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도면 괜찮은 팀장인 줄 알았습니다만

꼰대가 되지 않으려다 꼰대가 된 사람의 이야기

by비타민W
아마 좋은 리더가 되는 일은,
'나는 좋은 상사야'라고 믿는 순간부터 멀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덕죽 셰프님의 모습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한국 중식의 대가이자 수많은 이들의 스승임에도,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 묵직한 웍을 직접 들고 젊은 후배들과 같은 선상에서 뛰었다.


내가 그 방송을 보며 감탄했던 것은 실력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결코 자신의 경력을 내세워 아랫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젊은 후배들 앞에서도 겸손했다. 보통은 경력과 경험이 오르면 '상사'나 '꼰대'가 되기 쉽다. 그러나 후 셰프님은 진정한 의미의 '사부'이자 단단한 어른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진정한 어른에 대한 갈증이 있던 사람들에게 그는 큰 울림을 주었고, 나 역시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탄의 끝에서 문득 과거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과연 어떤 상사였을까?'




내가 만든 '가짜 쿨함'

엄마가 되기 전, 나는 팀장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긴 후 육아와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 탓에 스스로 그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팀원이 되었다. 다행히도 나의 상사는 좋은 사람이었고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물론 주변의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그늘 아래서 날카로운 시선들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나보다 먼저 회사를 떠나기 전까지는.


팀장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꽤 합리적인 리더라고 생각했었다. 팀원들과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는 불필요한 회식이나 야근을 싫어했다. 개인 시간을 확실히 보장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내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괜찮은 팀장'의 틀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팀원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진실을 마주했다. 동료들과 편하게 커피를 마시며 나누던 사담 속에서, 이전 팀원들이 무심결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예전에 아무리 잘해주셔도 저희 입장에선 늘 거리감이 있었어요."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팀장님들끼리는 한편일 것 같아서 편하게 말씀을 못 드렸고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어금니로 지그시 씹었다. 당황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키기 싫어, 태연한 척 웃으며 "그럴 수 있지"만 연발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선을 그어도 너무 긋는 편이었다. 점심 식사도 혼자 했고, 같은 질문을 두 번 하면 이마에 주름부터 짓는, 대화에 찬바람이 쌩쌩 부는 사람, 까칠해서 존재만으로 불편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 나도 전형적인 꼰대였구나.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 되던 상사 중 한 명이었구나.'


나는 편하게 해 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팀원들 눈에는 그저 선이 분명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하나의 '상사'였을 뿐이었다. 나는 어쩌다가 내가 절대 되기 싫었던 꼰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직급이 올라가면 악역은 따라온다

생각이 꼬리를 물자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 다시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팀장이었던 나 역시 팀원들에게 온전한 마음을 주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었다. 부서원들을 평가해야 했고, 위와 아래의 요구가 충돌할 때마다 어느 한쪽의 편도 들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그것을 '리더의 중립'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어쩌면 불필요한 담을 쌓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회의에서 임원 A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높은 목표를 제시했다. 현장 팀원들의 피로도를 알고 있던 나는 회의참석자 중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 목표는 다른 KPI와 상충될 수 있고, 목표치가 너무 높아 팀원들에게 무력감을 줄 수 있습니다."


회의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다. 결국 목표치는 크게 바뀌지 않은 채 결정되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와 팀원들에게 결과를 공지했다. 싸늘한 침묵과 깊은 한숨이 흘렀다.


내 딴에는 임원에게 총대를 메고 이의를 제기했다가 장렬히 전사하고 내려왔는데, 정작 아래 팀원들은 "결국 받아오신 게 이거예요?"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억울하고 이전 선배들이 말했던 '샌드위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아마도 그날 내 모든 행동에 그것이 묻어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일흔의 대가도 겸손하게 웍을 흔드시는데, 십수 년 차 온라인 게임인인 내가 마우스 하나 딸깍거리면서 '어디 감히 팀장한테…' 하고 속으로 꽁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초보 팀장이었던 나는 위에서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아래에서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위에서는 '말 안 듣는 부하 직원'이 되었고, 아래에서는 '무리한 목표를 가져와 압박하는 팀장'이 되어 있었다.


팀장은 참 이상한 자리였다. 위에서는 왜 이것밖에 못 하느냐는 말을 듣고, 아래에서는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을 시키느냐는 말을 듣는다. 어느 한쪽의 마음을 얻으려는 순간, 다른 한쪽에서는 나쁜 사람이 된다. 직급이 올라간다는 것은 월급만 올라가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기꺼이 '악역'이 되어야 하는 순간도 함께 늘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늘 좋은 상사를 꿈꿨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점점 올라가다 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꼰대가 되었고, 누군가에게 무능한 상사가 되었고,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팀장의 월급에는 '욕먹는 값'과 '빌런 연기 수당'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악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내 지위를 이용해 타인을 상처 입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능력'이 아니라, 미움받을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정말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태도도 필요할 것이다.




진짜 어른은 자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다시 후덕죽 셰프님을 떠올린다. 그는 평소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아랫사람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대가가 보여준 품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의 편의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시간이 쌓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가면 세월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높은 곳에 올라갔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까지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리가 높아질수록 더 아래를 잘 살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팀장이었던 시절, 내가 꽤 괜찮은 상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원이 되고 나서야, 내가 보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되었다. 아마 좋은 리더가 되는 일은 '나는 좋은 상사야'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멀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리가 주는 권위보다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정도면 괜찮은 상사 아닌가?'라고 쉽게 믿지 않는 사람.

훗날 다시 누군가를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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