살님들이 어떻게 법회에 함께하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자비도량참법에 갔을 때는 법회가 낯설고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라, 끝나고 뻘쭘해서 간식만 받아 바로 나왔다. 그런데 여러 날 참여하다 보니 이 법회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보였다.
축원 대상 목록을 돌리는 보살님은 매일 그 일을 하셨고, 법회가 끝나면 매일 보살님들이 깔고 앉았던 좌복을 지퍼 방향까지 맞춰 차곡차곡 정리하는 보살님도 계셨다. 저녁을 먹지 못하고 법회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많은 양의 김밥을 직접 싸 오시는 보살님도 계셨다.
열흘 동안의 법회가 매일 누군가의 손길로 준비되고 진행되고 있었다. 법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누군가가 좌복을 열 맞춰 깔고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법회가 끝나면 시주 들어온 음식들을 봉지에 하나하나씩 담아 돌아갈 때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다.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결과였다. 그것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 또한 자비도량참법이 끝난 후 바로 간식만 받아 나올 수 없었다.
절에서 생활하며 크고 무거운 좌복을 정리하는 것이 한 사람이 하기에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좌복을 정리하시는 보살님 옆에서 좌복을 하나씩 날라드리며 돕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지 않은 테이블도 접어 테이블을 정리하시는 보살님께 가져다 드렸다. 바닥에 놓인 바카라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나도 이곳을 함께 이용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이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미리 역할이 정해진 자원봉사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손을 보태게 되었다.
청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흐린 눈을 하고 지나치면 결국 다른 사람이 치우게 된다. 처음에는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는 것이 하기 싫어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다른 자원봉사자가 비우겠거니 하고 그냥 지나치곤 했다. 내 담당이 아니니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이 꼭 담당자만의 역할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가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휴지통이 차있는 것을 보았다면, 누군가가 치우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비우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아예 휴지통을 비우고 나왔다. 휴지통을 비우지 않은 채 모른 척 지나가며 마음에 찝찝함을 남기느니, 그냥 후딱 해버리고 마음이 편해지는 쪽이 훨씬 나았다.
템플스테이를 담당하시던 정현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다. 스님이 과거 수행할 때 은사 스님께서 “형광등에도 눈이 달렸다”라고 하시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냥 넘기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형광등에도 눈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휴지통 하나 비우는 일쯤은 가볍게 할 수 있다. 가뜩이나 생각이 많은데, 휴지통 하나를 비우지 않았다는 마음의 걸림을 남겨두고 ‘내가 비웠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휴지통을 비우는 편이 속이 편했다.
자비도량참법에 참여하시는 자원봉사자분들은 나처럼 숙소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하는 자원봉사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법회에 참여해 맡은 역할을 해내시는 것이었다. 자원봉사란 어떤 대가나 강제성 없이, 자신의 자유 의지로 다른 사람이나 슬롯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인데, 나는 숙소를 제공받으며 템플스테이 방사를 청소하였고, 덕분에 절에서 생활하면서 편하게 새벽예불도 드리고 자비도량참법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내가 하는 것이 과연 자원봉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템플스테이를 다녀간 사람들의 방을 청소하고, 수십 개의 이불을 세탁하고, 널어놓고, 마르면 걷어서 차곡차곡 개어놓고, 다시 새롭게 올 사람들을 위해 방을 준비하는 일의 양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매일같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움직여야 하는 나날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내가 없다고 해서 템플스테이 운영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팀장님이 혼자서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템플스테이 운영에 자원봉사자가 꼭 필요한 것일까. 처음에 왔을 때, 이곳의 청소 방법을 배우고 절의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덕분에 시간이 지나 청소에 익숙해지고, 절의 문화에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의 생활도 편해지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수행과 참선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청소나 빨래 등을 하면서 생각을 털어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곳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템플스테이 팀장님은 새로 온 사람에게 절 생활에 대해 알려주고, 이곳의 청소 방식을 알려주고, 이곳에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다. 그 일을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결코 적지 않은데, 이곳에서는 계속 새로운 사람을 받아줘서 절에서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 또한, 이곳에서의 시간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원봉사자를 받는 이유가 단순히 노동력이 필요해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 이곳에서의 시간을 경험할 기회를 주기 위해 받아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없이 감사했다.
자비도량참법에 참석하는 보살님들은 멀리서 차를 타고 오셔서 법회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고, 법회가 끝난 뒤에는 자리를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에도 모두 먼저 나서주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조금씩 더 하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좋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이곳에서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공동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이전에 회사를 다닐 때, 청소나 분리수거는 미화여사님의 몫이었고, 회사 내에서 물건을 운반하거나 수리하는 것은 그 담당자의 몫이었다. 내가 더럽히지 않은 공간을 정리하는 것 역시 담당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만들거나 발생시킨 것이 아니라면, 쓰레기를 줍거나 다른 사람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을 치우는 것 역시 내가 할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절에서는 쓰레기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먼저 줍고, 시키지 않았어도 수행공간의 정돈과 청결에 힘쓴다. 각 도량마다 청소하고 관리하는 보살님들이 따로 계셔도, 누구의 일인지 따지지 않고 스스로 정리하고 청소한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니 함께 치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처음에는 내 일도 아닌데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닐까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절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보살님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게 되었고, 그런 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 내가 스스로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