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by명희진

아가가 친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구급대원이 다녀간 후였다. 레나는 아가가 전에 쓰던 방에 있었다. 그 방에서는 마렉의 다리가 보였다. 아가는 결혼하기 전까지 그 방에서 지냈다. 방은 연노랑 색이었다. 아가가 직접 페인트를 칠한 거였다. 가족들에게 받은 여행 기념품이 장식장에 그대로 있었다. 마치 그녀가 여전히 거기 지내는 듯이. 칠이 벗겨진 바카라상과 옷장, 장식장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1 센티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였다. 레나는 아가가 여전히 그 방에서 지내는 것처럼 방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건 라파엘의 방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낡아 틀 수도 없는 오래된 전축과 오디오 세트까지 그녀는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지하 창고에는 아이들이 쓰던 장난감과 옷가지들도 그대로 있었다. 레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았다. 그것들이 언젠가 쓰일 거라고 믿진 않았지만, 손때와 추억이 묻은 물건을 누군가에게 기부하거나 버리는 게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수스."

레나와 바닥에 누운 마렉을 보고 아가가 외쳤다. 레나를 품에 안고 마렉을 내려다봤다. 어제까지도 마렉은 건강해 보였다. 아가는 휴가를 가기 전에 푸샤(햄스터)를 맡기러 친정에 왔었다. 남편인 얀과 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언제나처럼 휴가비를 넉넉히 챙겨갔다. 아가는 결혼 후에 알게 모르게 친정으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아가가 결혼한 후로 마렉과 레나는 식탁보하나 마음 편히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다. 레나는 꽤 오래전부터 식탁에 놓을 꽃을 사지 않았다. 손님용 그릇은 특별한 날에만 사용하니 괜찮았지만 실생활에 쓰는 컵이나 그릇은 이가 나가도 그대로 썼다. 아가에게 드는 비용이 그녀가 결혼하기 전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다. 결혼할 준비가 안 됐던 아가는 어느 날 결혼을 하겠다고 했고 마치 오래 기다린 일처럼 몇 달 만에 결혼식을 끝냈다. 집은 대출로 샀고 결혼식 비용은 대부분 부모인 마렉과 레나가 부담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첫째 아들을 임신했다. 아가가 결혼하기 몇 달 전에 레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레나는 얼마의 유산을 받았고 이내 그 돈을 딸의 결혼식과 출산 용품을 사는 데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나가 받은 유산은 사라지고 없었다. 레나는 그 돈을 어디다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많던 돈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뭔가 잘못된 걸 알았지만 돈은 이미 다 써버린 후였다.

"어떻게 된 일이야?"

레나는 울먹이며 아침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다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하다 보니 전화로 이미 다 말한 걸 알았지만 그래도 레나는 다시 조금씩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마쳤다. 다란이 마렉의 방에 들어가 이불을 가져와 영혼이 빠져나간 그의 몸 위에 덮었다.

"레나, 이럴 때 이런 말을 드리긴 그렇지만, 지금 은행을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은행?"

물기 젖은 눈으로 레나가 달란은 올려다봤다. 185센티미터의 장신인 달란은 풍채가 좋았다. 결혼을 하고 살이 올라 배만 육 독 도드라져 나와 있었다. 그 위로 언제나 메고 다니는 크로스백을 걸치고 있었다. 배 위에 가방이 얹혀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 배 위의 어린 아기처럼 가방이 그의 들숨과 날숨에 맞춰 움직였다. 레나는 언제나 그 가방이 그에게 너무 작아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서 그를 웃음거리로 만든 적은 없었다. 또 얼굴의 반을 덮은 수염은, 아이들이 보는 해리포터 영화에 해그리드를 닮아 험악스러워 보였지만 이 또한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레나는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었고 어지간히 우스운 문제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저런 놈과 결혼하자고 그 난릴 쳤나. 모자란 것.'

가끔 달란은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 또한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심지어 마렉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마렉에게 다란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말했다가 아가 가족의 지원이 끊기면 안 됐기 때문이다. 어른들이야 어른들이지만,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레나는 항상 마렉에게 손주들이 불쌍하다고 말해 그의 동정심을 자극했고 사위의 좋은 점만 끌어모아 마렉에게 말했다. 그 좋은 점을 찾는 게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레나는 달랄의 장점을 끌어모으며 그가 좋은 사람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아직 사망 선고 전이니 지금 은행에 가서 현금을 찾는 게 좋겠습니다."

레나는 알아듣지 못한 척 딴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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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씁니다. 기형도와 최승자를 좋아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한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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