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민족정신의 산물

by목인 mokin

​보통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면 472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왕조의 일거수일투족을 사관이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는 점, 그 규모가 무려 4,960만 자에 달할 만큼 방대하다는 점, 그리고 오랜 시간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원본이 그대로 보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외형적·물리적 조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록을 작성한 사관들의 곧은 기개와 직필 정신, 그리고 이를 제도와 법률로 뒷받침하고 수용한 국왕이 있었다.

​이러한 제도와 정신은 사대부를 넘어 일반 백성에게까지 열려 있었고, 그 과정에서 민중의 의식이 싹틀 수 있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DNA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에 실록의 편찬과 이러한 제도가 어떻게 민간의 의식과 힘으로 확산되고 근현대 역사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의 실록을 합쳐서 부르는 바카라 이름이다. 제1대 태조로부터 제25대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에 걸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낸 인류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기획하여 편찬한 역사서가 아니라, 역대 조정에서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편찬한 기록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보면 조선왕조실록이 지닌 가치는 더욱 빛나고 독보적이다. 중국의 실록들은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의 의도를 비켜갈 수 없었고 끝내 원본조차 보존되지 못했다. 일본의 역사는 통치권자의 과오를 기록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 반면 조선은 국왕이 개작은 말할 것도 없고 열어볼 수 조차 없었던 완전히 독립된 성역을 구축하고 4,960만 자라는 방대한 기록을 온전히 보존해 냈다.
​이러한 기록의 보존은 탁월한 시스템과 법률적 제도만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부패하면 제도는 한낱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실록이 온전히 남을 수 있었던 본질적인 원동력은 목숨을 걸고 붓을 쥐었던 사관(史官)들의 직필(直筆) 정신에 있다.

​태종 시절, 국왕이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본 왕은 이 일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다. 군주의 말 한마디로 목숨이 좌우될 수 있는 시대였으나, 사관은 국왕이 "알리지 말라 하였다"는 그 말조차도 실록에 그대로 기록했다. 국왕을 포함해 그 누구도 열어볼 수 없도록 엄격하게 사초를 봉인하고, 편찬이 끝난 뒤에는 기밀 누설을 방지하기 위해 먹물을 물에 씻어내는 세초(洗草)를 시행하는 등 철저한 보안과 정직함을 유지했기에 이 거대한 기록물이 버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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