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친밀감

by이현지




예쁜 머리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미용사의 손길을 빌려야만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용실에서 거쳐야 하는 많은 관문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1인미용실을 운영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도 내 머리를 하기 위해 근처의 다른 미용실을 찾아가야만 했다. 늘 고객을 맞이하는 입장이었던 내가 근처에 있는 타 미용실을 찾아가 손님가운을 입고 앉아서 머리를 하는 모습은 꽤나 재미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혹시 나를 알아보고 불편해하면 어쩌지'부터 시작해서 괜히 이것저것 염탐하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다. 온갖 말투와 행동에 부자연스러움까지 더해져 고장 난 로봇이 따로 없어 보일 지경이다.


헤어디자이너로서의 내 모습은 언제나 활기찼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천운을 거머쥔 나는 평생의 운을 다 끌어고 당겨썼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 조금 모자라 보이는 손님으로 앉아있으니 서둘러 볼일을 끝내고 내 구역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늘 날씨 좋죠?'

날씨 이야기로 시동을 걸어오는 그분의 목소리에 아차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의 웃는 얼굴에 나 또한 웃음으로 대면하고 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귀한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본격적인 대화태세로 돌입하는 미용사님께, "저 집에 가서 머리 감을 테니 안녕히 계세요!"라고 소리쳐 말하고 싶다. 멈춰줘요 나 정말 지금 이 순간 머리하면서 쉬고 싶거든요. 뭐든 과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도 어렵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안다. 미용실이라고 그것이 쉬울까 싶지만 거리 지키는 게 쉬운 일이라면 연인들끼리 밀당을 할 일도 없었을 테지.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는 또 그 미용실을 찾게 된다. 내가 굳이 새로운 미용실을 가지 않는 이유는, 분위기를 탐방하고 모험해야 하는 한 번의 경험이 귀찮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지난번 방문 때 말 걸어오는 걸 불편해하는 걸 느꼈는지 이번엔 조용한 ASMR만이 들려온다. 괜히 배려해 주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지금은 이 고요를 즐기고 싶다.


그렇게 나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1년 넘게 이 곳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 매장에 직원들이 생기면서 다른 미용실에 갈 일이 없어졌지만, 어느 순간 내가 다니던 그 미용실이 타 지역으로 이사 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고마웠다는 인사 한번 못 드렸는데... 이렇듯 주기적인 만남으로 마음이 연결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면대면하지만 알 수 없는 의리가 끈이 생기는 곳, 미용실이라는 곳은 알고 보면 생각보다 많은 내적친밀감을 공유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