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애들 키우는 게 쉽지 않다던데..
아빠 혼자 그걸 다 한 거야? 거기다 부업까지?
와.. 난 못해."
왜 혼자겠니. 엄마도 쉬는 날이 있고,
데이 근무라도 하게 되면 그래도 오후에는
아빠가 조금은 편했지.
"데이 근무? 뭐였더라? 나 이거 아는데! 아..
하도 안 쓰고 안 들은 지 오래돼서 까먹었나..?
아! 데이 근무 그거잖아!
아침 일찍 나가서 오후에 퇴근하는 거!"
그래. 아빠는 편하고 좋았지만. 너희들은
좀 달랐었던 것 같아. 특히 도아 너 말이야.
"나? 에이 애가 뭘 알겠어~ 야! 장남!
앉아있지만 말고 아빠 물 빈 거 보면
물 좀 떠 와! 이건 뭐 나 아니면 하는 사람이 없어."
어? 아빠 목 안 마른데. 도윤아! .. 빨리도 나가네..
도아야 넌 왜 갑자기 가만있는 오빠한테
물을 ... 너 눈빛이 왜 그래? 음흉하게..
"헤헤 빨리 다음 얘기해 줘. 도윤이 오기 전에.
저번에 나 빼고 이야기한 복수다!"
오빠한테 도윤이가 뭐니..
녀석들 성인이 돼도 아직 애기 같네..
그래 오늘은 우리 둘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음마~ 음마!"
아침에 눈뜨자마자 화장실과 주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엄마가 보이지 않자
목 놓아 우는 너였지.
"아휴.. 엄마 일 갔지~
우리도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지?"
"음마..."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너.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밥도 먹이고,
어린이집 갈 준비도 시키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답답할 뿐이었지.
"엄마 일 갔어요?"
"어.. 너 빨리 가서 세수해."
도아의 울음소리에 깬 건지. 눈을 비비며
나오던 도윤이.
나라 잃은 백성마냥 울고 있는 너를 달래려
안아 올리는데도 어찌나 발버둥을 치는지
그마저도 쉽지 않더라고.
그렇게 너랑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이미 익숙한지 밥상 앞에 조용히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 도윤이었어.
"자자 티비 그만 보고 밥 먹자. 도윤아
티비 꺼."
조용히 티비를 끄고 돌아와서 조그마한
숟가락으로 계란비빔밥을 떠 먹는 도윤이.
너무 자주 먹는 계란비빔밥이라 질릴 만한데도
어찌나 그 작은 입을 쫙쫙 벌리며 잘도
먹던지.
"아빠.."
그렇게 몇 번을 퍼먹었을까? 곰곰이 뭔가
생각하던 도윤이가 입을 열었어.
"응? 왜? 맛이 없어? 간장 더 넣어줄까?"
내 눈을 한참 쳐다보며 머뭇거리던 도윤이.
"아빠.. 엄마는 깜깜해지면 와요?"
"응? 뭐라고? 아이고 도아야! 그만 울고
밥 좀 먹자"
밥도 안 먹겠다고 난리를 치는 너와
씨름하고 있는 아빠 모습을
조그만 입으로 우물우물하면서도
빤히 쳐다보던 도윤이.
"비빔밥 맛있어요!"
"어? 어~ 많이 먹어."
다시 밥을 한 숟가락 크게 퍼서 입에
넣는 도윤이었지.
"시더~ 음마!"
"아오.. 도아야! 엄마 이따 온다고.."
"시더!"
그날따라 너와 사투를 벌이느라
평소 나가던 시간보다 꽤 늦어버린 시간.
급해 죽겠는데 이번엔 현관 앞에
주저앉아서 움직이려고 하질 않는 거야.
"도아야.. 엄마 어린이집 갔다 오면
와 있을 거야.. 빨리 가자 아빠 늦겠다.."
"시더! 안 해!"
그런 모습을 또 옆에 조용히 서서
유심히 지켜보던 도윤이.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조용히 다가가
너를 꼬옥 안아주더니 귓속말로 뭐라고
말을 건네는 도윤이었지.
"도아야 가자!"
"응!"
정말이지 마법같게도 도윤이의 행동이
있자마자 벌떡 일어나던 도아.
"니들 뭐냐.. 나 무시하냐..?"
매번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없을 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 되고,
엄마가 없으면 특히나 더 보채대는
도아 너 때문에 회사에 출근하면
축 늘어져버리기 일쑤였지.
"커피~ 커피~ 룸룸~ 커피커피 룸룸!"
"... 이.루.어.져.라.. 해야 되는 거냐..?
니가 바람돌이야?"
일찍 일어나서 졸리지, 너 달래느라
진은 다 빠졌지. 큰 프로젝트를 끝낸 지
두어 달 정도 돼서 그렇게 바쁜 것도 없지.
그리고. 유일하게 아빠에게 시비 거는
권과장도 없겠다. 아침부터 멍때리고
졸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더라고.
"와.. 늙었다. 바람돌이가 뭐야?
난 젊어서 모르겠는데.."
바카라상에 엎드려 있는 아빠 옆으로 커피를
내려놓으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건네던 정현이.
"... 시끄러워 다른 데 가서 놀아 좀 더 자게.."
"점심도 안 먹더니? 배 안 고파?
나 배고플 때 먹으려고 빵 싸온 거 있는데
좀 줄까? 밥은 먹고 일해야지.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와~ 정현아! 정.현.아! 나 진짜 부탁이 있는데."
"응 뭔데? 친구 부탁인데 내가 다 들어준다!"
"제발 좀.. 꺼져.."
"응! 꺼.. 야! "
그렇게 또 얼마나 됐을까? 눈을 뜨니
벌써 한 시가 넘어버렸더라고.
'하아.. 피곤해 죽겠네.. 담배나 한 대 피고..'
담배를 입에 물며 열어젖힌 흡연실 문.
불을 붙이려는데 주머니에서 전화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어.
"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아저씨.."
엄마의 전화였지. 보통 데이 근무를 하는
한 시에서 두 시 사이에는 바빠서 급한 일
아니면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었기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의아한 아빠였어.
"왜? 무슨 일 있어?"
"아저씨.. 우리 오늘 회식이래.. 나 가도 돼?"
"에? 갑자기? 무슨 회식을 당일 날 알려주나?"
"정식 회식은 아닌데.. 병동 사람들끼리
한잔하자고 하더라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힘껏 빨아들였지.
"후아.. 아니 꼭 가야 돼?"
"안 가고 싶은데.. 나 입사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수쌤하고 간호부장님도 오신다고.."
"아 뭐야 그러면 가야 되는 거잖아. 뭘 물어봐."
"그래도 물어보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어쩌지?"
"이게 물어보는 거냐? 통보하는 거지? 뭘 어째.
갔다 와. 나 바빠 끊는다?"
"아저.."
엄마는 뭔가 더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버린 후였지.
'.. 내가 좀 심했나..?'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살짝 후회가
드는 아빠였지만. 다시 전화를 걸어
사과하지도,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오지도
않은 채 하루는 흘러가고 있었어.
"도윤이 도아~ 선생님 인사~"
"안녕히 계세요~"
"마마마 므므다~"
퇴근 후 너희들을 데리러 간 어린이집.
어린이집 끝나면 엄마가 와 있을 거라고 했던
말 때문이었을까? 어린이집을 나오자마자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도윤이었어.
"엄마는 집에 있지요?"
"... 엄마 아직 안 왔대 일이 많아서"
"음.. 그럼 내 말이 맞아요. 깜깜해지면 오지요?"
"그러겠지.. 생각이 있으면..
도아 넌 뭘 들고 있는 거야?"
어린이집에서 나올 때부터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은 채 꼭 쥐고 있던 손바닥만 한 인형.
우리 집에 있던 건 아니라 또 어디서 주워왔나,
혹시 훔쳐온 건가 싶어 묻는 아빠를 보며
인형을 뒷춤으로 숨기는 너였지.
"너 이거 뭐야? 어디서 났어?"
우물쭈물하던 너. 그 모습을 보더니
내가 뭔가 잘못 알았다는 듯이 당황하며
말을 건네던 도윤이었어.
"이거 친구가~ 나 준 건데. 도아가~
갖고 싶다고 그래서 준 거예요.
도아가 엄마 닮았대요."
"너.. 도아랑 대화가 돼..?"
아직 말을 떼지 못했던 너.
그 말을 알아듣다 못해 대화까지 하는
도윤이가 아빠는 항상 신기할 뿐이었지.
집에 돌아와서는 뭐.. 평소와 똑같았지.
씻기고 밥 먹이고..
'아오! 진짜 왜 안 오는 거야. 술독에 빠졌나!'
시계를 보니 8시 20분. 그제서야 얼추 모든 게
끝나서 이제 좀 허리 좀 붙일까 싶어 티비를
보고 있는 너희들 앞에 드러누워 버렸지.
"아빠!"
"으그그그그~ 응?"
누워서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 도윤이가
말을 걸어오더라고.
"아까 깜깜해졌는데 왜 엄마 안 와요?"
"음마?"
"... 아니야.. 도아야.. 그러지 마 아빠 이제 누웠다.."
"음마.. 흐규흐규.. 음마아..."
정신없이 움직여서 몰랐다가
오빠 말에 그제서야 엄마의 부재를 느꼈던 걸까?
결국 터져버린 너.
"하아.. 도윤이 넌 왜 자꾸 쓸데없는 소릴 하냐?
올 때 되면 오겠지!"
"헙."
아빠의 짜증 섞인 원망에 눈이 동그래지더니
입을 다무는 도윤이.
"야 다들 누워. 자야 돼. 9시 다 되간다."
"아빠..."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흔들어주고
난리에 난리를 다 쳐서 겨우 울음을 그친 너.
이제 재우려고 하는데 도윤이가 또 말을 걸었어.
"왜? 급한 거 아니면 내일 얘기하자.
아빠 너희들 재우고도 할 게 많아."
이불 위에 앉아 뭔가 생각하는 듯이 잠시
말이 없던 도윤이.
잠시 후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어.
"엄마는 내일 아침에 보면 되요!"
"자라니까 뭔 소리야 인마...
언능 자자~ 도아도 코 자자~"
할 건 많은데 빨리 일어나서 팀장님이 주신 일도
해야 되고, 설거지도 해야 되고 할 게 너무 많은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항상 잠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불이 꺼진 방이 무섭지도 않은지 계속
재잘대는 도윤이. 몸을 수십 번도 더 뒤척이면서
장난치는 너, 매일 듣는 비슷한 옛날이야기가
뭔가 그리 좋은지. 무반주에 어색한 목소리로
부르는 자장가는 왜 자꾸 불러달라고 하는지.
그땐 정말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매번 반복해야 하나 해서 짜증만 났었는데
/
"답답하고, 짜증 나고, 미울 거야. 근데 지금 아니면
못 보는 모습이다? 다 한때야. 금방 지나가더라.
눈에 많이 넣어둬. 그리울 때가 있을 거야."
시간이 흐르고 보니까. 민차장의 말이
맞더라고. 근데 문제가 뭔 줄 아니?
정작 그 당시에는 너무 바쁘고 지쳐서
눈에 넣을 힘마저 없다는 사실이야.
누가 그러더라. 부모는 아이의 예뻤던 모습
몇 가지만을 갖고 살아간다고..
그게 비단 기억력 따위에 의한 잊혀짐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사는 게 바빠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모의 삶. 그 자체 아닐까?
/삑삑삑삑 삐리리/
"도씨 아저씨~"
혹여나 불이라도 켜면 너희들이 깰까.
불 꺼진 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팀장님이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번호 키가 눌리는가 싶더니
엄마가 들어오더라고.
"빨리도 온다.."
"헤헤.. 애들은? 자? 엄마도 안 왔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엄마.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어선 시간.
온몸에 술 냄새를 풍기며 너희들에게
다가가는 엄마를 기겁을 하고 막아서는 아빠였지.
"야이.. 어떻게 재웠는데. 깨우지 마!"
"우씨.. 근데 당신 뭐 해? 불도 다 끄고?"
"애들 깰까 봐.."
"아저씨가 고생이 많다~ 짠! 이거 봐라?
이거 당신이 좋아하는 거. 마른 오징어랑
챙겨왔지~"
들고 온 까만 봉지에서 주섬주섬 이것저것 꺼내는
엄마.
"웬 거야? ... 이거 뭐야? 음식물 쓰레기?"
"와.. 일부러 생각해서 가져온 건데 쓰레기라니..
시켜놓고 손도 안 댔길래 당신 생각나서
가져온 건데.."
술에 취해서였을까. 별거 아닌 말임에도
툭 건들면 울 것처럼 침울해 보이는 엄마.
"그냥 해본 말이야. 잘됐다. 나도 맥주 한잔해야겠네.
당신도? 나랑 2차 할래?"
"웅!"
엄마는 참 단순했어. 생각해보면 엄마는
서운하거나 화난 일이 있어도 오래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 본인 마음도 괜찮았냐 물어본다면
글쎄.. 한 번도 거기까진 생각해본 적이 없네..
아빠에게 보이는 모습은 항상 해맑았으니까.
어쩌면 말야. 자기가 아프고 힘든 것보다
아빠가 아프고 힘든 게 더 보기 힘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가려둔 게 아니었을까?
그런 사람이었어.. 엄마는 말이지..
"어제 그렇게 늦게 들어오더니.. 술은 깼어?"
"아니. 아저씨.. 나 입에서 소주 냄새 나는 것 같아..."
엄마가 싸온 안주와 함께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잠깐 잠들었나 싶었는데 눈떠보니 새벽 6시.
출근 준비를 한다고 부산스러운 엄마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며 얼굴을 보는데 한 열흘을 못 잔 것처럼
눈은 퀭하고 얼굴마저 푸석해 보이는 엄마였어.
"그러게 다음날도 새벽 출근하면서 누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래?"
"주는데 어떡해.. 와.. 우리 병원 사람들 술..
진짜 잘 먹대?"
"잘한다. 어제 도윤이가 당신 많이 기다렸는데."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마냥 잠시
멍하니 있던 엄마.
"그러네.. 어제 하루 종일 엄마 얼굴 못 봤네
내 새끼들.."
"저 인형 봐라 도아 옆에 뒹굴고 있는 인형.
저거 지 엄마라고 꼭 붙들고 자더라.."
아빠의 말에 인형을 들어 올리고는.
너와 도윤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숨을 쉬던
엄마.
"됐어. 오늘은 일찍 와."
"웅.."
자고 있는 너희들 얼굴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출근 준비를 하던 엄마. 얼굴은 웃고 있는데
슬퍼 보이던 그 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단다.
"음마? 흐규흐규.. 음마아~"
엄마를 출근시키고 맨날 계란비빔밥만 해준 게
미안해서 된장국을 끓이고 있는데 언제 깼는지
너의 울음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으아앙. 음마아!"
"하아.. 도아야~ 엄마 이따 올 거야~"
"아니야! 으앙 음마아!"
너를 안아 올려서 달래는데 울음소리에 깬 도윤이가
귀신 본 표정으로 멍하니 이불 위에 앉아있더라고.
"도윤아.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애 어떻게 달래?"
"..."
"아오.. 도아야.. 그만 좀 울자.. 응?"
"아빠?"
"아 왜? 아이고 도아야.."
아빠의 반응에 잠시 말이 없던 도윤이.
잠시 후 입을 열었어.
"아빠.. 엄마 도망갔어요?"
"아 넌 또 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