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길어 올리는 마음의 능선

나는 아직도 걸어가고 있는가

by숨결biroso나


나는 아직도 걸어가고 있는가


달력을 넘기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손가락 끝으로 종이 한 장을 밀어 넘기자 숫자 하나가 바뀌었다. 6에서 7로. 그 단순한 움직임 앞에서 한동안 손이 멈춰 있었다. 달력은 분명 새로운 달을 가리키는데 마음은 아직 지난달의 어느 저녁을 서성이고 있었다.

햇볕은 마당 끝까지 밀려와 담벼락을 하얗게 달구고, 화단 속 흙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찾았다. 계절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앞으로 걸어가는데, 사람의 마음만은 계절처럼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이상한 일이다. 새해 첫날에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7월이 되면 문득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올해 계획은 얼마나 이루었을까.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제자리인 것 같지.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절반쯤 왔을 때부터 자신을 채점하기 시작한다.

등산의 기억이 떠오른다. 출발할 때는 설렘이 있었다. 정상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기대가 생겼다. 가장 힘들었던 곳은 산 중턱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이미 꽤 올라왔는데, 앞을 보면 갈 길이 훨씬 멀어 보였다. 그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

아직도 멀었네?


인생도 꼭 그렇다. 처음에는 꿈이 우리를 끌고 나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꿈보다 피로가 먼저 말을 걸고 있다. 결혼도 그렇고, 육아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처음에는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심은 대부분 중간쯤에서 찾아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동기 저하는 시작 직후도, 끝 직전도 아닌 '중간 구간'에서 자주 나타난다. 처음에는 기대가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마지막에는 결승선이 힘을 보태지만, 중간에는 두 지점이 다 희미하기 때문이다. 시작의 설렘은 사라졌고, 결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성취가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멈춰 선 지점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예고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안갯속을 걷는 사람과 닮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시야에는 안개밖에 없다. 멈춘 것 같고, 길을 잃은 것 같고, 잘못 걷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안개는 길을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단지 풍경을 거두어, 우리가 오직 자신의 발끝과 호흡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할 뿐이다.
우리가 가장 자주 착각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겨울 내내 흙 속에 숨어 있던 뿌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봄을 준비하며 가장 치열하게 뻗어 나간 시간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계절이었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속에서는 오래된 믿음이 무너지고, 새로운 용기가 조금씩 자라난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성장보다 불안을 먼저 느낀다.

성장은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다.

우리는 흔들림을 실패의 증거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리면 방향이 틀렸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배는 항구를 떠나는 순간보다 먼바다에서 더 크게 흔들린다. 그렇다고 항로를 잘못 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바다에 들어섰기 때문에 파도가 커진 것이다.

사람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는 마음이 더 크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실패라고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잃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을 변화의 신호라고 읽는 사람은 같은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앞으로 걸어 나아갈 수 있다.




계절이 무르익어 정점을 향해 치닫는 7월의 어느 날, 나는 지금 내 삶의 가장 짙은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얼마나 왔을까'가 아니라,
'나는 아직도 걸어가고 있는가.'



끝도 시작도 아닌 자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길을 잃는다. 흔들리는 것은 뒤처졌기 때문이 아니라, 중요한 전환점에 들어섰기 때문이지 않을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면 절반은 끝이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능선이다.


능선에 서면 정상은 아직 멀어 보인다. 그래서 가장 많이 흔들리는 곳도, 가장 많이 자신을 의심하는 곳도 언제나 그쯤이다.

하지만 산은 말이 없다. 그저 한 걸음씩 오르는 사람에게만 다음 풍경을 내어 줄 뿐이다.



오늘도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아직 길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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