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모으는 사람

- 아이들의 꿈이 노랗게 반짝이던 날

by별숲지기

꿈을 모으는 사람


저는

진로 교사입니다.


평가가 있나요?

시험을 보나요?


아니요!


꿈을

모읍니다


시험이 없대

평가가 없대


바카라상 위에 하나둘 펼쳐지는

검은 알파벳과 숫자 더미들에


다가가는 나의 언어들은

지우개 가루로 흩어져


마음의 그을음이

붉게 맺히는

저는


시로 마음을 여는

진로 교사입니다


진로실로 찾아오는 길목에도

똑똑 두드리는 문 앞에도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벽에도

시의 언어가 맞이합니다


하이얀 큰 종이 안에서

알록달록 깜빡이고 있어도

조용히 스치기만 하는

키 작은 언어


선생님,

이런 시가 여기 있었어요?


잠자던 시를

드디어 깨우는

설렘의 언어


아이들의 접힌 꿈을

시로 펼치고 싶은


저는

진로 교사입니다.







버들이(가명)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안절부절하며 앉지를 못하고

“선생님, 제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어제 버들이가 엄청나게 억울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버들이와 함께 학생부장님께서 찾아오셨지요.

“부장님, 버들이 지금 여기에 있어도 될까요?”

“네, 저 1교시는 괜찮아요”

저는 수업도 있고 고입 상담도 있어 버들이를 하루 종일 진로상담실에 머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1교시는 비어 있었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버들이의 쉼터가 되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버들이.

버들이는 한 번도 진로상담을 신청하지 않았기에 수업 시간에만 만나는 학생입니다.

물론 복도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가끔 진로실 문을 열고 들어와 물을 먹고 갑니다.


이제 중학교 진로 교사로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평가에 들어가지 않는 ‘진로와 직업’ 수업을 하다 보니
규칙과 규율 앞에서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는 제 성격 때문인지
점점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학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들과 수업 규칙을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설명하는 시간은 줄이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보는 시간을 늘리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보기로 했습니다.

단, 너무 과한 언행으로 수업진행이 어려워지면 담임 선생님께 알리기로 했지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박수로 동의해주었지만

버들이네 반에서는

“선생님, 저는 못 지키겠는데요.”

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반은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반 학생인 버들이와 진로상담실 안에서 1시간을 머물게 된 거지요.


“버들아, 네가 좋아하는 음악 검색해서 찾아볼래?”

버들이가 찾은 노래는 일본어였지만 소리는 매우 낯익었습니다.

“어, 그거 내가 아는 건데. 우리나라 가수가 부르는 노래와 같아.”

“포지션의 노래인데 이게 원곡이에요”

“굉장히 옛날 노래인데 그 노래 좋아하니”

“좋잖아요.”


저는 이상하게 가슴이 설렜습니다.

왠지 이 아이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가정형편상 제대로 배우지는 못하고 어깨너머로 피아노를 배웠다는 것과

교사가 되자마자 제 악기를 사서 정식으로 플루트를 배웠다는 것,

그리고 밴드공연도 선생님들과 함께 했다는 것,

올해의 꿈은 ‘걱정말아요 그대’를 기타치면서 노래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말이지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교실에서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가 제 옆에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들으면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요.


“버들아, 너 왠지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반 반장과 비슷한 것 같아.

우리는 매년 오월이면 고3 담임 선생님과 함께 동창회를 하거든.

그때마다 보는데 왠지 네가 그 친구와 느낌이 비슷해. 그 친구가 정말 학창시절에 참 재미있고 개구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멋진 어른이지.”

“그리고 너처럼 지각하지 않고 학교에 열심히 다녔어”


“버들아, 나는 너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는 그 성실한 모습이 말이야.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거든.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서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런 면에서 너는 참 좋은 걸 많이 가진 것 같구나.”

버들이는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계속 궁금한지 추가로 질문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똑똑.” 노크 소리가 났습니다.

교감 선생님과 함께 버들이 어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두 분 모두 놀란 표정이셨지요.


“버들아, 너 여기 있었니? 우리가 얼마나 찾았는데.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데.”

“선생님께서 저 여기 있으라고 해서 있는 거였는데 왜 그러세요?”


오가는 대화 내용을 들으니 학생부장님께서 버들이가 여기 있다는 걸 깜빡하고 말씀을 못하셨나 봅니다.

폰으로 눈을 돌려 단톡방을 보니

“버들이를 보신 분 연락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며칠 전 하굣길에 학생들 사이에서 큰 사건이 있었던 터라

1교시부터 보이지 않는 버들이를 두고 학교에서는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런 사정도 모른 채 아이와 참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는 버들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시고 눈시울을 붉힌 채 돌아가셨습니다.

“버들아, 이제 너는 나의 음악 디제이야. 자주 와서 좋은 음악 추천해주렴.”

“네, 자주 올게요.”


“버들아,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게 있니?”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요”


가을이 되면 우리 둘의 대화가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문을 닫고 나가는 길에 버들이의 꿈이 노랗게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부장님, 버들이가 부장님 옆에서 차분하게 앉아 있는 게 참 신기했어요”

“저도 놀랐어요. 교감 선생님”


버들이가 남긴 빛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꿈이 어디까지 자랐는지

다시 물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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