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넷의 생초보, Hello World

"갑자기 개발을 한다고?"

byGiagraphy
3부. 남들의 세 번째 질문. 그런데 개발자가 됐다고?


"나 6개월은 놀 거니까 잔소리하지 마."

귀국하자마자 엄마에게 선언했다.


2020년 7월 1일. PCR 검사로 수없이 코를 쑤시던 파란만장한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는 한국에서 시작됐다. 6년을 일했으니 6개월 정도는 쉬어야겠다는 보상심리였다. 백수 생활비로 쓸 용돈도 매달 200씩 미리 떼어두었다.


정말로, 놀기만 할 작정이다.


2주간의 격리가 끝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탈색이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외모 관리 규정이 빡빡했다. 두 번의 탈색을 거쳐 내 머리는 파스텔 핑크로 변신했다. 누드톤만 바르던 손톱에도 화려한 네일아트를 받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자주 보지 못했던 오랜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해외를 떠도느라 가보지 못한 국내 여행지들을 다녔다. 동네 모임에 들어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3개월이 지나도 백수 생활은 전혀 질리지 않았다.


불안한 건 내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었다.

"이제 슬슬 취업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언제까지 놀게?"

하나둘 묻기 시작했다.


사실 백수 기간에도 나름의 목표는 있었다. 이제 뭘 해서 먹고살지, 다음 직업을 찾는 것.

솔직히 백업 플랜은 많았다. 이미 잘하는 중국어나 영어를 살려도 되고, 승무원 경험을 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 끌리거나 재밌어 보이는 건 없었다. 그 안에 나를 한정 짓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밍기적거리며 누워 있으면서도,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했는지 머릿속을 뒤적거렸다. 몸은 마냥 놀고 있어도 머리는 치열하게 나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생각은 대체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고, 그러다 보면 까마득한 10대 시절까지 닿곤 했다.


내가 찾는 것은 간단했다. 살면서 잘했던 것 중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꼈던 것.


그러다 반짝한 건, 중학교 수행평가였다.

나모 웹에디터로 홈페이지를 만드는 과제였는데, 나름대로 공바카라 모양의 디자인을 기획하며 꽤나 즐거웠다. 비 내리는 하트라든지, 마우스 커서를 따라다니는 고양이, 눈이 아플 정도로 깜빡이는 글자들.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소스 중에 내 홈페이지에선 뭘 보여줄지 고르고 또 골랐다. 당시엔 화려하기 그지없는 효과들이 수두룩해야 잘 만든 홈페이지였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286 컴퓨터부터 접했던 나는 남들보다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게 익숙한 아이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타자 빨리 치기 대회나 정보 검색 대회에서 곧잘 입상하곤 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또래 여자 친구에 비해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었다.


어라, 이쪽일까?


안 그래도 요즘 IT가 뜬다던데.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내게 IT 업계의 다양한 직업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결국 어린 시절의 특기를 살려 검색에 돌입했고, 최종 후보로 데이터 분석과 프론트엔드 개발을 올렸다.


마침 동네 모임에 앱 기획을 하는 동생이 있어 조언을 구했다. 동생은 데이터 분석이 비교적 혼자 파고드는 일이라면, 사람들이 직접 보고 누르는 화면을 만드는 프론트엔드 개발은 여러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에는 프론트엔드가 더 잘 맞을 거라고. 취업 면에서도 데이터 분석은 고학력 전공자를 선호한다고 했다.


그렇게 백수 5개월 차, 국비지원 학원의 프론트엔드 개발자 양성 과정에 등록했다. 6개월은 놀겠다던 선언보다 한 달 이른 출발이었다.


"갑자기 개발을 한다고?"


같이 한국으로 돌아온 승무원 동기들은 깜짝 놀랐다. 다른 항공사 승무원, 영어유치원 교사, 해외 마케팅 겸 의전, 사업까지. 다들 승무원 경력을 발판 삼아 이미 저마다의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왜 쉬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냐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말들이 눈빛에 다 담겨 있었다.


"우리 내년이면 이제 서른넷이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5개월째 놀고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니 놀랄 만도 하지. 새로 무언가를 배워 쌩신입으로 바닥부터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고들 했다.


엄마는 이렇게 물었다.

"그거 컴퓨터 전공한 애들만 하는 거 아니야? 네가 할 수 있는 거야?"


승무원 출신 비전공 개발자.

생뚱맞지만, 그 타이틀에 나는 꽤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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