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는 사이드가 없다
미국에서 한국 음식을 설명할 때 가장 쉽게 쓰는 말 중 하나가 side dish (사이드 디시)다. 반찬을 영어로 뭐라고 하느냐고 물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side dish라고 한다. 사전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데 한국 밥상 앞에 앉아 있으면 이 번역이 조금 아쉽다.
미국의 side dish를 생각해 보면 이름 그대로 메인 요리 옆에 놓인다. 메인과 사이드의 역할도 비교적 분명하다.
스테이크가 주연이라면 Mashed Potatoes(매시 포테이토)는 조연이다.
햄버거가 주연이라면 프렌치프라이는 그 옆을 지키는 조연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이드는 빼도 된다. 감자튀김 없이 햄버거만 먹어도 햄버거를 먹은 것이고, 매시 포테이토를 주문하지 않았다고 해서 스테이크가 갑자기 스테이크 자격을 잃는 것도 아니다.
물론 가끔 조연이 주연을 잡아먹는 사태가 발생한다.
특히 프렌치프라이가 그렇다.
햄버거는 한 입 먹고 내려놓으면서 감자튀김은 하나씩 계속 손이 간다. 결국 햄버거는 남았는데 감자는 사라지는, 주연 교체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기본적인 관계는 분명하다. 메인이 있고, 그것을 옆에서 거드는 사이드가 있다.
그런데 한국 밥상은 다르다.
밥만 따로 먹지도 않고, 밥 없이 반찬만 먹지도 않는다.
밥 한 숟가락을 뜨고 반찬을 하나 집는다. 다음 숟가락에는 다른 반찬을 올린다. 밥과 반찬을 번갈아 먹으면서 한 끼를 만들어간다.
여기서 side dish와 반찬의 차이가 생긴다.
사이드는 메인 요리 옆에 놓인 음식이다. 반찬은 밥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비슷하게 옆에 놓여 있어도 관계가 다르다.
사이드는 없어도 메인이 메인인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국 밥상에서 밥과 반찬은 어느 한쪽만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한 끼의 모습이 되지 않는다.
밥과 반찬은 서로 다른 음식인데, 한 상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원적 일체쯤 될까.
그래서 미국의 side dish와 한국의 반찬을 같은 말로 부르면서도 묘하게 다른 느낌이 남는다.
요즘은 미국에서도 한국 음식의 반찬을 굳이 번역하지 않고 banchan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 음식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banchan이 무엇인지 물으면 설명할 때는 또 side dish라는 말을 빌린다.
이름은 banchan인데 설명은 side dish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아마 설명하기 가장 편한 말과 그 음식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름이 꼭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국의 반찬은 종류도 참 많다.
김치, 나물, 멸치볶음, 장조림, 어묵볶음, 무생채….
한 상에 여러 접시가 올라온다. 그렇다고 모두가 조연인 것도 아니다. 밥 한 숟가락을 뜨고 어떤 반찬을 집느냐에 따라 그 숟가락의 맛이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는 김치가 먹고 싶다가도 다음 숟가락에서는 멸치볶음이 당긴다. 국을 한 숟가락 먹고 나면 나물이 생각나고, 장조림 하나 집어 먹고는 밥을 한 숟가락 더 뜬다.
이쯤 되면 주연과 조연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미국의 식탁에서는 메인 요리가 중심에 있고 사이드가 옆을 지키는 모습이 자연스럽다면, 한국의 밥상에서는 여러 음식이 번갈아가며 주인공이 된다.
밥 한 숟가락마다 주연이 바뀌는 셈이다.
한국 밥상은 주연 하나로 만족하지 않는다.
김치도 주연이고, 나물도 주연이고, 장조림도 주연이다. 심지어 어제까지 별 관심 없던 멸치볶음이 오늘 갑자기 주연으로 캐스팅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주인공들이 서로 싸우지 않는다.
밥 한 숟가락에 김치가 올라가고, 다음에는 나물이 올라가고, 또 다음에는 장조림이 올라간다. 각각의 맛이 밥과 만나면서 한 끼가 된다.
그래서 반찬은 어쩌면 side보다 함께에 더 가까운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side dish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그 관계까지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한국 밥상에서 반찬은 조연이 아니다. 밥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한 끼가 완성된다.
그러니 한국 밥상에서는 누가 주연인지 묻지 않는 편이 좋겠다. 숟가락이 알아서 정하니까.
P.S. 여러분의 밥상에서 주연을 가장 자주 차지하는 반찬은 무엇인가요?
누구나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우게 만드는 반찬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저는 남의 밥도둑 이야기를 듣는 것도 꽤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