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우리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방법
우리는 가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누군가의 말을 조금 더 귀담아들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각은 늘어난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뒤늦게 이해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 왜 아쉬운 결과로 이어졌는지, 어떤 순간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때는 나름대로 충분히 고민했고,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족했던 부분부터 눈에 들어온다. 지금의 나라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더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그 선택이 전부는 아니라고.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될 것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어떤 후회로도 바꿀 수 없고, 한 번 내린 선택은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짚어 본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걸까.
어쩌면 과거가 그리워서라기보다,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경험이 쌓이고, 이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게 된다. 한때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일도 익숙해지고,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을 무사히 해내는 것,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잘 마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다음이 보인다.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넓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에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대가 커지는 것이다.
물론 기대가 커진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대가 커질수록 현재의 모습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이미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에 더 오래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예전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만족하기는 어려워진다. 예전에는 잘했다고 생각했을 일이 이제는 평범하게 느껴지고, 한때는 간절하게 바라던 자리에 도착하고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성장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만큼,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일도 늘어나는 것.
그래서 우리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도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면 아쉬운 점이 보인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나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지식도 그때는 몰랐을 수 있다.
지금은 쉽게 내릴 수 있는 판단도 그때는 수많은 고민 끝에 겨우 내렸을 수 있고, 지금은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는 경험도 당시에는 처음 마주하는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면서, 과거의 나에게 지금과 같은 판단을 기대한다.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때의 내가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는 충분히 헤아리지 않는다.
성장한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과거의 내가 잘못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때의 시간과 경험이 있었고, 지금의 나에게는 그때를 지나오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
우리가 지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내가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했다.
미련이 남으면 후회고, 후련함이 남으면 경험이 아닐까.
어떤 일을 떠올렸을 때 여전히 아쉽고 마음에 걸린다면 후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이제는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후련함은 결과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선택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이 지나고 나서 보니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시간을 실패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때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결과를 통해 과거의 선택을 평가한다. 좋은 결과를 얻으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얻으면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만으로 당시의 선택을 판단하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때는 어떤 정보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제한적이었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판단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에 내리는 판단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리는 판단은 같을 수 없다. 그러니 결과가 아쉽다는 이유만으로 그때의 내가 잘못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모든 선택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며 잘못을 발견했다면 인정해야 하고,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면 다음에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반성과 자바카라은 다르다.
반성은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반면 자바카라은 이미 지나간 선택을 붙잡고 지금의 나를 계속 나무라는 일에 가깝다.
같은 장면을 수없이 떠올리면서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거에서 배우는 일이라기보다 과거에 머무는 일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후련함이란 아쉬움이 남지 않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인정하되 그때의 나를 더는 탓하지 않는 것.
잘못한 부분은 배우되 그 시절의 모든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 것.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과거를 마음속에 남겨둘 수 있다면, 언젠가는 후회라고 불렀던 일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교적 너그러우면서도 자신에게는 유독 엄격할 때가 있다.
누군가 실수하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고 말해 준다. 경험이 부족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위로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실수 앞에서는 왜 몰랐을까. 왜 조금 더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마치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과거의 나도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 역시 처음 살아보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어떤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었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 앞에서 오래 고민했을 수도 있고,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때의 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우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음 선택을 한다. 그렇게 조금씩 달라진다.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나와 같은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지금의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은 처음부터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시간을 통과하며 얻은 것이니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행동하고 싶은 순간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때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조금 덜 두려워했더라면, 누군가에게 한마디 더 건넸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런 마음까지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다.
아쉬움은 남겨두어도 괜찮다. 다만 그 아쉬움이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부족한 것을 더 많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을 아직 갖지 못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잘못한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몰랐던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선택을 지나온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과거의 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때의 선택이 모두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있어야 지금의 나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때때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를 탓할 수도 있고, 그때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같은 과거를 두고도 한쪽에서는 후회만 남고, 다른 한쪽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음먹는다고 모든 후회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이고, 어떤 선택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쉬울 것이다.
이미 지나간 기회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하고 싶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과거를 통해 배운 것으로 현재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현재가 있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현재가 있다는 것.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의 내가 있어야 무엇이든 가능하니까.
지금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며 아쉬워할 수 있는 것도,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도 모두 현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되, 그 시간을 지나온 나까지 부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때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그 선택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믿어도 좋다.
미련이 남는다고 해서 그 시간이 전부 후회로만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더라도, 그때의 나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부터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지금의 나 역시 미래의 나에게는 아쉬운 모습으로 남을지 모른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될 테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지금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배우면 되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다음에 다르게 선택하면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난 뒤에야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잘 살아간다는 것은 후회가 전혀 없는 삶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후회가 남더라도 그 안에서 배울 것을 찾고, 아쉬움이 남더라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지나온 나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일에 더 가까울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때의 내가 더 잘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그 생각 끝에 다른 말도 덧붙이고 싶다.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때의 내가 지나온 시간 덕분이라고. 그리고 아직 내게는 현재가 남아 있다고.
미련이 남으면 후회고, 후련함이 남으면 경험이라고 했다.
후련함은 과거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미련이 남더라도 그 시간을 지나온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는 마음과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하는 마음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니 과거를 돌아보는 오늘의 내가 너무 오래 그곳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품고 살아가는 지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