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도착하는 시간이 모두 같지는 않다는 걸, 그날 처음 배웠습니다.
작은 심장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주 작았지만, 분명히 뛰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 소리를 놓칠까 봐 숨도 크게 못 쉬었습니다.
의료진이 초음파 기기를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나는 화면 속 작은 점 하나에 온 신경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 이 아이는 지금, 세상으로 오는 가장 씩씩한 여행을 하고 있구나.
의사는 28주라고 했습니다.
두 어깨가 겨우 자리를 잡은 작은 몸. 화면 속에서 아이는 조그만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 여기 있어요"라고 인사하듯이요.
그 몸 안에 이미 살아내려는 힘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무게, 주수, 산소포화도 — 숫자들이 매일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처음엔 그 숫자들이 낯설고 차갑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숫자들은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숫자가 자란다는 건,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남편은 그 숫자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하나하나 기록했습니다.
마치 작은 나무의 키를 재듯이, 정성스럽게.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컸대." 그 말을 할 때 남편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금 들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성장을 숫자로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갔습니다.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날, 손끝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미나야" 하고 불러보았습니다. 이름을 짓기까지 우리 부부는 여러 밤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아름다울 미(美)에 나라 나(娜) — 어디서나 자기답게, 아름답게 자라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아이는 더 이상 '숫자로 설명되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미나'가 되었습니다.
병실 창밖의 나무를 보며 나는 두 가지 시간을 함께 배웠습니다.
화살처럼 빠른 시간과, 구름처럼 느린 시간을.
밤에는 시간이 유독 느리게 갔습니다.
조용한 병실 복도를 걸으며, 나는 그 나무가 계절을 따라 조금씩 색을 바꾸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아이는 스스로 숨을 쉬고, 눈을 깜박였습니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매일 아침 찾아오는 작은 축제였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종종 우리에게 웃으며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늘 미나, 팔을 쭉 뻗던데요? 힘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런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우리를 웃게 했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 그 말이 떠올라 혼자 미소 짓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에게는 주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했을 뿐이야."
이 말은 걱정이 아니라 응원이었고, 슬픔이 아니라 확신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살아 있다는 작은 기적을 다시 꺼내 웃는 말이었습니다.
힘든 날에도, 이 말을 되뇌면 신기하게 마음이 다시 단단해졌습니다.
마치 우리끼리만 아는 암호 같기도 했습니다.
친정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미나, 지금 얼마나 열심히 크고 있는데. 걱정 말고 기다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온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미나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미나가 세상으로 오는 법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천천히 그러나 씩씩하게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온 시간들의 기록입니다.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 기다림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이 기록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조금 늦게,
그러나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