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지연

by명희진

글을 쓰다 보면 이야기가 내가 처음에 의도한 바와는 무척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오랫동안 생각하던 단편을 얼마 전에 퇴고했다. 보내고 싶은 곳이 있어 열심히 했는데, 쓰고 보니 분량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 단편을 쓰며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를 예상치 못하게 넣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하지만 한때는 무척 좋아했던, 누군가와의 한 조각을 조금 넣게 됐다.

그 장면에서, 그 일을 쓰는 나를 보고- 사실 조금 많이 넣었다- 나도 놀랐지만, 그이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우리가 글을 쓰는 한, 언젠가 한 번은 각자에 관해 쓸 거라는 걸.

그리고 그이는 이미 나와의 일을 자기 글에 썼으니, 이번엔 내가 좀 써도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 본다.


퇴고 한 단편은 분량을 줄이면 의도한 부분이 달라져, 지금은 줄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는 고칠 게 없다고 생각했던, 단편 하나를 꺼내 읽었다. 이 소설이 분량이 그나마 적어, 적은 분량을 맞추기 비교적 쉬울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웬걸.... 다시 읽으니, 단점이 너무 많이 보였다.

처음 읽으며 어색하거나 억지 거나 그냥 싫거나 꼴도 보기 싫은 것들을 걸러내니 85 매였던 소설이 56매가 됐다. 이건 또 너무 짧았다.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삼일 동안 새벽에 잤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온 걸까... 마지막 삼 일째에는 아침에 잤다. 아이의 생일이어서 미역국을 끓여야 했고 케이크를 만들고 갈비를 만들었다. 아침상으로 내놓으니 아이는 좋아하면서도 배가 불러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아침에는 원래 조금 먹잖아."

아이는 눈치를 보며 소심했다. 그리고 나는 머리가 아팠다. 어깨도 아프고 속도 메슥거리고 아이에게 최고의 아홉 살 생일날을 선물로 주고 싶었는데, 나는 소설을 쓰느라 시기를 놓쳤다. 제누아즈는 망했고 시간이 없어 망한 제누아즈에 생크림과 딸기를 얹었다. 초를 꽂고 불을 붙여 빚을 갚듯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다. 케이크를 살 수도 있었지만 아이는 내가 만든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 글을 쓰지 않을 때 나는, 그러니까 별게 없을 때의 나는, 케이크도 제법 잘 만든다.

아이가 기뻐했지만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아이보다 먼저인 게 없다고 믿었지만, 나보다 더 사랑한다 믿지만 정작, 소설 앞에 아이는 항상 뒤로 밀린다.



[나의 친애하는 폴란드 가족]을 연재하려, 그러니까 소설을 써보려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하지만 이내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연재는 약속을 잘 지키고 싶었는데, 그건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으니까.


단편 두 편을 연달아 퇴고하고 아직 거기에 빠져있다. 여기서 나오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몇 권의 바카라을 읽고, 다른 분위기로 아마도 이번 주 언제쯤 연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친애하는 폴란드 가족]은 멤버십을 신청해야 전체를 볼 수 있게 했다.

아직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체를 공개하는 게, 무척 부담됐다.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 형태로 만들어볼 예정이다.

누군가 멤버십을 신청하면 엄청난 부담이 될 것도 같다.

그러니 어쩌면, 이 연재는 나를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전 04화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