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폴란드 가족을 시작하며

들어가는 말

by명희진

라파엘을 만난 건 2010년 여름이었다.

그의 가족을 만난 것도 반팔을 입던 따뜻한 계절이었는데,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의 이모부가 승용차를 끌고 카토비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던 것, 나를 보자마자 악수하듯 손을 내밀었고 내가 주춤하며 손을 내밀자,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내 손등에 키스를 했던 것 정도. 그때 이모부는 예술가들이 쓰는 뉴스보이 캡, 일명 빵모자 같은 걸 쓰고 계셨는데, 내게 인사를 하기 전 모자를 벗어 가슴께에 올렸다. 이내 그 자세로 허리를 숙여 내 손등에 키스했다. 나는 처음 받는 유럽식 키스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도움을 청하듯 라파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라파엘은 자연스럽게 이모부를 안으며 볼 키스를 하고 짐을 차에 실었다.


이모부와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암에 걸렸고 그 후로는 내내 집에서만 지냈다. 암 선고를 받고도 꽤 오래 투병 생활을 했지만 그를 다시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라파엘의 집에서 지내면서 본 폴란드는 무척 낯선 곳이었다. 당시까지 내겐 폴란드(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무지한 편견이 있었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폴란드 사람들은 내 편견 때문인지 조금은 어두워 보였다. 실제로 다른 유럽에 비해 폴란드 사람들은 낯선 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네덜란드는 모르는 사람과도 한동네에 살면 인사를 하는 편인데, 폴란드는 정말 딱 자기 빌라 사람들하고만 인사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거기 산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말이다.





라파엘 가족은 조용하고 또 폐쇄적이다. '새로움', '변화' 같은 단어들과는 거리가 멀다. 친구도 잘 사귀지 않는다. 어머님만 봐도 한 장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한 온라인 게임을 오랫동안 다녔는데도 오래 연락하며 만나는 친구가 없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똘똘 뭉쳐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가족 간에도 초대하고 초대받아, 약속 시간을 정하고 만남을 이어간다.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만, 언제부턴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 텐가.

여동생이 결혼하면서는 이 '초대'라는 단어가 나를 미치게 한 적도 있었다. 뭐 속된 말로 그렇다는 거다. 나는 그 후로 '초대하지 않고 만나기'를 실행하는 중이지만...


그래서 초반에는 이런 다름으로 라파엘과 자주 다투기도 했다. 그에겐 우리 가족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이유 없이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그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테니까.

"어떻게 초대도 없이 우리 집으로 들이닥칠 수가 있어!"

우리가 한국에서 일 년을 살 때, 라파엘이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이었다. 가족을 '초대'해야지만 만날 수 있다는 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훗날 나는 이 '초대'라는 명사에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함부로 누구도 '초대'하면 안 된 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물론, 우리 가족은 예외다. 난 한국인이니까. 무슨 가족끼리 초대라는 번거로운 단어를 사용하는지. 매일 봐도 또 보고 싶은데...





이 연재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은 그게 가장 큰 걱정이다.

시댁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


오래전부터 시댁에 관련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였으니 이미 십 년도 더 됐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내내 망설였다. 구체적이지 않은 희미한 이미지를 내내 쫓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가 되진 못했다. 그 이야기는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에서 시작하기도 했고 러시아의 수용소에서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방대해 내가 이 이야기를 과연 완성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상실은 내 생각보다 컸다. 나는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쓰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고 하는 쪽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어떤 부분은 조금은 소설 같을 수도 있겠다. 과장이 섞이고 거짓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거 아닌가. 나란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는가. 이 이야기는 소설과 산문 그 중간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나만 알고 싶다. 어떤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부끄러울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되도록 솔직히 쓰고 싶다. 그러고나면 나에게도 솔직해질 용기가 생길것도 같다.


지금 바라는 게 있다면 '나의 친애하는 폴란드 가족'들이 이 이야기를 영원히 읽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