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의 현역

수고 많으셨습니다

by청순일기

86세의 개인택시 기사가 면허를 내놓았다는 연락이 왔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제나저제나 학수고대하던 남편이었다.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36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다.


긴 세월, 밥벌이의 무게를 지고 살았으니 퇴직 후 좀 쉬어도 좋으련만 그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노동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정해진 날에만 쉬는 생활을, 다시 하기를 원했다.




면허를 양도하는 분이 86세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남편과 같이 택시 조합 사무실에 가서 그분을 뵙고는 한 번 더 놀랐다. 짧은 백발의 머리에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이었다. 처진 눈에는 백태가 끼었고 굵게 파인 주름이 분명히 노인의 얼굴이었지만 말씀하는 거나 행동하는 것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양도양수에 필요한 서류도 많고 작성할 것도 많았는데, 어르신은 되묻지도 않고 일사천리로 서류 작성을 하셨다. 속으로 감탄하였다. 그 연세에, 총기가 남다르셨다. 바로 어제까지도 영업하셨다고 한다.


총명하셔서 86세의 나이에도 택시 운전을 할 수 있었던 건지, 계속 일을 해서 그 연세에도 총명하신 건지 궁금했다.


택시 면허의 양도 금액은 꽤 큰 돈인데 계좌로 이체하지 말고 수표와 현찰을 섞어서 달라고 하셨다. 은행까지 그분이 앞장서서 택시를 몰고 가고, 남편과 나는 뒤에서 쫓아갔다. 앞에서 쉭쉭 날아가듯 달리는 차를 보고, 남편은 ‘대단하시네!’를 연발하였다.


은행에 사람이 많아 대기표를 뽑고 한참 기다려야 했다.


“택시를 몇 년 하셨어요?”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그분께 다가가니, 운전대를 잡고 살아온 당신의 삶을 조근조근 말씀하셨다.

누군가에게 시원섭섭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19살에 고향을 떠나와 군인이 되었지요. 파주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할만합디다.

배운 것도 많지 않고, 그래서 군대에 말뚝박기로 했지요.


45살에 군대에서 나와 그때부터 택시를 운전했어요. 40년 넘게 핸들을 잡고 살았지요.


아침에 나왔다가 점심때는 꼭 집에 들어갔어요. 마누라랑 같이 밥을 먹고 다시 나가서 일했지요. 집사람이 몸이 약해서 챙겨 줘야 했거든요. .


아들 녀석 하나 있는데, 지 엄마 닮아 몸이 약해요. 다행히 짝을 만나 사는데, 신장 투석 받고 누워 있는 날이 많아서 돈벌이가 힘들어요. 며느리가 버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니 내가 돈을 보태줘야 해요.


그러니 지금까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어도, 수 중에 돈이 없어요. 통장을 보면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는 택시를 몰고 다니는 일이 좋았어요. 차 세워 놓고 기사들이랑 길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말이 오가면 재밌지요.


그런데 나이는 못 속여요. 깜박거리는 게, 택시 운전을 계속하면 민폐를 끼칠 수도 있겠구나, 그만할 때가 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이 일을 그만두면 내일부터 뭐 하고 사나 싶네요. "

긴 세월 삶의 무게를 견디어 낸 그분의 허리는 아직 꼿꼿하였고, 걸음걸이는 흔들림이 없었다.


내가 벌지 않으면, 아내도 가정도 지킬 수 없다는 절박감은 평생 그를 고단하게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나이에도 당당해 보이게 하였다.


수표와 현금을 받아 들고, 어르신은 남편에게 덕담을 해주고 가셨다.


“나는, 재미있게 했어요. 재미있게 하십시오.”


이제야 현역에서 퇴장하는 그분의 뒷모습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쳐 드렸다.

한동안 그분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100세 시대가 곧 현실이 되는 장수 시대이다.


80세의 노인이 대통령의 직위에 있고, 100세를 넘긴 고령의 몸으로 강연을 하고 바카라도 출간한다.


그런데 내게는 그 어르신이 어떤 분 보다도 인상 깊었다. 86세까지 가장으로서의 바카라임을 넘치게 감당하고, 지나온 시간을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는 한 인간에게 고개가 숙여지는 듯한 마음이었다.


어르신이 살아오신 긴 세월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