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지다
아가야,
주름으로 이어진 메마른 손의 할머니도
아기를 안고 있는 포근한 품의 엄마도
가방을 메고 무겁게 걷는 학생도
배냇웃음으로 갓 태어난 아기도
모두 뒤를 돌아봅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길 위에서
우리는 모두
당신의 아가입니다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두려움에 걸려 넘어진 순간
무릎 위에 붉게 피어나는
애절한 밤의 기도
어깨에 앉은
따뜻한 햇살
아가라는 이름으로
가만히 대답하니
갇혔던 노래가 환하게 쏟아지고
접혔던 날개가 곧게 펼쳐집니다
비어있는 주먹이지만
괜찮아지는 그 마음,
아직도 아가라는 이름이
따스히 남아있으므로
건강이와 호강이(가명)의 꿈이 서서히, 그리고 당당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요즘은 고입상담으로 학생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상담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인문계고를 가고 싶다고 하는데
점수가 낮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가 비평준화 지역이기에 학교마다 입학평균 점수와 커트라인이 있어
그간 성적관리를 하지 않은 학생으로서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 되는 거지요.
아이들 중에는 저와 단둘이서만 상담하는 게 부담이 되는지 다른 친구와 함께 상담을 신청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신청한 남학생 둘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처음에 상담을 받고 갔는데 생각이 달라졌다면서 다시 오게 되어 벌써 3번째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성적이 조금 괜찮아서 다양한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다른 한 친구는 성적이 낮아 조금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이 어찌나 사이가 좋은지 같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고등학교에 가고 싶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비교해 주었던 직업계고와 일반계고 이야기를 다시 해주었지요.
그랬더니 한 친구가 자신은 쓸모 있는 기술을 배워서 취업을 빨리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특성화고등학교 산업기계과를 소개해 주었지요.
그곳에서 배우는 것들을 홈페이지를 통해 살펴보면서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았더니 배우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옆에 있는 친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흙과 기계를 만지는 일보다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먼 곳이지만 호텔이나 관광산업과 관련된 학과를 함께 살펴보았지요.
그런데 그것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은지 눈빛이 밝지 않았습니다.
“건강아, 내일 학교에서 무엇을 한다고 할 때 기대가 되고 가슴이 설렐까?”
“배구요!”
“선생님, 저 배구선수가 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야, 지금은 늦었어. 그건 생각하지 말자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호강이가 말을 거듭니다.
건강이는 우리 학교 배구부 학생입니다. 배구할 때 혹은 운동할 때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가슴이 설레다고 했습니다. 옆에 있는 호강이 역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운동할 때 자신감이 확 올라가나 봅니다.
배구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을 살펴보면서 지금 시점에서 시작하는 게 늦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건강아, 호강아! 그럼 너희들 운동을 편하게 하면서 진로를 찾을 수 있는 학교로 가는 건 어떠니?”
“그런 곳이 있어요?”
“그냥 인문계 고등학교야. 그런데 남학생들만 있어서 체육과 관련된 행사가 참 많단다.”
과거에 근무했던 남자 고등학교가 떠올랐습니다.
직업계고처럼 학과가 정해진 학교보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을 더 살펴볼 수 있는 곳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또한 우리 학교 근처에 있으면서 커트라인이 낮게 형성되어 있어 두 학생 모두 입학이 가능하기에 추천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체육관과 헬스장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운동을 끝낸 아이들 몇몇이 수돗가로 모여 서로 물을 뿌려주며 등목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만 해도 참 따뜻합니다.
아마도 남고이기에 가능한 추억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 시절의 풍경을 두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남고는 아닌 것 같아요. 예쁜 여자를 못 보잖아요.”
아이들의 말에 저도 웃고 말았습니다.
옆 학교가 여고라 벚꽃철이면 사진을 찍으러 모여들던 시절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제가 그 아름다운 과거에 빠져 너무나 행복한 것 같았습니다. 이 아이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물어보았지요.
이렇게 체육활동을 즐기면서 나중에 체육과 관련된 학과로 대학을 들어가는 건 어떤지에 대해서요.
그랬더니 대학 등록금에 대해 물어봅니다. 한 학기에 몇 백만 원 정도 한다고 하니 그렇게 4년 동안 대학교육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합니다.
고3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위탁교육에 대해서도, 전문대에 대해서도 다 설명해 주니까 아이들은 드디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둘 다 결정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체육활동을 즐기다가 전문대학교 ‘건강 운동 관리과’로 가서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요!”
며칠 후 아이들은 생각이 달라졌다고 하면서 또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저희 체육교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체육교사가 될 수 있는 대학교와 임용고시 준비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체육교사가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거예요?”
“야, 우리 안 되겠다”
체육 선생님들이 모두 다시 보인다며 운동도 잘하시는데 공부까지 잘하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며 감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건강아, 호강아, 너희 나같이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건강관리 해주는 건 어떠니?”
“그거 보람 있고 좋지요”
“그러면 오늘 점심시간부터 선생님한테 운동하는 법을 좀 알려주겠니? 나는 헬스장에 가본 적이 없어서 기구 사용법도 모르거든”
실제로 저는 정말 헬스장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몸이 점점 약해지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당장 헬스장 등록을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아직도 실행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 꼬마 선생님들이 있으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시간 내셔서 점심시간에 헬스장으로 오세요. 제가 거기 관리담당이니까요. 기구 사용법 알려드릴 테니 운동을 꼭 하세요”
"맞아요, 이 몸으로 버티시기 힘들잖아요"
건강이와 호강이가 확실하게 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는지 말투에 걱정보다는 웃음이 섞여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 시험은 꼭 준비를 하고 보라고 했습니다. 호강이는 건강이에게 자기와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고 저는 건강이에게 지각하지 않으면 간식을 준다고 했지요.
호강이와 건강이는 정말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건강이는 지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뒤로 저에게 찾아와 지각했다고 말해주었지요. 그래도 찾아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아이들의 꿈, 그것을 대신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갈 때
어려운 순간에 함께 들여다보고
다음 길을 찾아주는
그런 진로교사로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당당하게 걸어가는 순간
그 뒤에서 응원해 주는 어른들이 참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어른들도 그렇게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계시지 않을 수도 있는 어른들과 곁에 계신 분들의 응원과 격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든든하게 지켜주어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힘껏 걸어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