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도착 중입니다.>
2화 - 탄생

by청아

탄생


그날은 집이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두었고, 먼지가 햇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녔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조금 더 말끔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아주 평범하고도 설레는 마음이었지요.

바닥을 닦고, 낮은 서랍을 정리하고, 다 쓰지 않은 물건들을 한쪽으로 밀어두었습니다.

아이 옷장 한 칸에는 작은 배냇저고리 몇 벌을 미리 개어 넣어두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그 옷들을 만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이걸 입으면 얼마나 작고 예쁠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몸이 조금 무겁긴 했지만, 임신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리 방 청소도 하고, 반찬거리도 만들고, 김치 거리도 재빠르게 손질했습니다.

냉장고에는 미역국 재료를 미리 사다 놓았고, 산후조리 때 입을 옷도 한쪽에 개켜두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오후 무렵, 양수가 터졌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생각보다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나는 미리 챙겨둔 출산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지금 바로 와줘야 할 것 같아."

목소리는 떨렸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에서는 '드디어 만나는구나' 하는 기대가 함께 차올랐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보았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거리, 익숙한 신호등,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그 익숙한 풍경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배 위에 손을 얹고, 마음속으로 계속 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조금만 힘내자. 우리 같이 가는 거야. 엄마가 옆에 있어."


병원에 도착하자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의사가 초음파를 보며 말했습니다.

"조산입니다. 28주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지금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숫자는 작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다른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남들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금 다른 속도로 세상에 오려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야겠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잠깐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미나는 기다리지 않은 게 아니라, 자기만의 때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분만실로 들어가기 직전,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우리 잘 해낼 거야." 그 짧은 한마디에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그렇게 미나는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작고, 가볍고, 아주 여린 아이. 태어난 직후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아주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크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울음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습니다.

'살아있다. 우리 아이가 살아있다.'

그 작은 몸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알았습니다.

아이를 지키는 일은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다 되지 않아도 그 순간부터 곧바로 시작되는 사랑이라는 것을.


며칠 후 병원 복도에서 만난 다른 산모 한 분이 이렇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일찍 나온 아이들이 오히려 더 씩씩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후로 우리는 시간을 다르게 살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걱정과, 남들보다 조금 더 정성스러운 기다림 속에서.

매일 병원에 다녀오는 길,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그날 있었던 작은 일들을 나누었습니다.

아이의 손가락이 움직인 이야기, 눈을 살짝 뜬 것 같다는 이야기.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하루를 채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일찍 도착한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에 도착해 가는 기록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아직 도착 중입니다.


조금 일찍 태어났다는 건,

어쩌면 인생이 더 길게,

더 넉넉하게 시작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넉넉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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