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말려가는 하루를 본다

빛의 끝에서 배운 느림의 온도

by숨결biroso나


빛의 끝에서 배운 느림의 온도


빨래를 넌다.

햇살이 천천히 천 위를 스친다.


이 계절의 공기는

언제나 약간의 냄새를 품고 있다.


비눗물에 남은 하루의 흔적 같은,

그런 따뜻하고 사소한 냄새.


빨래집게를 하나씩 집어 올리다 보면

손끝에서 마음이 느려진다.


이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냥 나를 말려주는 일 같아서.



요즘은 부쩍

무언가를 ‘잘 견디는 법’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버텨보기’를 배우는 중이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어쩐지 살아 있는 얼굴이다.


누군가는 ‘평범하다’고 부를 장면들이

나에겐 하루를 지켜주는 풍경이 된다.

그 속에서 나는 숨을 고른다.


예전엔 자꾸 채워야만 했다.

일, 사람, 문장, 계획.


빈 시간을 두면 무너질 것 같아서

언제나 무엇으로든 채웠다.


그런데 요즘은,

비워진 시간이 내 편이 되어준다.


말리지 않은 마음을 천천히 펼쳐두면

햇살이 그 위를 다정하게 닿는다.


그 온기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말리고 있다.


마르면서도 부드럽게 남는

하루의 섬유처럼.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 없는 오후겠지만

나에겐 이 고요가 꼭 필요하다.


조용히, 천천히,

다시 살아나는 감각의 시간.




글을 쓴다는 건

말리지 않은 마음을 바람에 내놓는 일 같다.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그저 빛이 닿기를 기다리는 일.


오늘의 나도 그렇게,

조용히 말려간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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