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렉 1

by명희진

마렉이 자신의 집 전용 화장실에서 쓰러졌을 때, 우리는 루이가 신을 양말을 고르고 있었다. 점점 자기 취향이 확고해지는 아홉 살 아들의 양말을 고르는 일은 오십이 가까워지는 늦깎이 부모에게 그리 유쾌하고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두께가 두껍다거나 디자인이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양말통을 뒤집는 아들을 윽박질러 양말을 신겨 학교에 보내는 것도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양말쯤이야.


사십 도가 넘는 이상 기온이 유럽에 기승을 부리던 그때, 몇 년만 지나면 오십이 되는 우리는 아웃렛 폴로 키즈 매장에서 아들 녀석의 양말과 속옷을 고르고 있었다. 속옷도 조금만 몸에 끼면 입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라 우리는 이 일에 매우 신중했다. 소재와 고무줄의 탄력 같은 것에 말이다.


"이 정도 두께면 뭐라고 하진 않겠지?"

"아침에 양말도 이 정도 두께였는데, 두껍다고 벗어두고 갔어."

"정말?"

"응. 양말이 양말이지, 두께 때문에 안 신겠다는 녀석은 처음이라니까."

"그전에 비교 대상은 있고?"

내가 막 그의 말에 허점을 찔렀을 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여동생인 아가였다.

"아가네?"

내가 그녀를 만난 이후 내내 나는 그녀를 애칭으로 불렀다.

"그러게. 무슨 일이지?"

평일 오전, 그것도 이제 막 한 주를 시작한 월요일에 아가가 라파엘에게 전화한 적은 없었다.


그가 매장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는 동안, 나는 양말을 손으로 집고 문질러 가며 아이가 원하는 적당한 두께를 찾고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수화기를 볼에 잔뜩 붙이고 초조한 듯 매장 앞을 서성였다.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주로 듣는 것 같았다. 얼마나 더운지 그의 주변으로 이글대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게 눈에 보일정도였다. 나는 그에게 시원한 곳으로 들어와 전화를 받으라고 손짓했다. 그는 나를 힐끗 보고는 허공을 보며 통화를 이어갔다.


속옷과 양말은 매장 입구 쪽에 있었고 그래서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대부분 부인들이 대체로 그렇듯 나도 시누이에게 아주 좋은 감정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얼굴을 보면 안고 볼키스를 하지만 십 년이 넘는 결혼 생활동안 우리에게도 밤을 새워야만 들을 수 있는 사연이 있었다.

내 약혼반지를 고른 게 시누라는 것과 약혼반지의 다이아가 작은 것도 시누의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게 반감의 큰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큰 다이아를 할 필요가 없다고 오빠를 설득한 시누는 막상 자신이 결혼할 때는 백 미터에서도 반짝이는 다이아가 여럿 박힌 걸로 약혼반지를 골랐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커다란 반지를 내밀며 그녀가 환하가 웃던 게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때 느낀 배신감이란.


무엇보다 아가에 대한 내 반감이 커진 건, 반지를 산 후에 적립금을 자기 이름으로 받아 자신의 보석을 하나 더 샀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반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지 모른다. 그건 그냥 시누가 내게 보인 성격의 일부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가를 보며 그 캐릭터가 실제 존재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위대한 개츠비] 영화를 보면 데이지가 개츠비의 집 이 층에서 리넨 셔츠를 날리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데이지가 황홀경에 빠져 눈물을 흘렸던 것 같은데-정확하지는 않다- 나는 이 모습이 내 시누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가를 보며 데이지 캐릭터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았는데, 이제는 아가가 데이지보다 더 나아갈 수 있는 캐릭터임을 알게 됐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는 머리가 아픈 여자, 문제를 피하기 위해 가벼운 소잿거리로 시선을 돌릴 줄 아는 여자, 세상의 모든 문제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 앞에서 한 없이 순수해질 수 있는 여자 말이다.


'당신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어요.'라고 세상 모두에게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며 욕망대로 움직이는 무바카라임하고 무심한 캐릭터. 그게 내가 이해하는 아가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가에게는 데이지처럼 부자인 남편도, 그녀를 열렬히 사랑해 졸부가 돼 나타나 나의 죄를 대신 뒤집어써줄 개츠비도 없다. 차라리 아가가 부자인 남편을 만났다면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불쌍한 아가는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몰랐던 것처럼 어떤 남자를 만나야 행복한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야?"

아가와 라파엘은 주로 어머니를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데 시누가 전화를 했다는 건,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나쁜 징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라파엘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일단 그를 안았다. 어쩌다가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일단 골라 놓은 아이의 속옷과 양말을 계산하고 아웃렛을 떠났다.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이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장례를 이번 주 안으로 하고 싶대."

"그렇게 빨리?"

그는 말이 없었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는데 실감이 안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아침까지도 마렉과 전화로 안부인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날에도 페이스 톡으로 인사를 나눴고 건강은 어떤지 같은 소소한 대화를 나눈후였다.

"어머니는?"

"... 모르겠어."

루이는 아직 학기 중이었다. 이 주만 지나면 방학이니까 오일 정도 장례를 미루자고 했다. 학교에 알아보니 아이가 조부모의 장례로 결석할 수 있는 기간이 오 일이었다.

"아가가 휴가를 가야 한대."

"휴가? 지금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휴가를 간다고?"

"나도 잘 모르겠어. 되도록 빨리 장례를 치르자는데?"


시할머니의 장례 때도 열흘이 지나 장례를 치렀던 적이 있었기에 나는 이번에도 조금만 미루면 루이가 방학을 하고 폴란드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폴란드에서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오는 수고 없이 아이의 방학 동안 시댁에 머물며 여러 행정적인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가는 완강했다. 휴가 일정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휴가를 어디로 가는데?"

"보보바."

"보보바? 거기가 어딘데?"

"시댁일걸."

아가의 시부모는 학교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은퇴 후에 보보바로 가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아가 가족은 휴가나 방학이면 보보바에서 시간을 보냈다. 보보바라면 글리비체에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미국이라도 가는 줄 알겠어."

라파엘의 신경을 긁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상황을 비꼬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무신경한 시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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