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진 것을 창밖에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걸 보고 알았다.
소천하신 어머니와 영영 이별한 뒤부터 계절의 변화가 조금 느리게 느껴진다.
더우면 얇은 옷을 꺼내 입고, 추우면 긴 옷을 꺼내 입는다.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옷을 바꿔 입으며 빈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다.
허전함을 따스한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을까! 겨울살이에 필요한 3리터짜리 텀블러 하나를 샀다.
아침에 주전자에 물을 끓여 담아두면 하루 종일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텀블러 하나가 가스레인지와 티포트 등 몇 가지 역할을 대신해 주니 기특하기까지 하다.
나는 단순한 살림살이가 좋아졌다.
우리 집 주방 살림이 그리 다양하거나 많지 않은 것도 이사 전후로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해서기도 하지만, 살아보니 생활하는데 그리 많은 도구가 필요 없다는 걸 나이란 숫자가 알려주더라.
식기 홈세트도 아직 다 쓰지 못해서, 커피잔, 유리잔 세트와 함께 아파트 커뮤니티에 무료 나눔으로 보내고, 자주 쓰고 아끼는 것만 남겼다.
가전도 기능이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골라 오랫동안 쓰고 있다.
부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고칠 수 없을 때까지 쓰다가 버리는 게 효율적이다. 오히려 예전 가전이 여러모로 쓰는 이를 배려한 꼼꼼함이 더 많았다.
이십여 년을 살던 집을 떠나 이사하게 되니 정리라는 걸 강제로 하게 되더라.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새집까지 끌고 가기는 싫은 물건들이 자꾸만 보였다.
결국 동네 중고물품 사장님을 집으로 불렀다. 쓸 만한 것들을 중고로 팔아볼 요량으로 견적을 받아보려 한 것이다. 물건을 하나씩 꺼내놓다 보니 거실 한가득이었다.
에어컨, 턴테이블, 앰프, DVD, 온풍기 같은 가전은 물론이고 결혼할 때 선물 받은 커다란 액자와 거울까지 나왔다.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잊고 있던 물건들이 구석구석에서 잘도 숨어 있다가 나타났다.
어디에 이 많은 것들이 꼭꼭 숨어 기척도 없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놀랍기도 하고 불가사의했다. 이제 보니 긴 세월 속에 우리 집은 커다란 화수분이 되어 있었다.
살 때는 발품을 팔고 기대하며 이것저것 따져보고 어렵게 산 것들이다. 그런데 세월의 숫자만큼 물건의 개수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었다.
수십 개의 그림 액자와 인테리어 소품은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고속터미널 상가며 이태원을 돌아다니며 샀던 추억들이다.
그때는 하나하나 고를 때마다 감탄과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새끼손톱만큼의 설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새집으로 데리고 가지 못하면, 이제는 버릴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소 액자들은 결정이 어려워 팔지도, 버리지 않고 보류하기로 했다. 언젠가 어느 벽에 걸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할 날을 위해, 잠시 유보해 둔 셈이다.
결국 대다수는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거저 주었다. 심지어 버리려면 폐기물 스티커까지 사야 한다고, 중고물품 사장은 거저 가져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며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다 피 같은 소중한 돈덩이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 돈은 잃었지만, 값진 수업 하나를 얻었다.
이사 후에도 우리 집에는 공구 상점이 있고, 낚시가게가 있으며, 문구점까지 생겼다.
공구나 낚시용품은 수년째 자리만 차지한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이 많은 물건의 주인님은 맥시멀리스트인 남편이다.
나는 잔소리를 싫어한다.
듣기도 싫고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삶에 간섭하는 게 싫기에 처음부터 남편에게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내 잔소리의 부재가 남편의 물건을 늘린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남편도 나도 그때는 그게 필요했을 거라고 믿었을 거다. 돈을 낭비한다고 알았다면 처음부터 사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불필요한 물건들이 눈에 띄고 거슬리기 시작했다. 요즘 웬만한 공구는 관리 사무소에서 무료로 빌려준다.
언제인가, 갑자기 낚시라는 새 취미를 시작하면서 이 남자는 장비 욕심이 커졌다.
강이든 바다든 개울이든, 언제 어디서든 떠날 수 있도록 온갖 장비가 출발 5분 대기조처럼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낚시가게가 통째로 집으로 옮겨온 셈이다. 종류별로 없는 것이 없다. 팬트리 문을 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솔직히 낚시 가서 좋았던 건 수면을 잔잔히 바라봤던 정적의 시간이었고 내장을 덥혀주던 사발면과 커피였다.
지나고 보니 장비는 아무리 좋게 봐도 필요해서 산 소비라기보다 욕망이 불러들인 소비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남편의 취미는 어학 공부로 바뀌었다.
한때 뜨거웠던 낚시는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어갔고, 물건들은 오늘도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돌아올 애인을 기다리고 있다.
보통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물건을 버리고 삶을 간소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란다.
세계적인 미니멀리즘 운동을 이끄는 작가 조슈아 베커 (Joshua Becker)는
“버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다시 사지 않는 거예요.”라며
작고 간소한 삶으로 가는 정리의 원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단 그냥 둘 것.
종류별로 모아 장소를 옮길 것.
그다음 처분할 것.
그리고 비워둔 장소를 다시 채우지 말 것.
섣불리 마구 버리면 결국 다시 사게 되기 때문이다. 물건은 필요해서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욕망 때문에 사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일단 버리고 싶은 마음을 창고 안에 밀어 넣는다.
가족 한 사람의 가치관을 가족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 적어도 내 공간만큼은 내 가치관대로 유지한다.
주방과 침실은 그렇게 내 마음대로 정리해서 심플하게 만들었다. 청소하기도 쉽고, 정돈된 공간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까지 차분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알뜰주부도, 살림꾼도 아니다. 대단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개개인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 가운데 단출한 방식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나도 한때는 물건을 사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3, 40대는 욕망이 있어야 잘 산다.
어쩌면 욕망으로 부풀린 마음의 빈자리를, 지갑을 열어 채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넘쳐버린 소비가 오히려 절제와 간소한 삶으로 향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소비욕을 잠시 멈추고 참아보니, 내가 가진 것보다 내 삶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살다 보니 물건이 많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고, 그 물건이 다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었다.
사람마다 편안하게 느끼는 삶의 모양은 변한다.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삶의 방식이 보인다.
그렇게 채웠다 비웠다 하는 것이 인생살이인지도 모른다.
비우고 나면 또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어진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채울지 조금 더 신중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