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사랑에 좌표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아내의 마지막 뒷모습을 배웅한 뒤,
나는 홀로 긴 복도에 남았다.
제왕절개 수술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시계 초침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도록 수술실의 굳게 닫힌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복도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내 가슴은 자꾸만 쿵쿵 깊은 곳으로 내려앉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에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을 뒤적였지만,
화면에 뜨는 것은 온통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걱정스러운 부작용과 후기들뿐이었다.
이른 새벽의 병원은 유난히 어둡고 쓸쓸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시아버지과 친정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
새벽부터 연락해서 깨우지 말라던 아내의 당부가 떠올라
어디에도 전화를 걸지 못했다.
나는 불 꺼진 병원 복도의 낡은 의자에 앉아,
손끝이 저려올 만큼 초조하게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렇게 온 마음의 수분이 다 말라버려 바스락거릴 즈음,
마침내 간호사가 아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나는 이끌리듯 그 목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너를 보았다.
어두운 우주에서 홀로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운 눈,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얗고 투명한 피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작고 고운 손가락과 발가락.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마주한 너의 모습은 내 빈약한 문장으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저 이 거칠고 메마른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예쁘고 사랑스러운 생명이 올 수 있었을까 싶어,
나는 나도 모르게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너무 예쁘다……." 하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내 목소리를 들은
아이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베시시 웃었다.
곁에 있던 간호사가 신기한 듯 웃으며 말했다.
"아기가 아빠 목소리를 아나 봐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많이 들었나 보네요."
그 한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올랐고,
주위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채 세상이 그대로 멈춘 듯 고요해졌다.
엄마의 병실 간이침대에서 외롭게 바카라장을 넘기던 밤도,
삶의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기억도,
이 찬란한 눈부심 앞에서 모두 눈 녹듯 사라졌다.
겨울 햇살 아래 희미하게 그어져 있던 그 한 줄의 선이,
마침내 내 품에 안긴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기적이 되었다.
병실로 돌아온 아내는 마취 기운이 가시지 않은
창백한 얼굴로 나를 보며 가장 먼저 물었다.
"여보, 애기 첫 동영상은 잘 찍었어?"
사실 수술실 밖에서 내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
바로 그 첫 만남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찍은 영상을 보여주자,
아내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생했다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따뜻한 칭찬 한마디에
나 역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날이 밝자마자 아버지와 처가 어른들께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른들의 목소리에는
평생 들어본 적 없는 깊은 환희가 배어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오고 싶어 하셨지만,
병원의 엄격한 방침 때문에 면회 시간과 인원이
철저히 제한되어 있어 발만 동동 구르실 뿐이었다.
그 애타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면회 시간이 아님에도 괜히 신생아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복도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했다.
유리창 너머로 숨겨진 요람을 한 번이라도 더 훔쳐보고 싶어서,
내 아이가 숨 쉬는 공기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서.
드디어 기다리던 첫 면회 시간이 되었다.
아내는 수술 부위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힘겨워 보였지만, 아이를 보러 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입술을 깨물며 벌떡 일어났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통증이 밀려오는 듯
아내의 어깨가 들썩였지만,
아이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란히 서서 신생아실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같은 날,
같은 세상에 발을 디딘 여러 아이들이 누워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눈에는 오직 아이만 유독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뽀얀 살결,
그리고 세상 그 어떤 풍경보다 평화로운 너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아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이 작고 완벽한 생명이 우리에게 무사히 와주었다는 것에 대한,
눈물겹도록 사무치는 감사의 인사였다.
그러나 품에 안긴 기쁨도 잠시,
우리의 세계가 확장되는 첫걸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당탕거리며 찾아왔다.
병원을 퇴원해 성탄이를 카시트에 처음 태우던 날,
나는 운전대를 잡은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고일 정도로 긴장해 있었다.
문득 아주 오래전,
무뚝뚝한 아버지가 내 곁에 앉아
운전을 가르쳐주던 날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뱉어내는 침묵이 더 무거워 앞만 보고 달렸던 기억.
지금은 사랑하는 딸 아이를 뒤에 태우고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리원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백미러로 아기 카시트를 살피는 순간 깨달았다.
아버지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자동차의 궤적이 아니라,
운전대를 잡은 손에 실려 있던 아들의 삶 전체였다는 것을.
백미러 속에서 네 작은 목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한쪽으로 툭툭 꺾이는 것이 보였다.
그 가냘픈 흔들림에 내 심장도 사정없이 덜컹거렸다.
차를 안전한 곳에 급히 세우고,
가방 뒤에 있던 가제수건과 기저귀를 서투르게 접어서
아이에 가녀린 목 사이에 겨우 받쳐놓고서야 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내 차 뒤로 수많은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지만,
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내 손에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좌표가 쥐어져 있었으니까.
그날따라 도로는 왜 그리도 거칠고 사나웠는지 모른다.
차가 한번 '쿵' 하고 흔들릴 때마다,
내 심장은 수천 번도 더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혹시나 이 작은 충격에 네가 놀라 잠에서 깨지는 않을까,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을까 싶어
도로 위의 작은 요철 하나조차 모두 내 잘못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막히는 길을 지나 조리원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얌전하던 아이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허겁지겁 차에서 내려 바구니형 카시트로 갈아 태우고
아이를 안고 조리원 로비로 들어섰을 때,
아이는 이미 자지러지게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부모라는 이름을 단 지 고작 며칠 되지 않은
우리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떻게든 이 울음을 멈춰보겠다고,
나는 양손으로 그 바구니형 카시트 손잡이를 잡고
마치 그네를 태우듯 앞뒤로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얼굴이 벌개진 채 쩔쩔매는 내 모습을 보고,
마중 나와 있던 조리원 선생님들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님, 카시트를 흔들지 마시고 그냥 바닥에 내려두고 아기를 안아주세요."
그 당연하고 간단한 말이,
그땐 왜 그렇게 기억나지 않고 어렵기만 했을까.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에 내 등 뒤로는 이미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베테랑 선생님들의 능숙한 손길을 거치고 나서야
아이는 조금씩 울음을 그치고 평온을 되찾았다.
조리원 생활이 시작되고,
드디어 우리 방에 너와 단둘이 남겨지는 '모자동실' 시간이 찾아왔다.
아내는 마치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가만히 읊조리고 있었다.
"아기가 울면 일단 기저귀부터 확인하고, 기저귀가 깨끗하면 그다음엔 분유를 먹이는 거야……."
그렇게 아이는 병원 유리창 너머가 아닌,
우리의 온전한 품속에 처음으로 오래 머물렀다.
나와 아내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아이에 작은 손가락 마디,
얇은 입술,
깜빡이는 눈동자 하나하나를 홀린 사람들처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내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기침대 머리맡에 흑백 초점바카라을 펼쳐두고 사진을 찍었고,
내가 조리원 오기 전 사두었던 앙증맞은 머리핀을
숱 많은 머리카락에 살짝 꽂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갑자기 네가 목청이 터져라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조리원에 고요가 깨지는 순간,
나와 아내는 아까 외워두었던 주문을 모두 잊어버렸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기저귀를 확인해야 한다는
첫 번째 순서는 새하얗게 지워버린 채,
무작정 서둘러 따뜻한 분유병부터 아이에 입에 물렸다.
그러나 아이는 우유를 거부하며 더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한참이 지나서야 축축하게 젖은 기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채워준 기저귀가 무거워 울었던 아이를 두고 엉뚱한 처방만 내렸던 서툰 부모.
결국 미안함과 속상함에
아내도 울고, 아이도 울고, 나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의 진짜 부모 됨은 그렇게 달콤한 축복만이 아니라,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행복한 눈물로 시작되고 있었다.
부모라는 자격증은 세상 어디에서도 발급해주지 않기에,
우리는 아이라는 거울을 보며 매일 조금씩 서투른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