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놀아도 돼
어르신은 택시면허를 넘기며 섭섭해하셨지만 나는 정년퇴직하는 날, 홀가분하기만 하였다.
‘시원, 섭섭’이 아니고 시원함뿐 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항공사에서 정년이 될 때까지 근무하였다.
37년간의 긴 근무를 하여 회사를 떠나는 것이 섭섭할 만도 한데 그것보다는 ‘끝!’이라는 마침표가 기뻤다.
이제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듯했다.
돈을 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신이 고달프다는 말이 딱 맞다.
늘 시간에 쫓기듯 지냈다. 업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매뉴얼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퇴직할 때까지 외국어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항공사의 특성상 새벽 출근과 심야 퇴근이 다반사였고 구두를 신고 넓은 공항을 뛰어다니느라 발은 티눈과 굳은살로 성할 날이 없었다. 기상 관계나 항공기 정비 문제로 인한 지연과 결항도 많아서 클레임하는 승객들에게 하염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날도 많았다.
돈을 버는 조직안에서의 인간 관계는 삭막할 수 밖에 없었다.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말을 못 했던 비겁한 모습, 시기와 질투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기억들은 아프고 부끄러웠다.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가족이 있어서였다. 가족이 있어서 죽기살기로 매달렸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 있어 위안을 받았다.
아이들 어릴적에는 아이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주지 못해 미안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일찍 독립적이 될 수 있었고 커서는 회사에 다니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44살의 겨울, 아이들 아빠가 부동산 사기에 연루되면서 우리 집은 빈털털이가 되었다.
살던 집을 내주고 월급은 한동안 차압이 되었다.그걸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 채권자들은 회사로 찾아가겠다고 겁을 주었고, 출근하며 혹시 공항에 와서 기다리는 건 아닐까 가슴 졸이던 시절이었다.
44년의 삶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가족이 있었다.
밥벌이의 끈을 꽉 잡고 매달렸고 결국 그 끈이 나와 가족을 지켜주었다.
어르신의 지난 시간을 들으며, 그분의 애쓴 세월이 지켜낸 한 가정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버티었던 시간도 보였다. 힘들었던 그 시절이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킨 가장 단단하고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같이 회사 생활을 하였던 동료들, 서로 헐뜯기도 했고 앞서가기 위해 경쟁했던 동료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견디어 낸 것이다. 장하고 기특한 사람들이었다.
즐거웠다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 속의 나에게도 뒤늦게 고개를 숙인다.
어르신은 택시 일을 그만둔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는지 가끔 궁금하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산바카라을 하고, 아픈 마나님을 일으켜 같이 밥상에 앉고, 가끔은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옛일을 추억하며 평화롭게 지내시는 일상을 그려본다.
생의 마지막 장을 닫는 날까지 부디 평안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