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전 이곳을 걸었던 안중근을 생각하며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이십 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식물, 자연, 환경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나는 지금 하얼빈에 있다.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다가 하얼빈의 식물들을 만났다. 117년 전 안중근 의사도 내가 보고 있는 이 식물들을 봤을까.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거사가 1909년 10월 26일이었으니, 안중근 의사는 이곳에서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셨겠다. 하얼빈 역 앞에 사는 나무 몇 그루의 나이는 120~130년이던데, 그 나무들은 하얼빈 역으로 가는 안중근 의사를 지켜보았겠다. 어떻게 보였을까. 나무들은 말이 없다.
한국에서 한 달 전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진 벚꽃과 살구꽃이 하얼빈에서는 이제야 만발했다. 이곳에 사는 식물들의 생체시계는 한국보다 대략 한 달 정도 늦게 흘러간다. 척박한 땅 위로 새싹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다. 땅이 척박하면 잡초라 불리는 초본의 종류도 확 줄어든다. 영양분 없는 맨 땅이 드러난 곳이 많다. 흙도 많지 않은데, 그마저도 척박하다. 식물들이 살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다. 117년 전 독립운동을 하기엔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혹독 했겠지…
안중근 의사가 거사 전 우덕순과 거닐었다는 조린공원(Zhaolin park)에 갔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청초당’ 안중근 의사의 호이다. 푸른 풀처럼 곧고 깨끗한 삶을 살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호의 뜻처럼 곧고 깨끗하게 짧은 삶을 살다 가셨다.
하얼빈 역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고, 조린공원에는 안중근 의사 비석이 있다. 중국은 역사적 사실을 잘 기록하여 간직하는 나라이다. 자신들 나라의 역사도, 자신들과 상관없는 우리나라의 역사도. 없애버리지 않고 잘 관리해 주어 머리 숙여 감사했다. 덕분에 이렇게 후손들이 찾아와 기릴 장소가 있다.
조린공원에는 능수버들(일까.. 수양버들일까..) 꽃이 만발했다. 이곳에 와보니, 가로수도, 공원수도 능수버들이 많았다. 봄바람에 연약한 나뭇가지가 하늘하늘 흔들리는 풍경을 보면서, 옛날 중국 그림에 능수버들이 자주 등장했던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이해되는 풍경이 있다. 이 나무들 중의 몇 그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걷던 안중근과 우덕순을 보았을까. 역시나 나무들은 말이 없다. 나무의 수피에 내 손을 얹어봤다. 혹시 나무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731부대 유적지에도 백 년 넘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너희들도 보았을까, 잔혹하고 악독하고 악랄한 수천 명의 일본인들을. 아니면 나이테에 새겨 놓았을까, 인간 같지도 않은 그들의 만행을. 하얼빈 곳곳에 목격자처럼 오래된 나무들이 묵묵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 변화하는 역사를 모두 지켜본 나무들.
<토지>, <아리랑>, <태백산맥>을 읽으며 역사를 새로 배운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낀다. 마음이 움직여 하얼빈까지 왔다. 하얼빈을 걸으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안중근 의사와 다른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하늘에 닿도록 크게 소리치고 싶다. 나도 후손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손톱만큼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