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시작하려는 사람이 가장 자주 빠지는 함정
나는 열일곱에 처음 방향을 잡았다.
그전까지의 나는, 방향이 아니라 감정에 끌려 다녔다.
사람은 생각보다 감정에 가까운 존재다. 기쁘면 달리고, 불안하면 멈추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의 결이 달라진다. 무언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조차 대개는 방향의 계산이 아니라 감정의 떨림에서 시작된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 "지금이 아니면 늦을 것 같다"는 조급함, "이 길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우리는 그것을 방향이라 부르지만, 실은 감정에 가깝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감정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나침반이 되지는 못한다. 감정은 강렬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새로 시작하던 날의 설렘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작은 칭찬 하나에 하늘을 날다가 며칠의 무반응에 마음이 굳는다. 큰 결심을 앞두고 밤새 뒤척이다 끝내 첫발을 떼지 못하고 돌아서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 순간 우리를 멈춘 것은 실력이 아니라 감정이었다는 것을. 흔들림이 오면 방향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결심하고, 쉽게 지치고, 쉽게 의심한다. 분명한 방향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방향은 감정보다 느리다. 대신 단단하다. 방향은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인지,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인지. 이 질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감정에 끌려다닌다. 감정은 우리를 출발시키지만, 방향만이 우리를 지속시킨다. 감정은 순간을 만들고, 방향은 시간을 만든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할까. 방향을 세운다는 것이 곧 바카라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흔들려도 괜찮지만, 방향은 한번 정하면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감정은 변명할 수 있지만, 방향은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벼운 쪽을 택한다. 방향 없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목적지 없이 짐을 싸는 것과 같다. 분주하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감정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통과하려 한다. 불안하다면 왜 불안한지, 설렌다면 무엇이 설레는지, 지친다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묻는다. 벽에 부딪쳤을 때 "나는 재능이 없나 보다"라고 결론 내리는 사람과,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었나"를 다시 묻는 사람은 6개월 뒤 전혀 다른 자리에 있다. 그 질문 끝에서야 구조가 보인다. 구조가 보이면 방향이 선다. 방향이 서면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흔드는 파도가 아니라, 나를 밀어주는 바람이 된다.
오래 남는 사람은 다르다. 감정으로 시작하되, 방향으로 자신을 묶는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감정을 통과해 구조를 확인하고, 그 구조 위에 다시 선다. 나는 수백 편의 글을 쓰고 지우며 몇 번이고 멈추고 싶었다. 그때마다 나를 다시 앉힌 것은 영감이 아니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스스로 답해놓은 문장들이었다. 결국 끝까지 가는 사람은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방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불안과 망설임을 여러 번 통과한 사람만이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다.
방향을 묻는 질문을 피하지 않는 사람만이 오래 간다. 나는 감정보다 방향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었다.
다음 글에서는, 방향 없는 성실이 어떻게 우리를 소모시키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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