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라는 탈 — 나를 먼저 깎는

남이 때리기 전에 나를 먼저 때리면, 정말 안 아플 줄 알았다

by쉼표JEONGSEON


"에이, 나 같은 게 뭘."


이 말이 습관처럼 입에서 나온다. 누가 나를 칭찬하면 "아유, 운이 좋았죠", 무언가에 도전할 기회가 오면 "제가 뭘 하겠어요", 실수라도 하면 남이 뭐라 하기도 전에 "역시 나는 이것밖에 안 돼" 하고 먼저 웃어 버린다. 나를 낮추는 이 농담들이 이상하게 나를 편하게 한다. 내가 나를 먼저 깎아 두면, 아무도 나를 벨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나 같은 게 뭘"이, 이 글이 벗기려는 탈이다. 내가 나에게 씌운 탈 가운데 가장 아픈 탈.


자조라는 탈은 가장 안전해 보이는 탈이다. 자기를 낮추니 재수 없어 보이지 않고, 먼저 웃어 버리니 상처받을 일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탈에는 다른 어떤 탈보다 슬픈 비밀이 있다. 이것은 남을 속이려는 탈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다 나를 해치는 탈이라는 것. 남이 나를 찌를까 봐, 그 칼을 내가 먼저 빼앗아 들고 나를 찌르는 것이다. 어차피 찔릴 거라면 내 손으로 찌르는 게 덜 아플 거라는, 슬픈 계산.



먼저 때리면 안 아플 거라는 착각


자조가 겸손과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3화에서 해부한 겸손이라는 탈은, 사실 자기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칭찬을 접어 두고 "제가 뭘요" 할 때, 그 사람은 속으로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낮추는 척하며 올라간다. 그런데 자조는 정반대다. 자조하는 사람은 정말로 자기를 깎는다. 올라가려는 게 아니라, 다치지 않으려고 깎는다. 겸손의 탈이 위장된 과시라면, 자조의 탈은 위장된 공포다.


그 공포의 논리는 이렇다. 남이 나를 비웃으면 아프다. 그러니 남이 비웃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비웃어 버리자. 그러면 남이 웃어도 "어, 나도 알아. 내가 먼저 말했잖아" 하고 넘길 수 있으니까. 선제공격으로 상대의 칼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이건 꽤 효과가 있다. 내가 먼저 "나 진짜 못났지" 하면, 아무도 나를 못났다고 공격하지 못한다. 이미 내가 다 해 버렸으니까.


문제는 그 공격을 매일 내가 나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의 칼은 막았을지 몰라도, 내 손에 쥔 칼은 매일 나를 벤다. 그리고 그 상처는 남이 낸 상처보다 깊다. 남의 비웃음은 잠깐이지만,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비웃음은 하루 종일, 평생 이어지니까. 남이 던지는 돌은 피할 수라도 있지만, 내가 나에게 던지는 돌은 피할 곳이 없다. 던지는 나와 맞는 내가 같은 사람이니까.


더 무서운 건, 이 자조가 반복되면 그게 진짜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방어용 농담이었는데, "나 같은 게 뭘"을 천 번쯤하고 나면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있다. 나를 지키려고 시작한 말이, 나를 가장 확실하게 무너뜨리는 주문이 되는 것이다.



몽당연필의 고백

하루는 필통 구석에서 손에 쥘 수도 없이 짧아진 몽당연필을 버리려다, 그것이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쓰이려고 제 몸을 깎고 또 깎다가, 이제는 잡을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린 그 연필이.


"나, 처음엔 길고 멀쩡했어."


몽당연필의 목소리는 흑연처럼 부슬거렸다.


"근데 나는 무서웠어. 뭉툭한 채로 있으면 '넌 못 써먹겠다'라고 버려질까 봐. 그래서 나는 자꾸 나를 깎았어. 남이 나를 깎아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뾰족하게. 더 쓸모 있어 보이려고, 더 안 버려지려고, 깎고 또 깎았지.


근데 봐라. 그렇게 나를 지키려고 깎은 결과가 이거야. 이제 나는 너무 짧아서 손에 쥐지도 못해. 남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나를 다 깎아서 못 쓰게 만들어 버린 거야. 지키려던 게, 결국 나를 없애 버렸어.


너도 그래. 너는 남한테 안 다치려고 너를 먼저 깎지. '나 같은 게 뭘' 하면서. 근데 그렇게 깎다 보면, 진짜로 아무것도 안 남아. 남이 너를 없애는 게 아니라, 네가 너를 깎아서 없애는 거야.


나를 지키는 건 나를 깎는 게 아니야. 뭉툭해도, 못생겨도, 나를 그냥 두는 거야. 깎지 않고 두는 것도 용기야."


몽당연필의 고백은 흑연처럼 부스러졌지만, 손끝에 검게 묻어 오래 남았다.


자조가 나를 지켜 준다고 여겼던 날들을 떠올렸다. 지켜진 게 아니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깎여 사라지고 있었다. 남에게 안 다치려고 나를 먼저 깎던 그 칼이, 실은 나를 가장 확실하게 없애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오해는 말자. "당신은 최고예요, 자신을 사랑하세요" 같은 뻔한 응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말은 자조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공허하게 들린다. 이 해부실은 그런 사탕을 파는 곳도 아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하나다. 나를 깎는 그 칼을 내가 쥐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는 것. 남이 나를 비웃을까 봐 두려운 그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내가 나를 먼저 부수는 건, 상처를 막는 게 아니라 상처를 앞당기는 것이다. 남이 아직 나를 벨지 안 벨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미 나를 다 베어 버린 뒤니까.


뭉툭한 나를 그냥 두는 것. 남이 뭐라 하든, 나를 미리 깎아 내놓지 않는 것. 못난 부분이 있어도 그것을 먼저 웃음거리로 바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방어다. 자조는 나를 지키는 갑옷이 아니라, 내가 나를 향해 든 칼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나 같은 게 뭘"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 할 때, 딱 한 번만 멈춰 보자. 나는 지금 겸손한 걸까, 아니면 남이 때리기 전에 나를 먼저 때리는 걸까. 이 자조는 나를 지키고 있을까, 아니면 매일 나를 조금씩 깎아 없애고 있을까.



쉼표의 엉뚱한 질문


오늘 당신이 던진 "나 같은 게 뭘"이라는 농담은, 정말 가벼운 농담이었는가. 아니면 남이 당신을 깎기 전에, 당신이 먼저 집어 든 칼이었는가.


당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말을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말을 천 번쯤 반복한 지금, 당신에게는 아직 깎이지 않은 부분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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