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다
냉장고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제 있던 음식은 오늘도 있고, 오늘 아침에 없던 음식이 저녁이 되었다고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냉장고를 믿지 못할 때가 있다. 분명 아까 확인했는데 또 연다. 이번에는 먹고 싶은 게 있을까 싶어서.
냉장고를 연다. 물을 마시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먹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을 열고 안을 한 번 훑어본다. 김치가 있고, 계란이 있고, 먹다 남은 반찬도 있다. 어제 사놓은 음료도 하나 있다.
잠시 고민한다.
“음…”
그리고 닫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분 뒤에 다시 냉장고를 연다. 달라진 것은 없다. 김치는 그대로 있고, 계란도 그대로 있고, 아까 봤던 반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냉장고를 연다.
이번에도 한참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시 닫는다. 도대체 우리는 냉장고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냉장고를 열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대충 알고 있다.
어제 장을 봤다면 무엇을 샀는지도 기억하고 있고, 먹다 남은 음식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냉장고 안에 갑자기 새로운 음식이 생겼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도 다시 연다.
이제는 왜 사람들은 그 사소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할까 의문이 생긴다.
뭔가 먹고 싶기는 한데 정확히 무엇을 먹고 싶은지는 모르겠을 때가 있다. 라면은 조금 부담스럽고, 밥을 먹기에는 귀찮고, 과자는 별로 당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럴 때 냉장고를 연다. 혹시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것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냉장고 안을 보면 갑자기 생각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열어보면 별로 먹고 싶은 게 없다. 냉장고에는 음식이 있는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
그래서 다시 닫고, 다시 연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이것은 일종의 의식 행위가 아닐까?' 라는 생각.
생각해보면 냉장고를 다시 여는 것은 그 안에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달라졌을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계란이 먹기 싫었는데 지금은 괜찮을 수도 있고, 반찬이 별로였는데 그것도 먹을 만할 수 있다.
냉장고 안의 음식은 그대로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냉장고를 다시 확인한다. 비슷한 일이 식당에서도 일어난다. 메뉴판을 한참 보고 음식을 고른다.
“나는 이거.”
주문을 끝낸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다른 메뉴를 먹고 있으면 갑자기 맛있어 보인다. 아까 메뉴판을 볼 때는 별로 관심도 없었던 음식이다. 그런데 누군가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찮아 보인다.
잠시 후 내가 시킨 음식이 나온다. 그런데 옆 테이블 음식을 한 번 더 쳐다본다.
‘저거 시킬 걸 그랬나?’
참 이상하다.
분명 내가 먹고 싶어서 고른 음식이고, 불만족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른 선택지가 조금 더 좋아 보인다.
이런 일은 음식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 골랐는데 다른 제품을 다시 찾아본다.
여행지를 정해놓고도 다른 여행지를 검색한다.
영화를 골라놓고도 다른 영화를 찾아본다.
심지어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해놓고도 다른 사람들이 어디에 놀러 갔는지 찾아본다.
우리는 선택을 한 뒤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계속 바라본다. 냉장고를 다시 여는 것도 이런것들과 비슷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아직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먹고 싶은 게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이 말에는 묘한 기대가 들어 있다. 물론 냉장고 안에 새로운 음식이 생길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조금 전과 달라졌을 수 있다.
그리곤 냉장고를 열고, “역시 없네.” 하고 닫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완전히 실망하지는 않는다. 조금 있다가 또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순간이 꽤 많다.
휴대폰을 확인한다. 특별한 알림이 없다. 그런데 조금 뒤에 또 확인한다.
새로운 알림이 생겼을 가능성은 별로 없는데도 다시 본다. 메일함을 확인하고, 메신저를 확인하고, 인터넷을 새로고침한다.
무언가 달라졌을 것 같아서. 실제로는 세상이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없는데 계속 확인한다.
사람은 변화 자체보다 변화의 가능성에 더 쉽게 움직이는 존재이니까.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혹시 무언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작은 가능성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든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었다가 다시 닫는 행동을 굳이 이상한 습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단순히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그럴 때 냉장고를 닫아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다시 열어보면 아직 선택지가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치를 먹을 수도 있고, 계란을 먹을 수도 있고, 남은 반찬을 먹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달앱을 열면 된다. 냉장고 문 하나를 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몇 가지 선택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냉장고를 반복해서 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냉장고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선택지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선택지가 줄어든다.
처음에는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면
“이건 싫고, 이건 별로고, 이건 먹기 귀찮고…”
하나씩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냉장고를 다시 연다.
왜일까.
‘아무것도 없네’와 ‘먹을 게 없네’는 조금 다르다.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사실일 수 있지만, 먹을 게 없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그렇게 느끼는 감정이니까.
그래서, 가끔 냉장고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갈 때가 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다시 배가 고파진다.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고, 그냥 밥을 먹는다.
그때 생각한다. ‘아까 그냥 먹을 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음식이 아니라 시간이 아니었을까.
배가 조금 더 고파지거나, 마음이 조금 달라지거나, 귀찮음이 조금 사라지거나, 그냥 갑자기 계란이 먹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그래서 같은 냉장고를 몇 번씩 열어봤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꽤 재미있는 존재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확인하고, 이미 결정했으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고, 별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휴대폰을 다시 보고, 분명히 본 것을 다시 본다.
때로는 확실한 답보다 작은 가능성을 더 얻고 싶을때가 있으니까.
“없겠지.”
하면서도 열어보고,
“별거 없겠지.”
하면서도 확인하고,
“아마 똑같겠지.”
하면서도 다시 본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오늘도 냉장고를 열어본다.
김치가 있고, 계란이 있고, 어제 먹다 남은 반찬이 있다. 아까와 똑같다. 잠시 바라보다가 문을 닫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뭐 먹지?”
잠시 후 다시 냉장고를 연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란이 조금 괜찮아 보인다. 냉장고가 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조금 달라진 것이다.
우리가 냉장고를 여는 이유는 새로운 것이 생겼는지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시 봤을 때 내가 다르게 느끼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러니까 오늘도 냉장고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면,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음식이 없는 냉장고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아직 결정하지 않은 나를 한 번 더 확인했는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