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처음 만난 날, 나는 이름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지만, 아직 '불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대신 아이의 곁에는 숫자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28주. 1.1킬로그램. 산소포화도 몇 퍼센트. 맥박, 호흡수, 체온. 의료진은 숫자로 아이를 설명했고, 나는 그 숫자들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며 아이를 상상해야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들이 낯설지 않아졌습니다.
처음엔 외국어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어느새 아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매일 아침 회진 때마다 차트를 보여주며 차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어제보다 체중이 조금 늘었어요. 잘하고 있어요." 그 "잘하고 있다"는 말이 나에게는 세상 어떤 칭찬보다 크게 들렸습니다.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옮겨 적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유리벽 너머로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알던 아기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손가락인지 발가락인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고, 온몸이 손바닥보다 작았습니다.
인큐베이터 안에는 작은 담요와, 우리가 넣어드린 배냇저고리 하나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해주셨습니다.
"엄마 아빠 냄새가 나는 물건을 곁에 두면 아기가 더 편안해해요."
그 말에 나는 그날부터 매일 새 손수건을 품에 안고 있다가 병원에 가져다드렸습니다.
그 작은 몸 안에서, 가슴이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살아있다. 지금, 여기서, 분명히 살아있다.
간호사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만지지 마세요. 소리에 민감합니다. 조금만 더 안정되면, 그때 손을 대주셔도 돼요."
그 말은 금지라기보다 약속처럼 들렸습니다.
'조금만 더.' 그 말 속에는 분명한 다음이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날부터 엄마가 되는 법을 다시, 새롭게 배워야 했습니다.
안아주는 법 대신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그 바라봄 안에도 충분한 사랑이 담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달래는 말 대신, 마음속으로 건네는 말을 배웠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의 하루는 숫자로 시작해서 숫자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 체중이 몇 그램 늘었는지, 호흡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남편은 매일 아침 병원에 전화를 걸어 그 숫자들을 받아 적었고, 나는 그 숫자를 다이어리에 옮겨 적으며 작은 그래프를 그렸습니다.
그래프는 오르락내리락했지만, 크게 보면 분명히 우상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매일의 위안이었습니다.
숫자가 조금 오르는 날엔 온 가족이 저녁 밥상에서 그 이야기로 웃었습니다.
"오늘 미나가 10그램이나 늘었대!"
그 말 한마디에 온 식구가 마치 큰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친정 엄마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박수를 치셨고, 시어머니는 "우리 미나 밥 잘 먹네" 하며 뿌듯해하셨습니다.
작은 숫자 하나가 이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면회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나는 손을 소독하고 가운을 입은 뒤, 조심스럽게 인큐베이터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아주 살며시 아이의 손바닥에 가져다 대면, 미나는 그 손가락을 꼭 쥐곤 했습니다.
아주 작은 힘이었지만, 나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단단한 악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면회 시간에 아이가 손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습니다.
그건 반사였을지도 모르고, 우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작은 움직임에서 숫자 밖의 무언가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구나.
그 순간 나는 유리벽에 이마를 가만히 대고 속삭였습니다.
아직 크게 부를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불러보았습니다.
이름은 숫자보다 늦게 왔지만, 그만큼 더 깊고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알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의 삶은 수치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이야기로 완성될 거라는 것을.
며칠 뒤, 담당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미나, 오늘 스스로 숨 쉬는 게 아주 좋아졌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먼저 터졌습니다.
그건 걱정의 눈물이 아니라, 자랑스러움의 웃음이었습니다.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며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했고, 수화기 너머로 남편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육아일기장을 펼쳐 그날의 숫자들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메모를 하나 남겼습니다.
'오늘도 우리 미나, 참 잘했다.'
숫자와 함께 남긴 그 짧은 문장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아이의 첫 성장 일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직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지만, 아직은 숫자 뒤에 살짝 가려져 있지만, 이 아이는 분명히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누구의 것보다 씩씩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이름보다 먼저 숫자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 숫자들은 결코 아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