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친척 아이들을 만나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삶은 어찌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 걸까.’
삶은 계절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는 어린 생명을 바라보며 그 시간을 실감한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자라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파트에 처음 입주했을 때부터 우리 층에는 세 가구가 그대로 살고 있다.
그중 3호에는 미혼의 선한 눈매를 가진 총각이 살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회사에서 만든 케이크라며 쑥스러운 듯 건네주었고, 설날에는 우리 집에서 만든 손만두를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별일 없이 이웃으로 여섯 해를 지냈다.
시멘트 건물이란 차가운 냉기의 살림살이에도 봄은 오고 꽃이 피고 단풍이 물들어가듯 인간사도 변화가 온다.
어느 해부터인가 그가 아기를 안고 엘베 앞에 서있다. 그새 결혼을 하고 어린 아기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가족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벅차오름은 뭘까 싶다.
‘세월이 빠르구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인생이 눈앞에서 흘러감이 보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집 딸 애를 만나면 나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빠 품에 안겨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내가 웃어주고, 똑같이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아도 인형처럼 가만히 쳐다만 보는 거다.
한참 동안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도 않는다.
‘얘는 왜 나를 이렇게 빤히 보는 걸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막연한 궁금증을 벗어 보고자 지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이것은 누구나 가끔씩 겪는 일이란다.
낯선 아기가 유독 나만 빤히 쳐다본다면 이건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아기는 나의 표정과 눈빛, 목소리 같은 작은 단서들을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기의 뇌는 그 짧은 순간에 이미 판단을 끝낸다.
"좋다."
"안전하다."
"더 보고 싶다."
아직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기도 세상을 알아가며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찾아간다. 그 짧은 눈 맞춤 속에 어떤 호기심이 담겨 있었을까?
아기는 체면을 차리지도, 예의상 웃어주지도 않는다. 오직 느껴지는 대로 반응한다.
그래서 아기의 시선은 한 사람에 대한 가장 솔직한 평가이기도 하다.
발달심리학과 뇌과학은 오래전부터 이 작은 눈이 무엇을 보는지 연구해 왔다.
아기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람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밝혀냈다.
그 이유가 자그마치 일곱 가지나 된단다.
이걸 보고 나니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기들이 왜 나를 봤는지!
혹은 왜 누구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울음보부터 터지는지 말이다.
첫 번째, 표정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아기의 시야는 아직 어른처럼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표정의 변화가 있는 얼굴은 아기에게 더 눈에 잘 들어오는 정보가 된다. 무표정한 얼굴보다 눈빛과 표정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얼굴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두 번째, 조화로운 얼굴이다.
언젠가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염소와 개, 아기들에게 여러 종류의 사람을 앞에 두고 누구에게 다가가는지 실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예쁜 여자에게 가장 많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젊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람들의 판단과 달랐다.
동물과 아기는 얼굴의 전체적인 형태와 균형을 살핀다고 한다. 눈, 코, 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얼굴처럼 뇌가 처리하기 편한 시각적 특징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뻐서가 아니라 눈이 편해서란다.
그것도 모르고 살짝 ‘내가 괜찮은가!’ 하며 괜히 으쓱했었다. 내가 흐뭇했던 그 순간에도 아기는 내 얼굴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 번째, 눈을 맞춰주는 사람이다.
눈 맞춤은 아기와 어른 사이의 첫 번째 언어라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을 마주 보는 순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는 그 눈 맞춤을 통해 상대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살핀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기의 맑은 눈은 사람의 표정과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선의와 우호, 따뜻함을 읽어내고 있었다. 아기는 말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 번째, 목소리가 부드러운 사람이다.
아기는 말의 뜻을 이해하기보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리듬, 부드러운 결을 먼저 느낀다. 따뜻하고 편안한 목소리는 아기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다섯 번째, 분위기가 안정된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긴장하지 않고 평온한 사람 곁에서는 아기도 조금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감정은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섯 번째, 아기의 신호를 읽고 기다려주는 사람이다.
아기가 바라보면 함께 바라보고, 웃으면 웃어주고, 고개를 돌리면 잠시 기다려주는 것. 아기의 작은 반응을 알아차리고 그 리듬에 맞춰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에게 아기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일곱 번째,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정한 사람이다.
아기는 생각보다 주변을 많이 살핀다. 자신에게만 잘해주는지보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게 된다.
자신에게만 잘해주는지보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게 된다. 따뜻한 말투와 부드러운 표정, 다른 사람을 대하는 편안한 태도는 아기에게도 좋은 신호가 될 수 있다.
아기가 나만 보는 게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평가가 아닌 보는 이의 온화함과 진심 어린 배려심을 알아보는 선물이었다.
짧은 눈 맞춤이었지만, 그 안에서 서로의 마음이 오갔던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고맙고 신기하다.
말도 못 하는 아기가 내게 먼저 따뜻한 마음을 건네준 셈이니까.
그동안 아기들이 왜 나를 그렇게 빤히 바라보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혹시 나는 표정이 좀 살아 있었던 걸까.
눈을 잘 맞춰주었던 걸까.
아니면 목소리가 생각보다 부드러웠던 걸까.
여러분도 낯선 아기와 눈이 마주친 적 있으신가요?
그때 아기에게 웃어주셨나요?
모른 척 고개를 돌리셨나요?
대화는 꼭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말 한마디 없이도 온화하게 눈을 마주 보고 웃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오갈 수 있으니까요.
♧ 참고자료
· Meltzoff & Moore (1977) 신생아의 표정 모방
· Langlois 외 (1987) 아기도 균형 잡힌 얼굴을 더 오래 본다
· Farroni 외 (2002) 신생아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알아본다
· Fernald (1985) 아기는 높고 부드러운 말투를 더 좋아한다
· Tronick 외 (1978) 무표정 실험 (Still Face Experiment)
· Hamlin, Wynn & Bloom (2007) 아기는 도와주는 쪽을 고른다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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