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에 가다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이십 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식물, 자연, 환경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매년 5월 18일 무렵이 되면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읽었고, 올해도 어김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무래도 광주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음이 움직여 바로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 이름은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다. 숙소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호기심이 생겨 예약했다. 호랑가시나무, 생소한 분들이 많으실 거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안가 저지대의 양지바른 숲 가장자리나 물가에 주로 자란다. 남쪽지방에서는 가로수로 심기도 한다.
식물은 라틴어 학명에 특징을 온전히 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학명은 Ilex cornuta Lindl. & Paxton이다. Ilex는 감탕나무속을 뜻하고(종속과목강문계의 '속'을 말한다), cornuta는 라틴어 cornutus에서 온 말로, '뿔이 있는', '뿔 모양의', '각진 돌기가 있는'이라는 뜻이다. 학명의 뜻처럼 호랑가시나무는 잎 끝이 각지고 뾰족하다. 각지고 뾰족한 모양은 어린 나무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이 나이 들어 성격이 둥글둥글해지는 것처럼 호랑가시나무도 오래될수록 잎이 둥글어진다.
식물은 한 자리에 나면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다. 사람이 옮겨주면 모를까. 스스로는 일 센티미터도 움직이기 힘들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가. 그럴 수 없지. 가장 대표적인 방어수단이 가시다. 어린 나무 잎이 더 각지고 가시가 발달한 것은 포식동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동물이 잎을 뜯어먹다가 가시에 찔리면 아프고 불편하니까 덜 먹을 것이다. 먹히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아야 꽃을 피우고 열매 맺어 씨앗을 만들고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유난히 가시가 많은 사람이 있다. 조금 더 다가가려고 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뾰족한 가시를 세운다. 때로는 날카로운 가시로 나쁜 의도 없이 다가오는 사람을 찌르기도 한다. 나이가 어릴 때는 그런 사람을 피하고 꺼렸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자기 안의 상처가 너무 많으면 가시가 되어 나온다는 것을. 나도 다칠까 봐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꺼리지도 않는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사정이 있겠지.'하고 그냥 둔다. 언젠가는 오래된 호랑가시나무 잎처럼 둥글둥글해지지 않을까.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 앞에는 광주시 기념물 17호인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이 무려 400년이라고 한다. 400년인 것처럼 보이지 않아 검색을 해봤다. 위키백과에는 '이 나무의 높이는 6미터이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1.2미터'라고 나와있다. 아무래도 이 나무가 아닌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니 팻말의 위치가 잘못된 것이었다. 수령이 400년인 "진짜" 양림동 호랑가시나무는 게스트하우스 앞 길가가 아닌 언덕 위쪽에 있었다.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호랑가시나무'언덕'이라고 이름 지은 것을 보면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개체수가 많지는 않다. 호랑가시나무보다는 선교사들이 이곳에 올 때 가져와 심은 식물인 흑호두나무, 페칸, 은단풍나무 등의 수령이 100년 넘어 울창한 숲이 되었다. 그 숲 안에 선교사 사택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낡았지만 운치 있다. 그때 이곳에 살며 일제강점기를 모두 지켜봤을 선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의 '오웬' 선교사 방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둘째 날에는 광주 수피아여자 고등학교, 광주기독병원, 5.18 민주화 운동 광장,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 국립 5.18 민주묘지에 다녀왔다. 다음 화에 다녀온 얘기를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