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그.. 권과장이란 사람..
혹시 주식 같은 거 하는 거 아닐까?"
저녁식사시간.
그날따라 소주가 너무 당기는 거야.
퇴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사 온 소주를
근래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며 넘기고 있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엄마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손뼉을 짝 치면서
입을 열었어.
"하아.. 너까지 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엄마의 의문은 안 그래도 답답해 죽겠는
상황에서 아빠의 짜증을 더 끌어올리기에
충분했지.
"아니.. 생각해 봐. 사람이 어떻게
성격이 그렇게 들쑥날쑥할 수 있어?"
"그거랑 주식이랑 뭔 상관이야?"
"주식이 오를 땐 기분이가 좋아서 잘 해주다가
떨어지면 화가 나서 당신한테 푸는..."
"하아..."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었지. 잔에 소주를
따르려는데 언제 다 마셨는지 텅 빈 소주병을
신경질적으로 탁 내려놓고 냉장고로 향했어.
"아닌가..?"
"어.. 아니야..
설마 진심으로 얘기한 건 아니지..?"
"... 흥! 나쁜 개도리..
요즘 주식시장 많이 안 좋다던데..
어디 산 거지..? 좋겠다 주식 살 돈도 있고..."
나름 신경 써서 한 얘기였는데 무시당하자
기분이 상했는지 입을 삐죽 내미는 엄마였지.
냉장고 안쪽에서 소주를 꺼내는데 며칠 전
편의점에서 1+1 행사 중이라 득템이라며
산 커피를 보며 신경질적으로
냉장고 문을 쾅 닫고 말았어.
"도리~ 커피 좋아하나 보네?
요즘 일은 어떠냐? 할만해?"
출근하자마자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아빠 옆에 서서 녹차 티백을 뜯으며
아빠에게 말을 걸었지.
"아.. 네.. 조금.."
이익관계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권과장이 말을 걸어오는 게 편하지 않았어.
괜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달까?
"너 전에 상사 걔 이름이 뭐였지? 세찬이?
걔도 커피 달고 살았는데..
개발자들은 다 커피 좋아하나?"
'아.. 불편하네..'
억지로 웃음 지으며 자리를 뜨려는데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며 말을 잇는 권과장
"잘 하고 있다. 쉬엄쉬엄해.
건강은 누가 따로 안 챙겨준다."
"넵. 감사합니다."
맘에도 없는 감사인사를 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지.
'네에 네에 알겠다고요...
이익관계라면서... 무슨....'
그때.
팀장님이 마치 내가 자리에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성큼 걸어오며 물었어.
"도리. 담배 폈냐?"
"네..."
"왜? 하나 더 안 피냐?"
"두 개.. 피고 와서.."
계산에 없던 답변이었는지
잠시 멈칫하던 팀장님은
"그럼 세 개 펴 따라와!"
'세.. 세 개? 폐암도.. 산재되나..?'
아빠가 무슨 힘이 있겠니? 한 부서의 수장이
따라오라는데. 마치 죄인 끌려 가듯이
부장님의 뒤를 따라 흡연실로 들어갔어.
"요즘 뭐하냐?"
담배에 불을 붙이고 힘껏 빨아들이고는
길게 내뱉은 팀장님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하고 있었어.
"네?"
"요즘 너 뭐하냐고. 이제 뭐 바쁜 거 없잖아?"
"네... 뭐 고객 전화받고. 버그 있다고 하는 거
수정하고.."
아빠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팀장님은
이번엔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고는
말을 이었어.
"후우.. 너처럼 능력 있는 개발자가 지금
전화나 받고 있을 때가 아닌데.."
팀장님의 말에서 눈치를 채고 말았지.
'아..'
아빠의 생각을 읽은 건지 팀장님은 아빠 어깨를
한 번 툭 치면서 웃으시며 이야기하시더라고
"야 인마 쫄지마. 일 주려는 거 아니니까.
아닌가? 일 주는 게 맞긴 한건가?"
팀장님의 반응에 애꿎은 담배만 빨아들이는
아빠였지.
그 순간 팀장님은 갑자기 흡연실 문을 살짝 열어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더니
다시 아빠에게 다가와 말을 이었어.
"그래서. 바빠? 안 바빠?"
"하고 있는 작업은 딱히 없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팀장님
"그래? ... 그렇단 말이지? 알았다. 피고 들어와"
절반도 피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시고는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급하게 흡연실을
나가시던 팀장님.
'뭔 말을 하다 마냐..'
아빠에겐 그냥 짜증일 뿐이었지...
"어? 웬 커피? 잘 마실게?"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는데
바카라상 앞에 놓인 누군가 사다 놓은 듯한 커피.
당연히 정현이 일거라고 생각했지.
"어? 나 아닌데?
아까 권과장님이 놓고 가시던데?
너 권과장님하고 많이 친해졌나 봐?
이제 대리라고 챙겨주시는 건가?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 돼..."
아까 커피 타는 걸 분명히 봤을 텐데 또 커피라니.
내가 커피 중독자로 보이나 싶기도 하면서
진짜 오늘 다들 왜 이러지 라는 생각에
머리가 어질하기까지 하더라고
그래도 감사인사는 해야지 싶어 권과장님
자리로 눈을 돌렸는데
마치 비어 있는 자리인 양 깔끔하게 정리된 바카라상,
내무실을 생각나게 하는 각 잡혀 있는
서류들과 사무도구들이 보이더라고.
"권과장님.. 퇴사하신 거 아니지..?"
아빠의 농담 섞인 말에 한바탕 크게 웃는 정현이.
"푸하핫! 너도 적응 안 되지? 나도 지금 몇 년째
적응이 안 되는데 너라고 다르겠냐~
사람이.. 너~ 무 FM이야.. 권과장님 그치?"
도대체 입사 전에 뭐하던 사람인지,
흐트러짐 없이 자기관리를 해내는 권과장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항상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드는데 충분했어.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오후 2시가
다 되던 때였나?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배도 부르고, 그날따라 사무실도 조용한 데다
온도도 적당한 게 마치 옆에서 누가 자장가라도
불러주는 것처럼 왜 그렇게 졸리던지.
감기는 눈을 억지로 안간힘을 써 가면서
버틴다고 버티는데 자꾸만 숙여지는 고개와
멍해지는 정신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고.
그렇게 열심히 졸고 있는데
"누가 근무시간에 자냐! 잠이와 지금?"
조용한 사무실에 화가 많이 난 듯한 큰 목소리는
아빠의 졸음을 한 번에 쫓아내기에 충분했어.
"헉... 죄.. 죄송..."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 의자를
허리로 걸터 앉은 상태로 고개까지 푹 숙인 채
졸고 있던 아빠는 자세를 고치며 시선을 돌린
곳에는 화난 표정의 권과장이 서 있었어.
"어? 일을 이런 식으로 하면서 잠이 와?"
"어떤.."
다짜고짜 전후 사정 설명없이 화부터 내는
권과장. 아니 왜 그러는지 설명이라도 해줘야
사과를 하던 뭐를 하던 할 거 아니겠니?
"영업 가서 네 프로그램 시연하는데
버그가 터지더라. 테스트 안하냐? 너 일 안 해?"
버그라.. 사실이 그래. 프로그래머 그러니까
개발자는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의해 만들고 기능을 중점으로 테스트를
해보니까 사실상 버그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거든. 그게
규모가 큰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말야.
예를 들어 사과를 만들어 달라면 땅을 갈고,
사과나무를 심어서 사과가 잘 열리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재차 확인하는 거지.
그렇게 열린 외관상 문제없어 보이는 사과에
벌레가 들었는지 그 안에서 파티를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며, 알게 뭐야?
"어디 부분이..."
"네 일을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네가 다 알고 있어야 되는거 아냐
너 담당자 아냐?"
"사실 모든 버그를 개발자가 알기는.."
아빠의 변명 아닌 변명에 권과장은 듣기 싫다는
듯이 인상을 더욱 팍 쓰며 뭔가 적혀 있는
포스트잇을 휙 던졌어.
"하.. 개발자들은 항상 하나같이
핑계가 그렇게 많냐. 거기 적어 놨으니까
보고 처리해. 좀 잘하자? 어?"
"피.. 핑계가 아니라.."
"시간 많냐? 빨리 가서 작업 안 해?"
변명할 기회조차 무너진 아빠는 포스트잇을
바라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괜찮아?"
또 어디론가 발길을 옮기는 권과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조용히 물어오는 정현이.
"하아.. 미쳐버리겠네.."
"뭘 또 미쳐?"
"티.. 팀장님?"
힘없이 한숨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팀장님 목소리.
"뭐하냐? 너 안 바쁘다며?"
"바빠졌습니다."
"엥? 안 되는데?
너 인마 왜 사람이 이랬다 저랬다 하냐?
너 일 시킬까봐 그러지?"
방금 전 권과장과의 일을 본 건지 못 본 건지
안 그래도 짜증이 나 있는 상황에서
평소 같으면 그냥 웃어 넘겼을 팀장님의 언행은
아빠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어.
"이거 한 번 봐봐."
A4용지를 철까지 해서 바카라자처럼 만들어
아빠에게 건네던 팀장님.
"... 이게 ... 뭡니까..?"
"담배 폈냐?"
"끊을라고요..."
"새끼가.. 들고 따라와 인마!"
또 아빠를 끌고 흡연실로 향하던 팀장님.
그러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는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엘리베이터로
발길을 옮기는 거야.
"커피나 한잔하러 가자."
"네? 담배 피신다고.."
"카페에서 피면 되지"
"그거 불법..."
"하.. 거 새끼 말 많네 그냥 따라와"
팀장님을 따라 회사 앞 커피숍으로 걸음을
옮겼어.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카운터로 향하던 팀장님은
또 다짜고짜 나에게 물어보셨지.
"차가운 거 먹냐? 뜨거운 거 먹냐?"
"네? 전 차가운 음료.."
"아메리카노 뜨거운 거 하나 차가운 거 하나요."
'하.. 또 커피..'
벌써 3잔..
잔에 담긴 커피를 보는데.
아직 마시지 않았는데도
신물이 넘어올 것 같은 거야.
"뭐하냐?"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려고 준비 중입니다.."
"아니 인마 너 안 바쁘다며?
왜 갑자기 바빠졌냐고."
팀장님의 물음은 아빠를 잠시 머뭇하게
만들었어.
'있는 그대로 전부 얘기해도 되나?'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지.
내 이유 따위 궁금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버그가 좀 있어서..."
"버그? 아~ 아까 권과장이랑 하던 얘기가
그거냐?"
"네.. 뭐..."
커피잔을 들어 입가에 가까이 한 채
아빠를 쳐다보며 묻던 팀장님은 잔을 다시
내려놓으며 호탕하게 웃으셨지.
"하하핫 난 또 뭐라고 권과장 그자식은
개발자가 버그좀 낼 수도 있지"
"그.. 그렇죠?"
"그럼 인마. 내 꺼만 아니면 되지.
내가 영업 갔는데 버그 터지면
너 바로 날라와서 내 눈앞에서 고쳐야 돼."
"..."
"영업이란게 그런거거든. 우리꺼 이렇게 멋지다
라고 자랑을 해야되는데. 그래서 사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 자리에서 이거 안돼고 저거 안돼고
그러면 이게 미쳐버리는 거거든. "
"하아..."
답답한 마음에 잔에 꽂힌 빨대를 빼고는
입을 대고 벌컥벌컥 커피를 들이키는 아빠를
지켜보던 팀장님은
웃음을 멈추시고는 말을 이었어.
"아까 준 거 읽어봤냐?"
"받자마자 나왔는데요.."
"읽어봐 그럼."
팀장님의 말에 아까 전해 받은 서류를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어.
"야 인마 훑어봐야지 그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다 보냐?"
"..."
그렇게 대략적인 내용만 훑어보기 시작했지.
"와.. 팀장님.."
"어떠냐? 죽이지 않냐?"
"죽이는데.. 문제는 저도 같이 죽겠는데요..?"
"너랑 그 단무지새끼랑 권과장. 그리고
좀 모자른다 싶으면 민차장까지 하면
이거 못할 건 없다고 보는데 어때? 벌써
심장이 막 벌렁거리지 않냐?"
"... 이거 보고 된 건가요?"
"미쳤냐? 내가 벌써 보고하게?"
"이거 해야 되는 거죠..
저한테 태권브이 만들라는 소리 같은데..."
"넌 선택권이 없어. 다른 애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냐. 이걸 상의하려고 했는데
뭔 소리야"
"아.."
선택권도 없어진 상황. 애꿎은 기획서만
계속 넘겨볼 뿐이었지. 파악하는 거였냐고?
아니.. 그냥 멍하니 글자 구경만 했던 것 같아.
그렇게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로 팀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뒤에야 비로소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어.
"도리! 어디 갔다 와?"
"나.. 찾았어? 왜..?"
"짠! 이 커피 신상인데 고소~한 게
바밤바 녹여 먹는 맛이더라!
한잔해~ 누나가 쏜다!"
"..."
하루 종일 몇 잔의 커피를 마신 건지..
네 번째 커피까지 받아 들면서,
다시는 커피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
"야.. 커피는 1.5L로 안 파냐..."
"도리야..
이거 누구 하나 쓰러져야 끝나는 거 아닐까?
아니야.. 쓰러져도 안 끝날 거야..
우린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에 배를 띄운 것 같아..
같이 뛰어내릴까? 너 헤엄 잘 쳐?"
/
얼마 후 커피가 물보다 더 몸속 지분을
차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