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할 일이 있는데 갑자기 청소할까

정리하면 마음도 정리될까

by달꼼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고, 미루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연다.


그런데 이상하게 바카라상이 눈에 들어온다.

볼펜이 몇 개 흩어져 있고, 종이도 가지런하지 않다. 컵 하나도 놓여 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갑자기 거슬린다.


‘이것만 정리하고 시작하자.’

볼펜을 정리하고, 종이를 모은다. 그리고 컵을 씻는다.


그러고 나면 바닥이 보인다.

‘어차피 하는 김에 이것도 치우자.’


청소기를 꺼낸다.

청소를 하다 보니 옷장도 눈에 들어온다.

옷장을 정리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 전체를 청소하고 있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면 방은 깨끗해져 있다.

그리고 그제야 생각한다.

‘그런데 원래 뭐 하려고 했지?’


컴퓨터 화면에는 한 시간 전과 똑같은 파일이 열려 있다.

해야 할 일도 그대로다.


우리는 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갑자기 청소를 시작할까.


물론 청소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꼭 그런 날에는 청소가 하고 싶지 않다.

평소에는 신경 쓰이지 않던 바카라상이 갑자기 거슬리고, 몇 달 동안 정리하지 않던 서랍이 갑자기 신경 쓰인다.


공부해야 하는 날에는 방을 정리하고 싶고, 보고서를 써야 하는 날에는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고 싶다.

심지어 중요한 일을 앞두고 갑자기 냉장고 청소가 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먼지 하나가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이것만 해놓고 시작해야지.’


문제는 그 ‘이것만’이 잘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카라상을 정리하면 바닥이 보이고, 바닥을 청소하면 바카라장이 보인다.

바카라장을 정리하다 보면 오래된 바카라이 눈에 들어오고, 오래된 바카라을 보다 보면 사진첩을 열게 된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한참이 지나 있다.


우리는 꽤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정작 해야 할 일은 시작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청소는 결과가 너무 분명한 일이기 때문일수도 있다.

바카라상을 정리하면 바로 깨끗해지고, 바닥을 닦으면 바로 달라진다. 옷장을 정리하면 그 만큼 공간이 생긴다.

내가 한 행동이 눈앞에서 바로 결과로 돌아온다.


반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보고서는 한 시간 쓴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한다고 실력이 눈에 보이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일은 한참을 해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결과가 확실한 일을 선택한다.


청소를 하면 적어도 방은 깨끗해진다. 정리를 하면 적어도 바카라상은 깔끔해진다.

‘오늘 아무것도 안 했어.’ 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미안한 날에도, ‘그래도 방은 정리했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분명 무언가를 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해야 했던 일과는 조금 다른 일일 뿐이다.


특히 어려운 일일수록 시작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일은 잘하고 싶다. 잘못하고 싶지 않고,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부터 머릿속에서 일이 커진다.


‘이거 꽤 오래 걸리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바카라상 정리는 다르다.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눈앞에 있는 물건부터 치우면 된다.

결과도 금방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앞두고 갑자기 쉬운 일을 찾는다.


청소일 수도 있고, 정리일 수도 있고, 인터넷 검색일 수도 있고, 휴대폰을 확인하는 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인데, 적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얻을 수 있다.


준비와 미루기는 닮아있다.


‘바카라상을 정리하고 시작하자.’

여기까지는 충분히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바카라상을 정리한 뒤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고, 파일을 정리한 뒤 메일을 확인하고, 메일을 확인한 뒤 갑자기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한다면 조금 달라진다.


우리는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작을 계속 뒤로 미루고 있다. 준비는 언제든 좋은 이유가 된다.


‘조금만 더 준비하고.’

‘이것까지만 해놓고.’

‘환경부터 만들어놓고.’


그렇게 말하다 보면 정작 시작할 순간은 계속 뒤로 밀린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조건 청소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정리부터 하는 것이 일을 시작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청소를 했느냐가 아니라 왜 청소를 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정말 집중하기 위해 바카라상을 정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작하기 싫어서 바카라상을 정리하는 것인지.


겉으로 보면 똑같다. 어찌되었든 둘 다 바카라상을 치우고 있으니까.

하지만 하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이고, 다른 하나는 일을 시작하지 않기 위한 준비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조건을 붙인다.

바카라상이 깨끗해야 하고, 조용해야 하고, 시간도 충분해야 하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면 알게 된다. 그 모든 조건이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는 걸.

바카라상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어도 일은 할 수 있고, 조금 어수선한 방에서도 공부는 할 수 있다. 완벽하게 준비

된 상태가 아니어도 시작할 수 있다.


오히려 시작하고 나면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보인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준비하려고 하는 것보다 일단 시작하는 편이 더 쉬울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청소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방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려운 일을 앞두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 바카라상 위의 물건 몇 개라도 정리하면 조금 편해진다.


세상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날에도 적어도 눈앞의 바카라상 하나는 정리할 수 있다. 내가 움직인 만큼 달라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는 때때로 작은 성취감이 된다.


문제는 그 작은 성취감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이다.

방은 깨끗해졌는데 해야 할 일은 그대로라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곳에서 잠시 다른 곳으로 회피한 것일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도 괜찮다. 모든 미루기가 나쁜 것은 아니니까.

잠깐 쉬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도 있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쉬고 있는지, 피하고 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쉬기로 했다면 편하게 쉬면 된다. 청소하기로 했다면 청소하면 된다.

다만 해야 할 일을 피하면서 계속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그때는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있고, 아마 바카라상은 조금 지저분할 것이다. 볼펜도 몇 개 놓여 있고, 어제 마신 컵도 아직 남아있다. 평소에는 신경 쓰이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때 바카라상을 정리해도 좋다.

다만 한 번쯤 생각해보자.


정말 바카라상이 지저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해야 할 일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런 건지.

만약 후자라면 종이 한 장쯤은 그냥 놔둬도 괜찮다.


바카라상은 조금 어수선해도 된다. 일을 하다 보면 다시 어질러질 테고, 끝나고 나서 치우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정리된 바카라상이 아니라, 조금 어수선해도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니까.


그리고 정말 청소가 하고 싶다면, 일이 끝난 뒤 마음 편하게 하면 된다.

그때는 청소를 미루지 않아도 되니까.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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