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입니다.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는 구절은 많은 해석과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마지막 문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알(아이들)을 안심시키려는 엄마의 마지막 노력입니다.
간장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고통 속에서도, 꽃게는 새끼들이 느낄 불안감과 공포를 최소화하려 합니다.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는 일상에서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평범하고 다정한 인사말이죠.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평범함이 더욱 비극적이고 숭고하기까지 느껴지네요.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숨긴 채 아이들에게
평온한 잠을 선물하려 합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는 자식을 향한
깊은 사랑과 희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동시에 이 말에는 자신의 죽음과 아이들의 운명까지도 담담히 받아들이는 꽃게의 체념과 순응이 배어 있습니다.
단순히 잠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간장게장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질 운명을 수용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읽힙니다.
체념을 넘어 고통스럽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품어내는 담담하고 의연한 자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불확실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도
아침이 오면
어제처럼 일어나
변함없이 일을 하러 나갑니다.
달라진 옷깃의 온도에 어깨를 움추리고
버스에 오르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마칩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면서도
희망을 걸고 하루를 버팁니다.
그 모습이 현실에 순응하는 어미게처럼 보입니다.
굴종하는 순응이 아니라,
그저 오늘을 묵묵히 살아내는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보입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에도
삶은 계속 되어야 하고,
우리는 그 삶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하며 오늘을 버팁니다.
어미 꽃게가 마지막 순간까지
알을 품고서 아이를 안심시키려는듯이.
버틴다는 것은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여건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 어미게의 말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숭고한 위로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