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아이들이 너무 오래 아프지 않기를
오늘도 손을 내밀지만
그 손에 닿지 못한 채
바닥으로 고개 숙이어
낡아가는 흐릿한 눈동자
바람은 눈부시게 갈잎을 날리고
밖은 더욱 훤하니
원망만이 길게 흐물거리는 시간
잎을 지우는 바람이 스치자
점점 뜨거워지는 가냘픈 사랑
만남으로 맺은
무르익은 언어도 없이
흐르지 못하는 떨림으로
꼼짝없이 굳은 손
설움 맺힌 뼈마디에 손을 얹자
뜨겁게 포개어지는 눈물
엉성한 겨울 나뭇가지와
찻길 귀퉁이 들꽃을 감싸 안는
한 세상 덮어주는 흙
그의 고운 결을 따라
닿아가기를 바라는 기도
오늘도
꺾이지 않기를
그저 바랍니다.
우리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아프지 않기를.
금요일에 있을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이번주 내내 학교에서는 준비가 한창입니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아이들의 마음은 벌써 운동장에 가 있는 듯합니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점심시간에 반별로 모여 8자 마라톤 줄넘기를 연습하는 모습은 한 편의 예술작품 같았습니다.
2분동안 150개 가까이 줄을 넘는 아이들, 그 안에서 '내가 걸리면 어떻하지'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을 테지만 유치원 때부터 함께 지내 온 사이라 그런지 '걸리면 어때?'하는 배짱마저 두둑해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차례로 줄 안에 들어가 뛰고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의 순서를 지키며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즐겁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자리에 나서는 것조차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 끝에 오래전 한 제자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제가 담임을 맡은 반에서 처음으로 자퇴를 선택했던 아이입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유난히 오래 남아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떠나던 순간, 제가 무엇을 해 주어야 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학생은 눈망울이 맑고 고운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고1 담임을 맡았던 저는 아이들이 유난히 순수하고 여리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평소 행사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여러 연수에 참여하며 학급행사를 마련했고, 아이들이 차츰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5월, 중간고사를 마치고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중 한 학생이 행사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평소 모든 행사에 잘 참여하던 아이였기에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저 몸이 조금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몸이 아프다며 결석하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와 긴 통화를 나누면서 아이가 그동안 마음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체육대회가 있던 날, 어머니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희 집에 오셔서 아이를 만나주실 수 있으세요?”
집이 학교에서 멀지 않아 잠시 시간을 내어 찾아갔습니다. 그날 방문을 열던 순간의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한 줌 햇살을 피해, 아이는 방 한쪽 어두운 구석에 웅크린 채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못생겨서 나갈 수가 없어요.”
키가 크고 피부가 희며 눈망울이 맑은, 제 눈에는 참 예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자신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는 모습과 아이가 스스로 바라보는 모습이 그렇게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아이의 상황을 오래 살폈지만, 결국 1학기가 끝날 무렵 아이는 학교를 떠났습니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서늘해집니다. 조금 더 일찍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갔다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몇 년 뒤, 빵집에서 그 학생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빵을 고르고 계산대에 섰을 때 아이가 먼저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선생님, 저 검정고시에서 합격했어요. 이제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입원 중에 좋은 언니들을 많이 만났어요. 너무 예쁜데 자기가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언니도 있었어요. 그 언니들 덕분에 병원에서 잘 지냈지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이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들려주었습니다. 다시 공부하고 싶어졌다는 말이 반가웠고, 병원에서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잘 지냈다는 이야기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문득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그때 왜 자퇴했을까요.”
저는 그 질문 앞에서 선뜻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헤아리고,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없었을까. 그 질문은 뒤늦은 미안함과 함께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 아이의 엄마가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나이가 되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전과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아이 대신 아파해 줄 수도, 아이가 마주한 세상을 대신 견뎌 줄 수도 없는 마음입니다. 아이가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할 때, 그곳을 떠나게 하는 것이 맞는지, 조금 더 견뎌 보라고 해야 하는지 쉽게 답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쪽이 아이에게 덜 아픈 길인지 알 수 없어 오래도록 헤아리고 또 헤아렸을 그 마음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때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이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과 그 아픔의 시간을 함께 건너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그런 마음으로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예전보다 조금 더 오래, 세심하게 바라보려 합니다.
학교를 떠나는 선택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아이가 얼마나 오래 마음을 다쳤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견뎌 왔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퇴를 선택하는 이유는 아이마다 다릅니다. 학교 밖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아이도 있지만, 학교 안에서 겪은 상처와 불안을 더는 견디기 어려워 떠나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떠난다고 해서 아이의 아픔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밖에서도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문제는 상처가 깊어 집 밖으로 나서는 일조차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자기 삶을 의미 있게 가꾸어 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조금씩 용기를 되찾고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 스스로에게 거듭 묻곤 합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바람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고, 선생님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잘해 보고 싶고, 자신의 노력과 가능성을 알아봐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고, 감당하기 힘든 상처로 인해 그 소박한 바람마저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진로교사로서 제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도전할 용기로 이어지도록 북돋우고,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지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힘든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잠시 멈추어도 괜찮으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손을 내밀어도 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곁에서 기다려 주고 싶습니다.
오늘도 진로상담실 문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선생님, 이곳에 오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아요. 저 자주 와도 될까요?”
“그럼, 선생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렴.”
비록 전문상담교사는 아니지만, 아이가 불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도록 곁을 내어 주는 일 역시 진로교사로서의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조금 안정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앞날을 생각할 힘도 생길 테니까요.
오래전 그 아이를 떠올릴 때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남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지금 만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혹시 언젠가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때 빵집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듣느라, 반가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만나면 이번에는 꼭 말해 주고 싶습니다.
'너를 다시 만나 정말 행복하다고. 이렇게 다시 만나 네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맙다고.'
이 말은 그때 미처 건네지 못한 인사이자, 긴 시간 마음속에 남아 있던 아이에게 보내는 저의 답장입니다.
운동회 준비가 한창인 오늘도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 아이도 이제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든 그 아이가 부디 행복하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저는 오늘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을 아이들 곁에서 조용히 손을 내밀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