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기준은 내 마음이었다

질투는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춘다

by비타민W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질투도 그중 하나였다.

나와 남편은 최저시급이 3천 원대이던 시절에 만났다. 그때 그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내게 15만 원짜리 가방을 선물해 줬다. 그 가방에는 43시간을 일하며 흘린 땀과 나를 웃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10년이 지나 그는 이제 200만 원짜리 가방을 선물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기념일을 맞아 아웃렛에서 내 인생 첫 명품 브랜드 가방을 선물해 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에 놓인 가방을 힐끗거리며 우리는 10년 전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그는 그때 가방값을 결제하며 티 안 내려 애썼지만, 사실은 손이 덜덜 떨렸다고 말했다.


비싼 가방을 갖게 된 것이 기뻤던 게 아니었다. 우리가 얼마나 애쓰며 여기까지 왔는지, 함께 겪은 시간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아서였다.




내 기쁨은 가방이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 새 가방을 들고 출근하자 동료 A가 금세 눈치챘다.


"가방 샀구나?"


신이 난 나는 들뜬 마음을 숨길 생각도 없이 말했다.


"응, 남자친구가 아웃렛 가서 사줬어. 다른 색도 있었는데 검정이 제일 무난한 것 같아서 이걸로 골랐어."

"좋겠다! 어울려!"

"고마워!!"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고, 그렇게 대화는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뒤, 같은 팀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A님이랑 친해요?"

"뭐 자리가 가까우니까 자주 얘기해요."

"저는 A님이랑 너무 가깝게 안 지냈으면 좋겠어요.

다른 팀 사람이 그러는데...

얼마 하지도 않는 아웃렛에서 산 이월상품 가방 가지고, 남자친구가 사줬다고 그렇게 자랑을 해댔다고 했대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들떴었나. 상대방 기분이 상할 정도였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기뻤던 건 브랜드도, 가격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던 두 사람이 함께 버텨온 10년이 담긴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내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자랑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은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앞에서는 함께 웃어주던 사람이 뒤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




같은 일을 이번에는 내가 했다

몇 해가 지나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SNS를 보다가 친구의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앞니 하나가 빠진 아이가 엄마를 향해 활짝 웃으며 달려오는 영상이었다. 하트를 누르려던 순간, 나의 시선이 아이 옷에 멈췄다.


100만 원이 넘는 명품 브랜드의 코트.

30만 원이 넘는 티셔츠.

순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아이는 금방 크는데…'

'매년 새로 사야 하는 옷인데 왜 전부 명품을 살까.'

'그리고 왜 굳이 SNS에 올려서 내가 이렇게 여유 있다는 걸 자랑하는 거야?'


그 순간 나는 내 못난 마음과 마주했다. 친구는 그저 아이의 첫 유치가 빠진 날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우리 아이 옷은 명품이에요.' 그런 말을 한 적도, 자랑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 옷이 명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게시물을 '자랑'으로 해석하고 비난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순간 예전 온라인 게임 동료 A가 떠올랐다. 그때도 가방은 내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던 두 사람이 함께 버텨온 10년의 시간, 그것이 내 기쁨이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 옷을 자랑한 게 아니라, 앞니 하나 빠진 아이가 엄마를 향해 웃으며 달려오는 그 사랑스러운 순간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문제는 상대가 아니었다. 나였다. 나는 친구의 행복보다 명품을 먼저 봤고, 그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어쩌면 내가 부러웠던 건 명품이 아니라 친구가 가진 경제적 여유였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날의 나는 그저 마음이 조금 메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질투는 이야기를 만든다

SNS에서, 온라인 게임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행복을 '자랑'으로 해석한다. 반대로 이유 없이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한다.


예쁘다는 이유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기부를 했다는 이유로.


그 감정은 금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쟤는 원래 자랑하는 애야."

"유난이야."

"있는 척하는 거야."


사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질투는 언제나 자기 마음을 납득시킬 이유를 찾아낸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 낸 이야기가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상대가 살아온 시간도, 애써온 노력도 그대로이고, 내 마음 역시 그대로 남는다.




질투의 기준은 결국 내 마음이었다

"부럽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릴 이유가 없다. 인정하지 않을수록 가장 먼저 구겨지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가 부러우면 예전보다 조금 더 오래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부러움을 인정하니, 불편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때 그 동료 A도, 명품 코트를 입힌 친구를 보며 삐딱해졌던 날의 나도, 어쩌면 그저 각자의 마음이 조금 고단하고 메말라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행복을 온전히 축복해주지 못할 만큼, 내 마음의 자리가 좁아져 있었던 것뿐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빛나는 순간을 볼 때, 그 겉모습 너머에 있을 그만의 애씀과 사랑을 가만히 응시하려 한다. 그리고 부러움이 밀려올 땐, 조용히 내 마음에 영양제 한 알을 건넨다.


"나 부럽구나. 질투구나. 그래, 잘 왔다 가."


남을 깎아내려 얻는 가짜 안도감보다, 인정하고 휘발시켰을 때 마음의 평온함을 훨씬 더 빠르고 깊게 맞이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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