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악(禮樂)의 성전, 종묘제례악

​1. 침묵을 깨우는 소리

by목인 mokin

오래된 숲의 우거진 신록을 지나 종묘의 넓은 월대에 들어서면,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듯한 침묵과 마주하게 된다. 끝없이 펼쳐지는 그 정적의 공간 위로, 마침내 하늘과 땅의 문을 여는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어서 편경과 편종의 맑은 소리와 묵직한 금속음이 뒤섞이며 공간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듣던 익숙한 소리와는 결이 전혀 다르다. 기교가 배제된, 어쩌면 대자연의 호흡에 가까운 이 정대한 울림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의 축이 수백 년 전으로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묘한 감상에 젖어들게 된다. 붉은 제복을 입은 악공들의 초연한 손길과, 그 장엄한 음률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바꾸는 무용수들의 절제된 몸짓이 펼쳐진다.


나는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 신비로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예악은 또 무엇인가? 얼마나 소중했기에 오늘날까지 원형 그대로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장엄하고 신비로운 소리와 몸짓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만 했던 가치가 있었으리라. 또 그것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한국인만의 정신적 원류이자 DNA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 그리고 자부심의 정점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조선왕조실록'과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종묘제례악’을 꼽겠다.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사관들의 직필 정신과, 이러한 사관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문물제도가 낳은 위대한 산물인 '조선왕조실록'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종묘제례악의 맑은 소리와 정대하고 고결한 몸짓은 조선왕조의 품격이다. 내면의 도덕성과 외형적 격식인 예(禮)와 악(樂)을 온전히 갖추었기에 나라의 당당한 위상이 되는 것이며, 마음속 깊은 곳의 성찰을 소리로 변환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역사 앞에 자신을 표현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위대한 나라의 말은 없다.

흔히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한다. 이때 신(身)과 언(言)이 바로 내면의 예악(禮樂)이 밖으로 발현된 모습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반드시 익혀야 했던 여섯 가지 덕목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육예(六藝, 禮·樂·射·御·書·數)'이다. 선비들은 글 읽기보다, 활쏘기(射)와 말타기(御)를 통한 심신단련을 우선했고, 그보다도 예악(禮樂)을 모든 덕목의 으뜸이자 최고 정점에 두어 올바른 사람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국 조선의 예악은 하나의 거대한 인격체이자 완성체였던 셈이다. 절제되고 우아하면서도 당당한 몸짓(身, 禮)과 정대하면서도 바람결에 흔들린 듯한 파동의 소리(言, 樂)가 되어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불멸의 원형을 지켜낸 종묘제례악. 그 이면에 한국인의 정신과 독보적인 서사가 오늘날 우리의 핏속에 뜨겁게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사진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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