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자원봉사자로 템플스테이에 머물며 매일 해야 할 일을 반복하는 동안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마음이 가라앉자 비로소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오신 두 분의 보살님이 인상적이었다. 두 분은 백중 입재에 동참하기 위해 절을 찾아 며칠간 머물고 계셨다. 두 분은 오랜 도반 사이이신데, 도반이란 불교에서 함께 수행하고 공부하는 벗을 의미 한다.
두 분은 돈을 내고 템플스테이에 오셨지만, 절에 머무는 동안 쉬는 일이 없었다. 여자화장실의 휴지통을 틈틈이 비워주셨고, 한낮에는 사찰 곳곳의 잡초를 뽑으셨다. 두 분 모두 무릎이 좋지 않아 절을 할 수 없었고, 참선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하셨다. 등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며 무릎을 접기도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늘 접이식 간이 의자를 들고 다니며 대웅전 맨 뒤에 자리를 잡고 예불에 참여하셨다.
두 보살님은 돈을 내고 쉬러 온 사람들이라기보다 한 가지라도 더 사찰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으려는 사람들 같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절 생활을 하셨다. 두 분이 종교를 대하는 마음에서는 진심이 느껴졌고, 큰스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모습에서는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백중 입재 다음 날 아침, 큰스님의 법회가 있었다. 그날 큰스님께서는 화두참선에 대한 리플릿을 만들어 나누어주셨다. 나는 그저 큰스님께서 바카라자를 만들어 나누어주시는구나,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두 보살님은 달랐다. 두 분은 큰스님께서 나누어주신 리플릿을 소중하게 가슴에 꼭 안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소중한 인형을 품에 안은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나는 어느새 마음속으로 그분들을 의지하고 있었다. 내게는 참 따스한 어른들이었다.
그리고 내 템플스테이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자원봉사자분이었다. 그분은 나보다 불교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어서 사찰 내의 여러 가지를 알려주셨고, 마침 절에서 자비도량참법을 하고 있으니 한번 들어보라고 권해주셨다. 템플스테이를 담당하시는 스님도 괜찮으면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새벽예불에 참여하고, 예불이 끝나면 108배를 했다. 이어 20분간 참선을 한 뒤 아침 공양을 가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불자도 아니고 불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10일씩 이어지는 자비도량참법은 선뜻 참여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첫날에는 가지 않고 저녁 예불에 한번 가봤었다. 그런데 다음날 다른 자원봉사자님이 자비도량참법에 가면 김밥을 나눠준다고 했다. 매일 먹는 공양도 맛있었지만, 나는 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절에서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어차피 저녁 시간에는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 날에는 자비도량참법에 한번 가보았다. 들은 대로 김밥을 나눠주셨는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나는 매일 자비도량참법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비도량참법은 열 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내가 머물던 절에서는 하루에 한 권씩 열흘에 걸쳐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잘못을 참회하며, 다른 사람과 모든 생명에게도 평안이 있기를 발원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저녁 타종이 끝나면 자비도량참법이 시작되었다. 스님이 앞에서 경전을 읽으면 함께 바카라을 따라 읽었고, 중간중간 ‘지심귀명례’라는 말이 나오면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바카라을 읽고 절을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바카라 한 권이 끝나면 마지막에는 스님이 기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 축원해 주셨다. 내 이름이 스님의 목소리를 통해 불단 앞에 울려 퍼지는 순간,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불교를 잘 알지도 못했고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들어갔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길을 빌어준다는 것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온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 나를 둘러싼 공기 전체가 안전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절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자비도량참법은 열 권을 모두 마치면 수많은 절을 하게 되는 수행이었다. 아침 예불을 드리고, 템플스테이 자원봉사자로서 해야 하는 청소와 빨래 등을 하고, 저녁 예불에 이어 자비도량참법까지 하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었다. 다음 날이면 온몸에 근육통이 찾아왔다.
근육통은 참을 만했지만, 자비도량참법까지 하고 나니 내 시간이 너무 없어지는 것 같았다. 템플스테이에 와서 조용히 사색하며 앞으로의 길을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자비도량참법이 끝나면 밤 9시 30분쯤이었다. 피곤한 몸으로 방에 돌아오면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다음 날에는 자비도량참법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자니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와서 뭐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비도량참법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간에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다음 날부터 자비도량참법이 끝날 때까지는 매일 자비도량참법에 참여했다. 방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함께 자비도량참법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자비도량참법이 시작하기 전에 주소와 이름을 적는 종이가 돌았다. 거기에 주소와 이름을 적으면 자비도량참법이 끝난 뒤 스님께서 이름을 불러 축원을 해주셨다. 두 번째 날에 갔다가 피곤해서 세 번째 날에는 가지 않았는데, 다른 보살님들이 “서울보살님 왜 안 왔냐”라고 다른 자원봉사자에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서울보살님이 되었다. 자비도량참법에는 안동보살님들과 영주보살님들, 그리고 주말에는 또 다른 서울보살님들과 부산보살님들까지 오셔서 함께했다.
절이 있는 문수산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오직 자비도량참법에 참여하기 위해 매일 안동에서 차를 타고 편도 한 시간씩 오가는 분들이 많으셨다. 영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주가 가깝다고 해도 차로 30분은 넘게 걸리는데, 그 먼 길을 매일 오가시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보살님들은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었다. 떡이며 과일이며 음료수를 한가득 가져오셔서 나눠주셨고, 자비도량참법이 끝나면 매일 비닐봉지에 먹을 것을 잔뜩 담아주셨다.
덕분에 나는 먹을 것이 귀한 절에서 먹을 것들을 잔뜩 받아 다음 날 아침 공양을 가지 않고 전날 받은 음식들을 아침 대신 먹기에 이르렀는데, 진짜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떡을 주시면 떡이 말랑말랑하고 촉촉했고, 과일을 주시면 세상에서 가장 달고 예쁜 과일들만 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자비도량참법을 시작하기 전에 김밥을 나눠주셨는데, 진짜 이 김밥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이었다. 10일 동안의 자비도량참법 기간 동안 매일 다른 종류의 김밥을 싸주셨다. 어떤 날은 매콤한 맛이 나는 김밥, 어떤 날은 치즈김밥, 어떤 날은 충무김밥, 어떤 날은 어묵이 들어간 김밥 등 매일 다른 종류로 준비해 주셨다.
가게에서 사 온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신다고 하는데, 매일 50줄씩 준비해 가져오시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김밥이 정말 너무 맛있어서 먹을 때마다 행복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재료를 준비하고 시간을 들여 김밥을 만드는 보살님의 노고가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하루도 아니고 어떻게 열흘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직접 대량의 김밥을 준비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마음이어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절에 와서 매일같이 잔뜩 받기만 하는 것 같았다. 공양 때도 불단에 올렸던 과일처럼 가장 예쁘고 맛있는 것들을 먹었다. 복숭아를 좋아하지만 껍질을 까서 먹는 것이 번거로워 잘 먹지 않았는데, 공양에 나오는 복숭아는 껍질이 예쁘게 벗겨져 있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있었다. 공양간 보살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신 것이었다.
스님이나 절에 계신 다른 분들은 나에게 늘 먹을 것을 나누어주셨다. 템플스테이를 담당하시는 스님께서는 절이라 커피가 귀하다며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한 움큼 주셨고,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절에서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템플스테이에 올 때에는 경험이 없어서 빈손으로 노트북과 휴대폰만 들고 왔는데, 절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커피 같은 것을 나누어줄 것을 염두에 두고 넉넉히 가져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나는 내 몫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했다. 회사에서는 옆자리 동료와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일조차 어색했고, 사무실에서 무언가를 먹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누군가 무언가를 먹고 있으면 모른 척 시선을 거두곤 했다. 저 간식조차 저 사람의 귀한 근로소득으로 구매한 것일 텐데, 나눠달라고 말하는 것은 타인의 노동 가치를 탐내는 것 같다는 팍팍한 생각마저 들었다.
사무실에서는 무엇을 입에 넣는 것조차 타인의 시선이 의식되었고, 남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서먹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절에 오니 템플스테이 팀장님도 사비로 먹을 것을 사서 계속 나누어주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버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절대로 뭐 한 가지만 주는 법이 없고 한 움큼씩 주셨다. 그런데 절에서 일한다고 억대 연봉을 받을 리는 없을 것이고, 그냥 모두가 마음에 여유가 많은 것 같았다.
청소를 하기 위해 빨빨대며 돌아다니면, 누구나 나를 불러 세워 잠시 마루에 앉아보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기도 하고, 빵 한 조각이라도 먹고 하라며 건네주시기도 했다. 일을 하고 있으면 늘 좀 쉬었다가 하라고 했다. 스님도 일을 주실 때에는 “화장실 갔다가 양치질하고 와서 이거 해주세요”라고 하시는데, 나는 회사에서 일할 때 너무 바빠서 양치질을 놓친 적도 많았다. 오후 3, 4시쯤 되면 그제야 여유가 좀 생겨서 그때 양치질을 하던 날도 많았고, 사실 아예 못한 날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면 메신저가 잔뜩 쌓여 있거나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 있어서 늘 바쁘고 쫓기듯 지냈다. 그런데 절에서는 모두 나에게 좀 쉬라고 했다. 회사와 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쉬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 낯선 감각이었다. 그런데 쉬어가며 일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더 편안한 방식이었다.
나는 한시도 쉬지 못하는 강박이 있는 편이다. 그 강박은 과거의 회사생활에서는 열심히나 성실함이라는 이름으로 꽤 잘 맞물려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쉼 없이 쌓인 피로가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던 것 같다. 천천히 소진되면서 나라는 사람 자체가 낡아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절에 와서는 계속 받기만 했다. 먹을 것을 받아먹고, 일을 하다가도 잠시 앉아 쉬라는 말을 듣고, 일을 주실 때에도 양치질부터 하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나를 감싸고 있던 묵은 허물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허물 아래에는 잊고 있던, 조금 더 편안하고 느긋한 내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