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이제는 포코피아!

by무색무취

딸이 사천왕과 라이벌까지 물리친 지 2년 정도 흘렀다. 딸은 자연스럽게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 게임을 조금씩 덜 하게 되었다. 물리쳐야 할 대상과 목표가 없어지다 보니 닌텐도 스위치를 자연스럽게 멀리하기 시작했다.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게임을 시도해 보지 않은 채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부모들의 3대 고민 시점인 크리스마스, 생일과 더불어 어린이날 선물로 무엇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한두 달에 한 번씩 가는 바디 컨디셔닝 관리소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의 어린이날 선물 고민을 들은 관리사분이 내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닌텐도에서 <포켓몬 포코피아>라는 게임을 출시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동물의 숲>에 포켓몬스터 색깔을 강하게 입힌 <포켓몬 포코피아>라는 게임이 작년에 출시되었는데 딸에게 줄 어린이날 선물로 괜찮지 않겠냐고 내게 제안하였다. 딸이 좋아할 요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관리사분의 설명에 상당히 혹했다. 마을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평화주의자인 딸이 불편해하는 악당들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온몸을 덮고 있는 각종 근육들이 분쇄육 다지듯 잘근잘근 조져지고 있던 그 자리에서 딸에게 줄 어린이날 선물을 아내와 상의 없이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 (다행히 나중에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포켓몬 포코피아>라는 게임이 출시된 지 거의 1년이 다 되었지만, 그 사실을 아빠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 딸은 갓 개봉한 영화를 맞이하는 사람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딸에게 줄 어린이날 선물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후련했고, 딸은 평화로운 게임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척 설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린이날 전주에 소식을 접한 딸은 아내와 나를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어린이날 선물이 서프라이즈가 아니게 되었으니, 주말에 할 수 있도록 월급을 가불 받듯 미리 사달라는 것이었다. 어린이날은 다음 주 화요일이었고, 그때 받으면 주말까지 며칠 기다려야 한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던 우리 부부는 특별한 저항 없이 딸의 소소한 제안을 들어주기로 했다.


세상이 워낙 좋아져서 하루만인 금요일에 로켓배송이 온 게임을 세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서 개봉했다. 새로 온 게임을 뜯으면서 기대감과 함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내가 모르는 영역에 딸과 함께 뛰어드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발레 정도를 제외하고는) 딸이 새롭게 배운 모든 것들은 내가 해봤거나 할 줄 아는 것들이었다. 두 발로 걷기, 유치원이나 학교 처음 가기, 수영, 자전거 타기, 심지어는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와 같은 게임조차 모두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변수들만 있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자 모드였다고 하면 <포켓몬 포코피아>는 우리 세 가족 모두가 처음 접하는 신문물이었다.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를 할 때 닌텐도 스위치에 새롭게 만든 딸의 계정을 통해 <포켓몬 포코피아>를 실행했다. 딸과 함께 유튜브를 통해 본 게임 리뷰 영상이 우리 가지고 있던 사전 지식의 전부였기에 시작부터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다. 메타몽이 사람 형상을 한 주인공과 함께 덩쿠림보라는 처음 보는 포켓몬이 등장하면서 입문 절차와도 같은 튜토리얼이 시작되었다. <동물의 숲>을 포켓몬스터랑 결합해서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는 게 너무 신박했고, 처음 보는 게임인데도 튜토리얼을 척척 잘 따라가는 딸의 모습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미 앞선 게임으로 각자 충분한 경험치를 쌓은 나와 딸은 각자의 자리를 충실하게 지켰다. 딸은 게임을 열심히 했고, 나는 관전자 모드로 게임을 접했다. 이전의 게임은 내가 해본 경험이 있으니 이미 해버렸거나 참고 있었던 잔소리투성이었지만, <포켓몬 포코피아>는 나조차도 처음이었기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딸이 실수 없이 잘 해내길 바랐던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와는 다르게 함께 도전자 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만이 들뿐.

KakaoTalk_261012_161935.jpg말은 이렇게 해놓고는 귀찮은 건 다 나 시킴

딸은 게임을 무난히 진행해 나갔다. 처음 보는 게임이라도 덩쿠림보를 비롯한 다양한 포켓몬들이 알려주는 기술들을 무사히 습득하면서 마을을 가꾸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물리쳐야 하는 악당이 없다는 사실을 미리 습득했던 딸은 만면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원들 모두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곳에 딸이 혼자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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