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착 중입니다.>
11화. 보통이라는 말

by청아

보통이라는 말의 그림자


보통이라는 말, 그 너머

"보통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 한켠이 조금 놓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차트를 넘기며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문제는 없어요."

"범위 안에 있어요."


보통.

그 단어는 경계선 위에 조심스럽게 놓인 작은 의자 같았습니다.

앉아도 되는지, 아직은 서서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자리.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미나는 내 옆에서 진료실 벽에 붙은 그림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검사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면서 나는 그 단어를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보통이면 다행인 걸까?'

'보통이면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되는 걸까?'

보통이라는 말은 완전한 확신을 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오늘은 걱정 대신 미나와 함께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으러 가도 된다는 작은 허락처럼 들렸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병원을 나서자마자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고, 미나는 딸기맛을 골라 신나게 먹었습니다. 그 웃는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오늘은 이거면 충분해.'


미나는 그날도 집에 와서 평소처럼 자기 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조금 느리게 걷고, 조금 천천히 반응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했습니다.

'보통'이라는 말은 미나의 하루를 조금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바뀐 건 오히려 나였습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이 아이를 어느 순간부터 '기준'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보통이면 안심하고, 보통에서 조금 벗어나면 마음이 흔들리는 나. 그 기준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인지,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자체가, 내가 더 좋은 엄마로 자라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어느 날 미나가 나를 빤히 보며 물었습니다.

"엄마! 나는 보통이야?"

그 질문은 어떤 검사 결과보다도 훨씬 정확하고 솔직했습니다.

나는 잠시 미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미나는 미나야. 세상에 하나뿐인 미나."

미나는 그 대답에 씩 웃더니, 다시 하던 놀이로 돌아갔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 대답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다정한 말이었습니다.


보통이라는 말은 세상을 편리하게 설명해주긴 했지만, 미나라는 한 아이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좁은 옷 같았습니다. 미나는 어떤 순간엔 보통보다 느렸고, 어떤 순간엔 보통보다 훨씬 깊었고, 또 어떤 순간엔 보통보다 넓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은 결핍이 아니라, 미나만의 고유한 결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보통'이라는 말을 조금씩 멀리 두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미나가 어제보다 오늘 어디까지 더 왔는지, 무엇을 새롭게 좋아하게 됐는지를 더 자주 묻기로 했습니다.

저녁마다 우리는 작은 습관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오늘 미나가 새로 알게 된 거 하나만 말해줄래?"

그 질문에 미나는 매번 다른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날은 달팽이가 비 오는 날 더 잘 보인다는 것,

어떤 날은 노란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초록색이 된다는 것.


그 작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매일 새롭게 감탄했습니다. 이 아이는 이렇게,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을 촘촘하고 풍성하게 채워가고 있구나.

보통은 목표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미나의 삶은 평균이라는 지점에 도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미,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자리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씩씩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보통이라는 말은 잠깐의 안심을 주지만,

그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미나가 그 사실을 나보다 훨씬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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