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엄마였던 내가 도움받는 법을 배우기까지
믿음을 바꾼 건 단단한 결심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짧은 친절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에 서툰 사람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색했고, 부탁이라는 행위 자체가 낯설었다. 나는 성인이 된 후 오랫동안 혼자 살았고 많은 것들을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집 계약도 이사도,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해내는 것이 당연했다.
회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가 싫어서 회사를 다니며 코딩을 독학했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출근 전 학원을 다니면서 채웠다. 주변에서는 종종 나를 보고 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정말 독한 사람일까. 아니면 도움을 청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일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보다 혼자 고생하는 쪽을 더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바뀌기 시작한 건 엄마가 되고 나서였다.
엄마가 되고, 처음으로 무너졌다
아이가 돌도 되기 전, 유튜브에서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영상을 봤다.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망설임 없이 여행을 예약했다. 공기 좋은 리조트에서 물놀이와 산바카라. 아직 이유식과 분유를 번갈아 먹는 아기였지만,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준비했고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물놀이를 마치고 목욕을 하는 순간, 멘붕이 왔다.
생각보다 미끄러운 바닥.
몸에 붙어 잘 벗겨지지 않는 래시가드.
낯선 상황에 두려운 눈으로 나를 꼭 잡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
빨갛게 익어버린 내 얼굴 위로 땀인지 물인지 모를 물줄기가 주룩주룩 흘렀다.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도 몰랐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5~6살 정도 돼 보이는 딸아이가 있는 내 또래 엄마였다.
"제가 옆에서 아이 봐드릴게요. 먼저 씻으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아이 옆에서 잡고 있을게요.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하셔도 괜찮아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회사생활 10여 년을 하며 욕을 먹고 수모를 당해도, 입술 꽉 깨물고 피맛이 날지언정 눈물 한 방울 글썽하지 않았던 내가. 내 눈이 자동으로 수도꼭지를 틀어댔다.
아마도 내 당황함과 어쩔 줄 몰라하는 몸짓을 그녀는 알아챘고, 부탁을 할 생각도 못할 상태라는 것을 먼저 알아챈 듯했다. 이름도 모르는 그녀 덕분에 나는 빠르게 씻고 다시 아이를 건네받았다. 함께 아이를 씻기며, 눈물인지 수돗물인지 흐려진 눈을 하고 고맙다는 말만 연발했다. 너무 고마워 음료라도 사고 싶었는데, 그녀는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고마움은 오래 남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이 생각만큼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곤란해 보이는 아기 엄마를 보면 먼저 말을 건다. 유모차가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문을 잡아주고, 마트에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지 못해 진땀을 빼고 있는 엄마에게 뽀로로 비타민C를 건넨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도움을 달라는 말도 서툴던 예전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예전의 나는 혼자서 모든 걸 해내는 것만이 강함이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고, 기대지 않고, 도움을 받지 않는 것. 그것이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내야 하는 독립적인 삶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깨달았다. 기대는 것도, 도와주는 것도 강함이라는 것을.
아이가 왔다고 말없이 김을 내어주시는 식당 사장님.
아이에게 슬며시 사탕이나 풍선을 건네주는 이웃.
유모차를 탄 아이를 보며 미소를 보내는 어른들.
아이의 느린 걸음을 위해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묵묵히 눌러주는 사람들.
나는 혼자 버티며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의 호의 위를 걸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목욕탕에서 나를 도와준 사람의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건넨 친절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친절을 건네고 있었다. 그렇게 내 모난 마음도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다.
돌아보면 나를 바꾼 건 단단한 결심이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짧은 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