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창문 Ⅲ - 1 by 마거릿 올리펀트
대사건이 일어난 것은 한여름 무렵이었다. 정확히 며칠이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즈음이었다. 그때쯤 나는 어둑한 그 넓은 방과 아주 친숙해져 있었다. 이제는 너무나 분명하게 보이는 에스크리투아르 바카라상과 그 위의 종이들, 발치의 바카라들뿐만 아니라 건너편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과 여러 어스름한 가구들도 익숙했다. 특히 어느 날 저녁, 바카라상 앞 빈 공간으로 옮겨져 있는 의자를 발견했을 때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누군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두어 번, 정적 속에 잠긴 그 공간에서 정체 모를 그림자나 떨림 같은 움직임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바로 그 누군가 말이다. 무언가 완성되려는 찰나에 항상 밖에서 방해하는 일이 생기지만 않았다면, 나는 바로 다음 순간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줄 무언가를 보거나 듣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번에는 어떤 움직임이나 그림자의 전조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방 안을 아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확인한 뒤, 나는 다시 바카라으로 시선을 돌려 아주 흥미진진한 대목을 한두 장 읽던 참이었다. 덕분에 나는 세인트 룰스도, 하이 스트리트도, 대학 도서관도 완전히 잊은 채 남미의 어느 숲 속에서 꽃 덩굴에 목이 졸릴 듯한 기분을 느끼며, 전갈이나 독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발을 내딛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바깥의 무언가가 내 주의를 끌어 길 건너를 보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중에는 피트밀리 씨도 있었다.
모두가 무슨 일이냐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늘 하던 대로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대답하며 부끄러운 듯, 하지만 몹시 흥분한 채 다시 자리에 앉자, 피트밀리 씨가 일어나 다가오더니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듯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자리로 돌아간 그가 메리 고모에게 “아가씨가 더위 때문에 깜빡 졸다가 깨면서 놀란 모양이니 걱정 말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라면 그의 무례함에 치를 떨었겠지만, 지금 내 마음은 다른 것에 완전히 사로잡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리는 욱신거리고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극도의 흥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자신을 절제하며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쉬웠다. 나는 그 노신사가 다시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그가 거기 있었다! 나는 속은 게 아니었다. 다시 건너편을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내 찾아 헤매던 것이라는 사실을. 방 안에서 움직임이 반짝일 때마다 내가 알고 있었고 기다려왔던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가 거기 있었다. 사실 내가 정말로 그를, 혹은 누군가를 기대해 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기묘하고 어둑한 방을 갑자기 들여다보았을 때, 그가 거기 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가 직접 가져다 놓았거나, 혹은 아무도 보지 않는 깊은 밤중에 누군가 그를 위해 가져다 놓았을 그 의자에 앉아 에스크리투아르 바카라상을 마주하고 글을 쓰고 있었다. 빛은 그의 왼쪽에서 흘러 들어와 어깨와 머리 옆부분을 비추고 있었지만, 고개를 너무 돌리고 있어서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누군가 나를 이토록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다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만약 누군가 서서 나를 지켜본다면, 내가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해도 나는 깨어날 것이다. 벌떡 일어나 모든 감각으로 그 시선을 느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빛이 그의 왼쪽에서 비친다고 해서 빛이 아주 밝았을 거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길 너머로 들여다보는 방 안이 그렇게 밝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를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의자에 앉은 그의 검고 단단한 체구의 윤곽,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맑은 점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그의 금발 머리가 보였다. 나는 건너편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의 그 희미하게 금도금된 액자를 배경으로 그의 윤곽을 뚜렷하게 포착했다.
손님들이 머무는 내내 나는 일종의 황홀경에 빠진 채 그 인물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내가 왜 이토록 동요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건너편 창가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학생을 보는 게 약간의 흥미를 끌 순 있어도 결코 이 정도로 나를 뒤흔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인의 알 수 없는 삶을 훔쳐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기 마련이다. 많은 것을 보면서도 아는 것은 거의 없고, 그 남자가 무엇을 하는지, 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것 말이다. 창가로 다가가되 너무 가까이는 가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가 나를 보고 스파이처럼 감시한다고 생각할까 봐 말이다. 그러고는 묻게 될 것이다. '아직 거기 있나? 계속, 계속 쓰고 있는 건가? 대체 뭘 쓰고 있는 걸까!' 그런 건 아주 즐거운 소일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뿐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숨도 못 쉬고 그를 주시했고, 완전히 몰입했다. 내 눈에는 다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평소처럼 메리 고모의 손님들이나 피트밀리 씨가 들려주는 현명한(혹은 어리석은) 이야기들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 뒤에서 목소리들이 오가며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섞여 들려왔다. 예전처럼 바카라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말을 빠짐없이 듣고, 내 바카라 속의 이야기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한데 섞여 소설 속 주인공이 그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던 그런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제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 아주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거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뿐이었다. 그는 내 몰입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오직 글쓰기에만 열중해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딱 그만큼만 움직였다. 페이지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펜을 옮길 때마다 머리가 아주 살짝 돌아갔지만, 그 페이지는 아무리 써도 끝이 나지 않아 결코 넘길 필요가 없는 긴 페이지처럼 보였다. 줄의 끝에서는 밖을 향해 아주 살짝 기울어지고, 다음 줄을 시작할 때는 안쪽을 향해 아주 살짝 기울어지는 정도였다. 누군가를 계속 지켜보게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엔, 희미한 빛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하나씩 하나씩 진실을 찾아내던 그 점진적인 과정이 지금의 이 순간으로 이어진 것 같다. 처음에는 방 그 자체를, 다음엔 바카라상을, 그다음엔 다른 가구들을, 그리고 마지막엔 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거주자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새로운 나라를 발견한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러니 창문이 있네 없네 하며 자기들끼리 논쟁하는 다른 사람들의 그 완전히 눈먼 상태란!
내가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으려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나는 메리 고모를 아주 사랑했고, 피트밀리 씨도 꽤 좋아했으며, 칸비 대부인은 조금 무서워했다. 하지만 그들의—차마 '어리석음'이라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그 눈먼 상태, 어리석음, 무신경함을 생각하면!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두고 가부를 논하다니! 그들이 나이가 들어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메리 고모 같은 분이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슬프고 잔인한 일이니까. 게다가 맷돌 속까지 꿰뚫어 본다는 영특한 칸비 대부인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 피트밀리 씨 같은 분들이 말이다. 그 똑똑한 분들이 단지 나처럼 젊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단순한 사실조차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들의 지혜와 지식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어린 소녀가 그토록 쉽게 보는 것을 보지 못하다니.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비통해서 그 생각을 깊이 파고들 수도 없었고, 그들보다 내가 훨씬 낫다는 사실에 절반은 부끄러우면서도 또 절반은 자랑스러웠다.
길 너머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건너편 방 안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글쓰기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고,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멈추지도 않았으며, 의자에서 몸을 돌리거나 우리 아버지처럼 방 안을 서성거리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작가시지만, 글을 쓰시다가도 창가로 다가와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기도 하며, 파리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기도 하신다. 또 커튼 장식을 만지작거리는 등 다음 문장이 떠오를 때까지 수십 가지의 즐겁고 바보 같은 짓들을 하곤 하신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빈둥거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시면 아버지는 "여보,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중이라오"라며 웃고는 다시 바카라상으로 돌아가신다.
하지만 저기 저 남자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마법 같았다. 나는 그와, 고개를 돌릴 때 내는 그 미세한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페이지를 넘기거나, 혹은 누군가 창밖에서 월터 스콧 경이 그랬다는 것처럼 다 쓴 종이를 바닥에 휙 던져버리는 장면*을 보고 싶어 초조함에 몸을 떨었다. 만약 저 낯선 이가 정말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나는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누가 있든 상관없이 도저히 참지 못했을 것이다. 페이지가 다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조바심이 극에 달해 내 머리는 뜨거워졌고 손은 차갑게 식어갔다.
*월터 스 경(Sir Walter Scott)
1814년 어느 여름날 저녁, 20대의 젊은 법학도 존 깁슨 록하트(John Gibson Lockhart)는 친구들과 에딘버러의 조지 스트리트(George Street)의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맞은편 집 창가에 앉은 남자를 보게 되었다. 그의 손은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는지 한 페이지를 다 쓰면 옆으로 휙 던지듯이 쌓아놓고 곧장 다음 페이지를 썼다. 그 동작이 너무나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고 압도적이어서 존과 그 친구들은 모두 홀린 듯이 그를 구경했다.
그 남자는 《웨이벌리(Waverley)》를 집필 중인 월터 스콧이었다. 그는 낮에는 법원 서기로 일하고 밤에는 미친 듯이 소설을 썼는데 어찌나 빨랐는지 종이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존 깁슨 록하트는 4년 후인 1818년에 작가이자 비평가로서 그 경이로운 손의 주인공을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다. 월터 스콧은 존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매우 아꼈으며 1820년에 존이 스콧의 장녀 소피아(Sophia)와 결혼함으로써 두 사람은 아예 가족이 되었다.
존은 월터 스콧이 세상을 떠난 후에 《월터 스콧 경의 생애 (Memoirs of the Life of Sir Walter Scott)》라는 방대한 전기를 썼다. 그가 다 쓴 페이지를 휙 던지던 모습도 그 전기 안에 수록된 내용이다.
※ 월터 스콧이 '경'인 이유: 월터 스콧은 1820년 조지 4세로부터 준남작(Baronet) 작위를 받아 '월터 스 경'이 되었다. 한국에서 출판된 《아이반호(Ivanhoe)》나 《롭 로이(Rob Roy)》 같은 바카라들에는 아무래도 한국 정서상 작가 호칭보다 이름에 더 집중하다 보니 호칭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셜록 홈즈 작가 아서 코난 도일 경(Sir Arthur Conan Doyle)도 마찬가지다.
소제목 '에스크리투아르에서 글 쓰는 남자'는 원작에는 없습니다. 올리펀트는 챕터를 숫자로만 구분해 두었습니다. 온라인카지노에 연재하기 위해 임의로 소제목을 달아 놓은 것임을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