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토토로

by이현지



유치원을 마치고 엄마를 따라 동네 은행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는 내 키보다 훨씬 큰 커피자판기가 있었는데,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 무엇보다 가슴 설레는 존재였다. 몇 백 원짜리 코코아와 율무차 중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은행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마음은 이미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별것 아닌 일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순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두근거림은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거대한 토토로였던 미지의 버튼. 동전 넣는 곳에 손이 닿지 않아 꼿발을 세워야 했던 커피자판기는, 어느새 내가 허리를 숙여 종이컵을 꺼내야 할 만큼 왜소해져 있다. 강산이 변해 이제는 흔히 만나볼 수도 없는 커피자판기를 어디선가 마주하게 되면, 마음속으로 ‘반가워. 안녕.’ 하고 꼭 한 번씩 웃어주고 가게 된다.


전국 곳곳에는 좋은 재료와 전통을 자랑하는 코코아와 율무차 성지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맛집에 찾아가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고민했던 그때의 감동을 느낄 수는 없다. 나는 코코아를 사랑하기 이전에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섰던 그때의 온도와 습도, 자판기를 올려다본 어린 날의 눈높이를 추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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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실력 좋은 미용사는 너무나도 많고 손가락 하나로 클릭하여 당장 예약할 수 있는 미용실도 천지이다. 코코아맛집이 전국에 널려있듯 뿌리염색도 어딜 가나 비등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미용실의 사정에 맞추어 내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한 미용실에 정착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곳을 찾는 것일까.


의문이 들 때마다 나는 거대한 토토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손님들이 나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얻어 가는 것이 단지 머리스타일의 변화뿐이라면,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 같다. 적어도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직업이라면 결과물에만 한정된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행복했는지, 돌아간 뒤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들. 그런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쌓여 비로소 한 사람의 단골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정말 세상에는 인간이 설명하지 못할 전지전능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바쁜 현실에 치여 본질을 잊게 될 때마다 우연한 곳에서 미색의 낡은 커피자판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 위치까지 그대로인 코코아와 율무차 버튼이, 30년이 훌쩍 지나 어른이 된 나를 반겨준다.


커피자판기의 옆구리에 달린 열쇠홈을 열어보면 그 안에 7살 먹은 어린 날의 내가 웃으며 숨어있을 것만 같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키다리아저씨가 있다니, 그것이 고철덩이 기계라서 유감이지만 고마울 따름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