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집밥은 다르다
딸이 게임에 빠져드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파스텔톤의 배경에 귀여움 가득한 포켓몬들이 등장하다 보니 딸은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다양한 아이템들을 수집하거나 포켓몬 친구들의 무한히 많은 부탁들을 들어주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아침을 먹고 시작하면 금세 점심시간이 될 정도로 무아지경이 되어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건물을 하나 짓는데도 실제 시간으로 15분 넘게 걸리고, 길 가다 보면 주인공이 반가워서 말을 거는 포켓몬들이 워낙 많다 보니 중간중간에 해야 하는 소일거리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자연스레 길어진 게임 시간을 즐기고 있던 딸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소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불편이 가중되고 있던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현대 슬롯의 기술은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상상도 못 하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해진 것들이 많아졌다. 단적인 예로 우리 집에 있는 조그마한 갈등 아닌 갈등을 소개하겠다. 아내와 내가 자라던 시기에는 케이블TV를 별도로 구독하지 않는 이상 볼 수 있는 방송은 KBS, MBC, SBS(또는 지역방송국), EBS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과 같은 IPTV 환경이 아니라서 보고 싶은 방송의 시간을 놓치면 조간신문의 일간 TV 편성표를 통해 재방송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에 비해, 딸은 벌써 스마트 TV의 유튜브 앱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면서 본인이 보고 싶은 영상들을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 선택지가 몇 개가 안 됐던 것과 다르게 딸이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은 무궁무진했다. 심지어, 본인이 다시 보고 싶었던 장면을 다시 보거나 보기 싫은 장면들을 건너뛰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심 그 모습이 거북했지만, 그런 마음이 일부 공감됐기에 못 본 척하고 있었는데, 아내도 이렇게 하는 게 못마땅했던 모양인지 딸이 리모컨으로 잦은 조작을 하면 한 번씩 지적하곤 했다. 어른들도 비슷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게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건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다. 서로 익숙한 것들의 간극이 크다 보니 상호 간의 인식이 다를 뿐이다.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라 누리는 문화 양식 등에 따른 이러한 인식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족을 이루는 다양한 세대들 간에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행태와 생각들이 제각각이다. 아내가 딸이 유튜브를 보는 행태가 불편한 건 아주 단적인 예가 될 뿐이다. 서로 그저 다르다고 여겨야 한다. 우리도 어릴 때 그럴 능력과 기술이 있었다면 분명히 똑같이 했을 것이다.
결국, 아내도 본인이 경험했던 딱 그만큼만 편하게 딸에게 권유할 수 있었다.
요즘 부모들이 겪는 스마트폰에 대한 고민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 세대에게 전화란 집 전화와 공중전화가 전부였고, 스마트폰은 빠르면 고등학생, 늦으면 슬롯 초년생 때나 접하는 신문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손에 쥐여주는 스마트폰은 경험해 본 적 없는 두려움과 미지의 대상일 뿐이다. 물론 그만큼 접하면 안 될 것들에도 쉽게 닿을 수 있으니 그 두려움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접하면 안 되는 것'의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아이들에게 이른 나이에 스마트폰을 제공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주장 중 하나가 뇌 발달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스마트폰을 어린 시절에 접하지 않은 사람들의 발달 방향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말이다. 새로 시작하는 지금 세대에게는 그들만의 뉴노멀(New Normal)이 있고, 그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능력과 형태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우리가 어찌 이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우리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지도를 보며 운전한 적이 별로 없지 않은가. 우리 인생에 운전하면서 지도를 볼 수 있는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세상에 나오자마자 부모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있을 테다. 다만, 부모가 이용 시간과 접근 가능 사이트를 제한하려고 하는 논란이 있는 물건이라는 생각 정도 있지 않을까? 즉,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데 부모들은 그걸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틀린 것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집밥’이 다를 뿐이다.
당연하지만 아내와 나도 각자 다른 유년 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각자가 생각하는 집밥의 모양과 형태는 크게 달랐다. 예를 들자면, 내가 생각하는 닭볶음탕은 국물이 자작하고 고추장이 듬뿍 들어가서 조림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면, 아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국물 가득하고 고춧가루로 양념해서 국물이 풍부한 찌개 같았다. 사소한 차이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 문제로 다투기까지 했었다.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도 그러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다 보니, 유치원에 다니고 있던 딸이 게임을 접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함께하고 싶은 놀이였다. 반면, 어렸을 때 전자오락을 거의 하지 않았던 아내는 아직 핏덩이로 보이는 딸이 포켓몬스터 게임에 장시간 노출되는 게 꽤 불편했던 것 같다. 남편인 나조차도 새롭게 접하는 게임이다 보니, 딸이 가장 먼저 이 게임을 혼자서 접하는 게 겁도 났던 모양이다.
그래도, 딸이 태어나기 전에 나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종종 함께했던 아내가 택한 방식은 딸, 나와 함께 각자의 계정을 만들어서 각자의 포켓몬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거였다. 모두 함께 새로 접하면서 서로에게 제안도 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게임을 접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고, 부모가 딸을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3명의 동등한 플레이어가 되었다.
셋이 함께 만든 새로운 ‘집밥’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