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go."는 생각보다 다정한 문장이었다

영심이 시리즈 09. 놓아준다는 건 버리는 게 아니었다

by쉼표JEONGSEON


오늘 영심이는 창문으로 들어왔다.


문도, 벨도, 이번엔 아예 건너뛰었다.


커튼을 슬쩍 젖히더니
바람처럼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내 바카라상 위에 걸터앉았다.


"너 요즘, 손에 뭘 꽉 쥐고 있더라."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주먹 좀 펴고 살아."


"…무슨 소리야."


영심이는 대답 대신
휴대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거기엔 짧은 문장 하나가 떠 있었다.


Let it go.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Let it go.
놓아줘. 흘려보내. 그냥 두어라.


나는 이 말을 오래 오해하고 살았다.


놓아주라는 건
포기하라는 말인 줄 알았다.
잊으라는 말, 없던 일로 하라는 말,
마음에서 지워버리라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문장이 늘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다 잊어."
"신경 꺼."
"그럴 가치 없어."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더 꽉 쥐었다.


놓으면 진짜 사라질까 봐.
놓으면 그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 될까 봐.


"영심아."


"응."


"놓아주면… 그게 없던 일이 되는 거야?"


영심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그래?"


"…아니,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 놓아라, 잊어라."


영심이가 피식 웃었다.


"놓는 거랑 버리는 거랑 같은 줄 아나 보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영심이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봐. 뭘 쥐고 있을 때는 손이 이렇게 닫혀 있어.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얼마나 무거운지, 손 주인도 몰라."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근데 이렇게 펴야, 그제야 보이거든. 아, 내가 이런 걸 이렇게 오래 들고 있었구나— 하고."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늘 뭔가를 쥐고 있었다.


지난 일. 하지 못한 말.
받지 못한 사과. 되돌리고 싶은 저녁.
그리고 "그때 내가 조금만 달랐더라면" 하는,
이미 지나가버린 가정들.


그것들을 놓으면
내가 겪은 시간까지 부정하는 것 같아서
나는 손을 펴지 못했다.


Let it go.


그런데 영심이 말대로 손을 펴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쥐고 있던 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손바닥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다만 나를 아프게 쥐어짜지 않을 뿐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놓아준다는 건
그것을 버리는 게 아니었다.


꽉 쥐느라 아팠던 손에게
이제 그만 좀 쉬라고
건네는 다정한 말이었다.


우리는 보통 놓아주는 걸 두려워한다.


놓으면 지는 것 같아서.
놓으면 그 마음이 가벼웠다는 뜻이 될까 봐.
놓으면, 나만 먼저 괜찮아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미움도, 그리움도, 후회도
손이 저리도록 쥐고 있는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놓아주어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미움은 내려놓아야 내가 편해지고
그리움은 흘려보내야 그 자리에 새 계절이 들어오고
지난 나는, 그만 붙잡아야
지금의 내가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Let it go.


이 문장은 나에게
버리라고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만 아파도 된다고,
이제 손을 좀 펴도 된다고,
그렇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영심아."


"응."


"놓아주는 것도… 사랑인가?"


영심이는 어느새 내 옆에 기대 앉아 있었다.
남의 손 다 펴놓고, 자기는 또 졸린 얼굴이었다.


"제일 어려운 사랑이지."


"왜?"


"쥐는 건 마음만 있으면 되는데, 놓는 건 용기가 있어야 되거든."


나는 그 말을 오래 들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손을 완전히 펴보았다.


무언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줄 알았는데
빠져나간 건 힘이었다.


붙잡느라 오래 준 나 자신의 힘.


Let it go.


오늘은 그 말이
생각보다 다정한 얼굴로 찾아왔다.


나는 손을 폈다.
그리고 처음으로,
쥐고 있던 것들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다.


잘 가.
미워했던 것도.
그리워했던 것도.
그리고 그걸 오래 놓지 못했던 나도.


놓아준다는 건 버리는 게 아니라,

쥐느라 아팠던 손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였다.


나는 손을 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잘 가라고 인사했다.



— 쉼표 JEONGSEON


영심이는 한 번에 큰 소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 뒤에 남은 마음을 지나, 이번에는 놓아준다는 말 안에 숨어 있던 다정함을 들여다봅니다. 앞뒤의 영심이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시면, 이 작은 문장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조금 더 선명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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